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순서
① 과잉진료 권하는 병원
② ‘가짜 원장’ 양산하는 병원들③ 폐업하는 동네의원
④ 거대병원의 무한경쟁
⑤ 무너지는 공공의료두 살배기 유미(가명)의 몸에서 열이 끓었다. 고열은 며칠이 지나도록 내리지 않았다. 지난 4월24일 밤, 유미는 아빠의 품에 안겨 응급실에 왔다. 병원은 입원을 권유했다. 문제가 있었다. 병원에는 소아과 입원 병상이 없었다. 이 도시에도 유미를 위한 병상은 없었다. 이튿날 엄마는 직장에 하루 휴가를 냈다. 아이를 안고 이웃 도시를 찾았다. 그곳에는 소아과 전문의와 병상이 있었다. 그 뒤 사흘 동안 부부는 번갈아 직장을 쉬었다. 아빠와 엄마는 아기의 입원실에서 번갈아 잠을 자고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아기의 열은 떨어졌지만 부모는 녹초가 됐다. 아버지 박영수(44·가명)씨는 푸념하듯 말했다. “우리 도시에 입원 병상이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연봉 더 줘도 의사 구하기 힘들어
강원도 삼척시 얘기다. 인구 7만 명이 넘는 이 도시에는 소아과 병상이 없다. 아이들이 아프면 동해나 강릉까지 찾아가야 한다. 작은 도시에서도 부모들의 여론은 부글거린다. 지난 5월17일 시청 누리집에 글을 올린 최아무개씨의 하소연이다. “삼척에 있는 아기들은 아프지도 말아야 합니다. 삼척에서 아기 키우는 엄마로서 정말이지 너무 불편하고 불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시에서 적극 나서 해결 방안을 마련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미라’라는 누리꾼은 누리집에 간단히 평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삼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다시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기자가 강원도의 작은 도시를 찾은 지난 3월26일, 삼척의료원 1층 로비에는 공지사항이 눈길을 끌었다.‘휴진 안내’였다.“2012년 4월16일부터 전문의 퇴직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휴진하오니 진료 및 투약에 차질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떠나는 의사는 공중보건의였다. 흔히 공보의로 일컫는 이들은 군 복무 대신 지방의료원 등에서 3년 동안 일한다. 젊은 공보의는 3년을 채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그렇게 빈자리는 두 달 넘게 채워지지 않았다. 왜? 의사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원의 2층 원장실에 있는 박찬병 원장에게 가장 큰 일은‘의사 모셔오기’다.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도시에 의사를 유치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3월26일 기자가 원장실을 찾았을 때도 박 원장은 의사 1명과 전화로 연봉 협상을 하고 있었다. 수도권에 있는 의료원에 견주면 1.5배 되는 연봉도 의사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 서울 의사들에게 삼척은 먼‘오지’일 뿐이다. 시장이 제시하는 가격을 지방의료원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의사들의 충성도도 낮다. 공보의를 빼도 의사 11명 가운데 5년 이상 복무한 이는 1명뿐이다. 그나마 부족한 자리는 공보의로 채운다. 의료원에서 일하는 공보의는 5명이었다. 공보의도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강원도에 오는 공보의 수도 어차피 한정됐기 때문이다. 이가 없을 때 공보의는 그래도 든든한 잇몸이다. 소아과처럼,‘잇몸’에마저 구멍이 나면 답이 없다.
의사뿐 아니다. 간호사도 귀하다. 삼척의료원은 올해 들어 간호사 채용 공고만 5번 냈다. 언제나 ‘구인 중’이라는 말이다. 악순환은 이어진다. 사람이 없으니 일이 고되고, 일이 고되니 사람이 더 없다. 병원 본관 5층에서 근무하는 신순남 간호사는 자신의 3월 근무표를 보여줬다. 숨이 막혔다. 30대 후반인 그는 3월 한 달 동안 이레 쉬었다. 그 가운데 닷새는 전날 밤을 새워 일했다. 그러니 제대로 쉰 날은 딱 이틀이었다. 한 달 동안 밤새워 일한 날은 열흘이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 7시에 퇴근한 뒤 눈을 잠깐 붙이고 다시 오후 2시까지 출근한 날도 사흘이나 됐다. 밤낮이 수시로 뒤바뀌니 생활이 뒤죽박죽이다. 신 간호사의 말이다. “캐나다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나흘 동안 낮 근무 2번을 하고, 밤새우는 근무 이틀 하면 닷새 동안 쉬었죠.” 캐나다는 이미 별나라다. “여기에서는 일하고 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해요.” 굳이 뭐하러 이곳에서 일할까.“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고향에 온 김에 일하고 있어요. 그래도 공공병원이니까.”
