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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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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새누리당 경비인가

등록 2012-08-30 15:23 수정 2020-05-03 04:26

그날도 비가 왔다. 때늦은 장마에 노동자들의 피켓과 밤새 잠자리 노릇을 했던 얇은 은박지가 빗물에 젖어 어지럽게 거리 위를 떠다녔다. 비 오는 가운데 출근하는 시민을 향해 선전전을 하고 있는데 일이 발생했다. 오전 8시. 차량 외관부터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임을 알 수 있는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당사 앞으로 들어왔다. 문제의 차량이 들어오기 전부터 경찰은 부산하게 움직였고, 새누리당 대표나 박근혜 예비후보가 출근하는가 싶어 우리도 긴장하며 지켜봤다. 그도 그럴 것이 8월8일부터 줄곧 그곳 앞에서 ‘쌍용차 국정조사’ ‘쌍용차 특별법 제정 촉구’ ‘환노위 내 쌍용차 소위 구성’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던 우리로서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 흔한 면담이나 간담회조차 노숙농성 3주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못하고 거부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누리당 소속” 외치는 현직 경찰
차량이 도착하자 갑자기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산을 받쳐들고 깍듯하게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경찰 관계자가 저렇게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나 싶어 탑승자가 누군지 물어봤다. 그러자 우산을 씌워주던 경찰관은 대뜸 반말로 “너네 뭐야?”라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어 재차 물었다. “당신 경찰이냐. 경찰인데 왜 우산을 씌우고 새누리당 관계자를 당사 안으로 모시는 것이냐” 했더니 “새파랗게 어린 것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더 가관인 건 “경찰이면 관등성명을 대라” 했더니 그 경찰은 “내가 왜 관등성명을 너네들에게 대?”라고 했다. 당사 안으로 들어가는 경찰은 “나는 새누리당 소속”이라며 큰소리로 몇 번을 외치고 사라졌다. 조금 뒤 주변 경찰은 그가 경찰임을 확인해줬다. 경찰이 새누리당 관계자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새누리당 소속이라고 말하는 저 뻔뻔하고 무지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는 집회 신고를 내고 합법적으로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장소를 무단 점유한 것은 물론 수시로 집회를 방해했다. 불법 시위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주장을 막아섰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시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집시법은 시위자를 구속·검거하는 데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당사 앞은 집시법 자체가 무용지물인 곳이다.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다. 시간과 장소, 목적을 명시한 집회 신고서를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면 집회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집회 물품 또한 신고할 때 기재하게 돼 있다. 만약 경찰이 보기에 보완돼야 할 부분이 있다면 48시간 안에 보완 통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보완 통보도 없었다는 것은 신고한 대로 집회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췄음에도 우리는 지난 8월8일부터 새누리당 앞에서 정당한 집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비 온 뒤 땡볕은 살갗을 태울 정도로 강렬해 집회 신고 물품에 기재된 그늘막을 설치하려 해도 경찰은 근거 없이 방해했다. 방해 이유를 묻자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만 할 뿐이다. 무엇이 불법인지, 왜 불법인지 따지고 물으면 불법이라는 대답을 무한 반복할 뿐이다.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 설치한 분향소 천막이 경찰에 의해 부서졌다. 경찰의 편파적 처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8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 설치한 분향소 천막이 경찰에 의해 부서졌다. 경찰의 편파적 처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공권력의 악감정, 누구를 향하나

경찰 직무집행법상 경찰은 사복을 입고 집회 장소에 드나들거나 무단으로 채증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법 규정은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사복 입은 경찰이 이름과 소속을 얘기하지 않는 경우는 허다한 일이 됐고, 수시로 집회 장소를 드나들고 있다. 급기야 정복을 입지 않은 경찰관의 출입은 불법임을 지적하자 은근슬쩍 경찰조끼를 걸치고 다시 불법 채증을 하는 경찰. 법을 준수해야 할 경찰이 스스로 경찰 직무집행법을 제멋대로 어기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급기야 지난 8월21일 집회 장소 난입과 사복 입은 불법 채증에 항의하자 쌍용차 지부장과 연대하러 온 노동자 한 명을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해갔다. 경찰이 불법적인 공무를 집행했음에도 끌려가는 건 오히려 노동자다.

경찰들의 욕설도 가관이 아니다. 시위대를 향한 조롱과 비웃음, 그리고 사적 감정을 드러내는 일련의 경고방송은 이들이 공무를 담당하는 경찰인지 의심케 한다. 적법하게 신고된 장소에서 집회를 하는 우리에게 “이제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거나, “선동을 멈추”라 한다. 언제부터 경찰이 시위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방해하게 돼 있나. 특히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에 일일이 간섭하는 행태를 보면 이들이 국가 공권력인지, 새누리당 경비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쌍용차 국정조사 요구를 하는 우리에게 이들이 보이는 적의는 공권력의 감정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집회는 무조건 불법이며 악이라는 이들의 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공권력이 사적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8월22일 저녁 7시20분께.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주변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주변에는 경찰기동대가 상주하고 있었음에도 맨 먼저 피해자를 응급조치하고 범인을 쫓아낸 것은 경찰이 아닌 시민이었다. 특히 지혈을 도와 피해자의 생명을 구한 건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김남섭이었다. 김 사무국장은 쌍용차 국정조사 촉구 저녁 문화제를 준비하던 차에 사건을 접하고 득달같이 달려가 피 흘리고 쓰러진 피해자의 지혈을 도왔다. 현장에는 경찰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코앞에서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보고만 있는 꼴이 돼버렸다. 새누리당 관계자를 비 맞히지 않으려고 쏜살같이 달려가 우산 씌우는 민첩함을 민생치안에 쏟았다면 어땠을까. 시위대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민첩하게 대응하는 그 기동력을 칼에 찔려 신음하는 시민에게 발휘했더라면 상황은 또 어땠을까. 윗선의 명령이 없었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고 감정적으로라도 대응했더라면 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경찰이 시위대에 대한 민감한 반응 속도만큼만이라도 민생치안에 힘을 기울였다면 이런 일이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새누리 당사 앞은 오늘의 소도

삼한시대에 소도(蘇塗)라는 곳이 있었다. 제사를 관장하는 천군이 이곳을 신성한 구역으로 선정하고, 농경과 종교 의례를 주관하던 장소였다. 소도는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죄인이 이곳에 숨으면 잡을 수 없다. 즉, 치외법권 지역을 말할 때 소도라 부른다. 현대판 소도가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이 아닌가 싶다. 경찰이 이곳에만 들어오면 법을 어긴 범인이 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처벌되지 않고 문책 또한 없다. 경찰의 신분을 망각한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공과 사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합법이 불법으로 둔갑하고 있는 법조차 제 마음대로 해석된다. 법 집행을 담당하는 경찰은 이곳에선 탈법도 용인된다. 두려울 것이 없다. 새누리당 당사 앞이 어떤 이를 위한 신성지대길래 이런 불법이 용인되는 현대판 소도가 되었나. 정작 민생은 칼부림에 유린된 채 말이다.

‘쌍용차 국정조사’와 ‘쌍용차 특별법 제정’ ‘쌍용차 청문회’ 실시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마침 여야 합의로 쌍용차 청문회가 오는 9월 초 열릴 예정이다. 쌍용차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다. 폭력의 한가운데서 폭력을 말해야 하는 이 비참함이 언제까지 더 이어질 것인가.

쌍용자동차 해고자·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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