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음력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때마침 월요일에 오신 부처님 은덕으로 부처님의 가사장삼 황금빛처럼 3일간은 황금연휴였다. 더구나 화창한 날씨는 많은 사람들을 집안에만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산과 들, 그리고 유원지로 나들이를 나선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연휴가 반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감옥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다. 감옥은 연휴가 되면 폐방(운동과 면회가 되지 않고 연휴 기간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에 답답함이 가중된다. 서울 용산 참사로, 쌍용차 파업으로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감옥에 갇혀 있다. 각자의 달은 아직 완전히 차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번 사월 초파일도 특사는 없었다. 창살 넘어 보게 됐을 달이 완전히 익으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인지. 저 달이 차기까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프리랜서 아나운서 투입은 위헌이다
언론사 파업이 100일을 넘어 장기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방송, 문화방송, YTN, 국민일보, 연합뉴스는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언론노동자에게 길거리 투쟁이 익숙할 리 없다. 거리와 현장은 기자들에게 취재의 공간이지, 투쟁의 공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 쪽과 정부의 무대응은 날로 이들의 어깨를 누른다. 다양한 논리로 파업 대오를 이탈하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파업에 동참하는 언론노동자의 세는 늘어나는 추세다. 그만큼 이번 파업의 의미는 크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지고 격려와 쓴소리를 거리낌 없이 주고받는 관계가 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밤늦은 시간 이들도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 빛나는 별과 이지러지는 달은 때론 상념을 부채질하고 고민을 선물한다. 저 달이 차기 전에 마무리짓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했겠지만, 아직 달은 차고 기움만을 반복하고 있다.
문화방송 아나운서였던 김성주씨가 파업 중임에도 복귀를 선언했다. 프리랜서는 신분상 노조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탓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조원이냐 아니냐라는 문제가 아니다. 헌법엔 파업 기간에 대체인력을 투입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파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를 위해 이렇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방송사들이 임시 기자와 임시 아나운서를 마음대로 투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뽑은 사람들에 대해 계약 해지마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공공의 전파를 활용해 전국에 확산시키고 있다. 여기에 김성주 전 아나운서 같은 사람이 있다. 프리랜서를 선언할 때나 다시 파업 중인 문화방송으로의 복귀를 선언할 때나 돈 때문이라는 세간의 평이 가혹하다고 본인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굳이 돈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올림픽 중계를 위한 ‘어려운 결단’이라는 설명은 납득은커녕 변명거리도 되지 못할 뿐이다. 공정언론을 지키려는 옛 선후배들의 ‘어려운 결단’인 파업에 기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으로 매도당해도 마땅한 변명을 찾을 수 없다. 노동자의 파업이 내부 몇몇의 부역자로 어려움을 겪고 회사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자주 봤다. 김성주 전 아나운서의 복귀는 그간 애정을 갖고 그를 봐온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일이다.
무려 3년, 창살 아래서 달을 보는 사람
파업으로 한상균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3년형을 선고받았다. 노동 문제로서는 가혹하리만큼 긴 시간이다. 그사이 그는 40대에서 50대로 바뀌었고,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어려운 시기에 지부장으로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을 이끈 사람치곤 순박하다. 개인적 욕심이 없었고, 곁눈질하지 않았다. 지부장으로 당선되며 했던 말을 끝까지 지킨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조합원만 보고 가겠다”는 그 말의 무게를 감히 내가 가늠할 수 있을까. 지부장으로서 홀로 결단했을 그 긴 시간도 모자라 벌써 감옥 생활이 3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떠난 동지가 늘어나는 만큼 몸무게는 빠져갔고, 푸른 수의는 헐렁해졌다. 약속했던 것이 무력화되는 것을 보며 또 얼마나 답답했을지 생각하면 지부장의 생각을 넘겨짚는다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그럴싸한 말로 공장 안 어용노조 위원장이 회사 사장과 신차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그는 또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지금의 쌍용차 어용노조 위원장 김규한과 그 무리는 파업을 깨려고 파업 기간 노동조합 사무실에 올라와 시너통을 들이붓기까지 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파업에 들어가자 철저히 회사 편의 부역자로 돌아섰다. 아니 돌아선 게 아니라 원래 그럴 목적이었다. 쌍용차 기술 유출이 사회적 쟁점이던 2007년, 어용노조는 결국 기술 유출 문제를 회사와 짜고 없던 일로 했다. 그 장본인이 지금의 어용노조 위원장이다.
쌍용차 공장점거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2009)가 있다. 이 제목은 파업 중인 조합원이 ‘저 달이 차기 전엔 끝나겠지…’라고 혼잣말로 지나가듯 한 것에서 따왔다. 그 조합원의 달은 지금 어디쯤 찼을까. 무수히 봤던 그 달은 지금 어디에 와 있을까. 한상균 지부장의 달은 또 어디에 있을까. 파업 중인 언론노동자들은 오늘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무슨 생각에 잠길까. 방송 혹은 언론사에 개별 복귀하는 사람들은 맘 편하게 하늘의 달을 보고 있을까. 반칙과 편법으로 올라선 자리는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은 달콤한 유혹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악마의 유혹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는가.
그러나 순리대로 달은 차고
생존권을 위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승리하는 곳도 있고 패배하는 곳도 있다. 승패를 떠나 가장 큰 아픔은 동료와 동지의 배신으로 인한 절망감이다. 긴 싸움을 하다 보면 싸움의 상대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에 더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것으로 싸움이 약간 뒤틀린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종종 본다. 그러나 결국 싸움은 차고 지는 달처럼 순리대로 가기 마련이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가는 이들보다, 멀리 보고 함께 가는 이가 훨씬 많다. 개인의 탐욕이 대세를 바꿀 순 없다. 우리가 바라는 저 달은 점차 차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정열적인 삶을 불사르고 있는 투쟁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삶과 투쟁을 사랑합니다.’
쌍용차 해고자·트위터 @nomad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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