밤늦게 오는 문자는 달갑지 않다. 언젠가부터 생긴 이 버릇은 시골집에 홀로 있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연세는 75살을 넘기셨지만 아직 일을 하는 어머니가 고향에 계시다. 큰 병 있을까 병원 가기 주저하는 심정이랄까? 밤늦게 오는 전화나 문자가 가끔 두려울 때가 있다. 그날도 저녁 늦게 문자가 왔다. 늦은 시간에 온 문자 한 통이 전화기 액정에 찍혔고 부고라는 메시지가 떴다.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고향집이나 가족의 문자가 아니라 안도했다. 그 안도감도 잠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명의의 문자임을 확인하자 손이 떨렸고 심장은 요동쳤다. 22번째일까? 설마라는 우려 속에 찬찬히 액정 화면을 읽어 내려갔다. 눈물은 아래로 흐른다 했던가, 액정 화면에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또 이렇게 되는구나. 또 이런 죽음이 반복되고 있구나. 자그마치 22번째 생목숨이 끊겼다. 부패한 물고기 배가 부풀어오르듯 불어나는 죽음의 숫자는 여전히 부풀어가고 있다. 부풀어오르다 터져버린 물고기 내장이 얼굴을 뒤덮은 양 한동안 넋이 나가고 말았다.
36살, 젊은 노동자가 남긴 사회적 유서
22번째 쌍용차 해고노동자는 투신자살을 선택했다. 그는 투쟁을 함께하고 모진 탄압에도 묵묵히 동행한 동지며 친구였다. 이 해고노동자의 3년간 족적을 알량한 기억의 퇴적물과 몇 번의 전화 통화, 그리고 몇 잔의 술로 더듬기엔 부족하다. 부족한 기억은 추측을 강화할 뿐, 왜 투신자살을 했는지 어쩌면 나는 알 도리가 없다. 그가 남긴 단서의 부족을 탓하기 전, 그의 깨끗한 주변 정리에 더욱 마음이 아리다. 죽어간 쌍용차 노동자들은 어떤 단서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죽음의 실체를 추적해 밝혀달라는 역설의 메시지를 남기겠다는 작심이라도 한 듯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잔인하다. 늘 주변은 깨끗하고 투명할 정도로 관계 또한 앙상했다. 36살 초록빛 젊음에 미혼이던 젊은 노동자가 유일하게 남긴 건 사회적 유서밖에 없다. 해고자의 삶의 고단함과 관계 단절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넘어서기엔 너무나 힘겨웠을까. 22번째 반복되는 사회적 유서는 조용히, 그러나 또박또박 초록빛 젊음이란 붓으로 검게 써내려졌다.
쌍용차 해고자 이○○은 1995년 쌍용차에 입사해 15년을 일했다. 2009년 기술 유출과 정리해고 반대 파업 당시 77일 동안 파업에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희망퇴직을 거부했다. 해고 이후 경기도 평택의 집을 처분하고 임대아파트를 구해 김포로 이사했다. 운명이 멈춘 3월30일,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 3층인 자신의 아파트에서 23층까지 걸어 올라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의 무게가 추락의 속도를 높인 건 아닐까. 부당해고 무효소송의 1심 패소가 공장 복직의 꿈을 완전히 앗아가고 사회 속 유령의 삶을 강요한 건 아닐까. 그러나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가장 얇다는 새벽 3시15분에 투신으로 생을 마감한 이○○ 노동자의 생각을 난 아직 알지 못한다. 알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이기 때문일까. 더는 묻고 싶은 생각도, 캐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다른 해고자들에게 이 죽음이 전이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가슴을 짓누를 뿐이다.
삶은 유령이 되고, 복직의 꿈은 무너졌을 때
쌍용차 다큐멘터리 영화 2부는 ‘낙인’이다. 이 영화는 고 이소선 여사가 주인공인 를 만든 태준식 감독의 작품으로 쌍용차 노동자들의 일상을 좇는다. 산업은행 노숙농성과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이 영화 ‘낙인’의 주된 줄기다. 쌍용차 노동자의 일상 가운데 한 장면은 상여를 메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하던 노동자들이 상여를 태연하게 메고 상복을 예사로 입는다. 담배를 물고 상복을 입을 정도로 상복과 상여는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가 돼버렸다. 3년의 시간 동안 향 냄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죽음의 늪에 깊게 잠겨 있다. 감각기관은 무감각의 껍질로 딱딱하게 변했고, 눈물샘은 갈수기 하천 바닥처럼 갈라진 채 온몸으로 눈물이 줄줄 샌다. 죽음의 맷돌이 끝없이 돌아 사망과 자살을 만들어내고 있으나 아직 이 죽음의 맷돌을 멈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쌍용차 투쟁을 말할 때 매번 고립을 언급한다. 그러나 공장 파업 당시 우리는 고립됐던 것일까? 물과 의약품, 식량이라는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면에선 고립이 맞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면에선 고립이란 단어로 그 상황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회사 쪽의 각종 회유와 가족들의 전화 통화, 언론의 일방적 몰아세우기에도 우리는 ‘함께 살자’를 주장하며 기술 유출과 정리해고 저지를 위해 싸웠다. 우리가 인생을 걸었던 2009년 투쟁은 고립이 아니라 인간으로 우뚝 선 경험이었다. 물리적 공간의 고립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고 이후 해고자의 삶은 철저하게 고립과 단절로 치달았다. 면접에선 쌍용차 출신이란 꼬리가 문제가 됐고, 지역과 사회에선 강성노조란 낙인이 삶을 유령화했으며 결국엔 황폐화의 길로 인도했다. 아픔을 품어줄 것 같던 사회에서의 이런 고립은 공장 안으로의 복직 욕구를 강하게 부채질했다. 그리고 복직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은 무너졌다. 관계 단절이 개인의 노력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님을 3년 동안 우리는 뼛속 깊이 알아가고 있다. 죽음이라는 부유물과 함께.
MB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요구가 부당한가
민간인 불법사찰이 이명박 정부 들어 전방위적으로 행해졌고, 특히 노동부 관료들이 사찰의 중심 역할을 했다. 쌍용차 파업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보고와 조처, 그리고 청와대의 개입이 명백히 드러났다. 쌍용차 회사 쪽이 노동자 22명의 잇따른 죽음에도 여전히 버티고 ‘개기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의 잔인성이 쌍용차 노동자 자살과 죽음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더 이상 이 죽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말하는 건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사태 해결을 지연할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쌍용차 죽음의 행렬을 멈출 우선 조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2009년 5월부터 유입된 죽음의 지뢰를 걷어내는 노력은 쌍용차 노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죽음의 지뢰가 터지고 그 파편에 맞아 아파하는 사람이 어찌 죽어가는 쌍용차 노동자들뿐이겠는가. 이 사회도 해고로 인한 죽음의 병과 함께 시름시름 앓고 있다. 반복되는 죽음을 방치하는 나라가 어찌 나라일 수 있단 말인가. 공기 속 죽음의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를 이처럼 무디게 하는 정권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겠는가.
추신. 별이 된 친구에게…. 친구야 이런 글 더는 쓰지 않을게. 그런데 약속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력을 다해 노력한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어. 22번째 친구야 안녕.
쌍용자동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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