시 지원금으로 간신히 공공병원 구실
‘그래도 공공병원’의 자리도 점점 옹색해지고 있다. 병원의 약력은 진료과를 폐쇄해온 역사와 같다. 2008년 이비인후과와 안과를, 2009년에는 가정의학과의 문을 닫았다.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공공병원이라고 해서 마냥 적자를 감수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부인과 분만실도 2003년 문을 닫았다. 2009년 지역의 다른 민간병원에서 분만병동의 문을 닫아 그나마 유일하게 유지되던 분만실마저 삼척시에서 사라져버렸다. 지역 여론이 들끓었다. 삼척시청이 나섰다. 2010년부터는 해마다 3억~5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원해주고 있다. 시청이 지어준 목발을 짚고 삼척의료원이 간신히 공공병원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응급의료 분야도 삼척의료원이 떠안은 짐이다. 지난 3월27일, 새벽 2시가 넘어 삼척의료원 응급실의 문이 열렸다. 삼척시 원당동에서 온 고인숙(52)씨였다. 고씨는 밤늦도록 기침이 멈추지 않아 응급실을 찾았다. 삼척의료원과 비슷한 규모의 민간병원에 먼저 갔다가 낭패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새벽에 민간병원의 응급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삼척시내를 한 바퀴 빙 둘러 삼척의료원 응급실까지 찾아왔다.“응급실도 없는 게 무슨 병원이에요?”간단한 치료를 받고 나오던 고씨는 목소리를 높였다.“내일 고발할 거예요.”고씨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응급실도 돈이 되지 않는 대표적인 진료 과목이다. 민간병원이 24시간 돌아가는 응급실을 놓을 이유는 없었다. 삼척의료원은 공공의료기관이라는 구색 때문에 적자를 떠안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주는 1억~3억원의 지원금이 그나마 공공의료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목발이다. 삼척의료원에는 공공의료사업팀이나 사회사업팀은 없다. 원무팀에서 공공의료 관련 업무를 함께 맡고 있다. 당연히 사업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박찬병 원장은“빈곤층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예방 서비스나 공공의료 교육사업 등을 제대로 하고 싶지만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럴 만도 하다. 병원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에 버겁다. 주머니 사정은 참담하다. 삼척의료원 직원들은 임금을 제때 못 받는 데 익숙하다. 2009년부터 병원은 크게 작게 24번이나 월급을 제때 못 줬다. 지난 5월 말까지 직원 100여 명이 못 받은 임금 누적액만 20억원에 근접한다. 병원의 한 젊은 직원은 “처음에는 공공병원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월급이 계속 안 나오니 직원들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침체됐다. 언제부터인가 의사를 탓하고, 병원을 탓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했다. 누구라도 탓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 공공의 변방에서 어른거리고, 그렇다고 상업성을 노골적으로 추구하지도 못한 병원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흑자를 본 적이 없다. 지난해에만 16억원의 적자를 봤다. 운영을 할수록 빚이 쌓이는 구조였다. 병원의 빚은 지난해 187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지 오래다.
장례식장과 건강검진센터로 돈벌이
‘공공’인 지방정부에서는 공공병원을 도와줄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지방정부의 눈에도 지방의료원은 돈만 드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강원도의회의 가장 최근 회의록을 찾아봤다. 지난 4월19일 사회문화위원회의를 보니, 도의원들의 말은 거셌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자체적으로 벌어먹고 살아라, 지원 한 푼도 없다,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고 팔아버린다고 그래요.”(이학년 의원) “돈 먹는 하마.”(원태경·남경문 의원) “건강검진센터 운영 활성화… 그런 것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본 방향이야.”(최재규 의원) 26쪽의 회의록을 몇 가지 열쇳말로 검색해보았다. ‘매각’이란 말이 7회, ‘적자’란 말이 19회, ‘수입’이란 말이 9회, ‘부채’란 말이 12회 등장했다. 반면 공공성·공공의료 등을 포함한 ‘공공’이라는 단어는 단 3회 등장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지방정부가 이끄는 지방의료원의 행선지는 뚜렷이 보였다. 강원도의회는 강원도청에서 편성한 50억원의 지방의료원 경영개선지원금을 올해 초 전액 삭감하기도 했다. 도의회는 지난 5월 지방의료원에 대한 조건부 매각을 약속받은 뒤에야 예산 집행을 승인했다.
다른 지방의료원들의 처지도 큰 차이가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해 12월 내놓은‘지방의료원 운영진단 및 개선방안 연구’보고서를 보면, 전국 34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곳은 5곳, 산부인과가 없는 곳은 7곳이나 됐다. 이 밖에 신경과(12곳)·정신건강의학과(19곳) 등 주요 진료 과목에서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또 2010년 지방의료원 34곳 가운데 28곳은 적자를 봤다. 이들 병원의 적자액을 모두 합하면 484억원이었다. 평균 적자액은 14억원이었다.
지방정부의 압박에 밀려 지방의료원은 돈벌이로 자주 내몰린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방의료원은‘꼼수’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공보의에게 주는‘인센티브’다. 공보의의 봉급은 한 달에 14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그 이상을 받으면 규정에 어긋난다. 일부 지방의료원에서는 공보의에게‘웃돈’을 얹어주는 방식으로‘실적’을 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를 두고 지방의료원을 비난하는 것이 적정할지도 의문이다.
장례식장과 건강검진센터는 합법적인‘꼼수’에 속한다. 실적을 올리려면 민간병원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삼척의료원도 2003년 나랏돈 7억원을 빌려 3층짜리 장례식장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한 강원도청 관계자의 말이다.“병원이 치료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멀쩡한 사람 검진하고 죽은 사람 장례식장 운영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중앙정부, 시장으로 떠미는 손
시장으로 내몰린 채 고사하고 있는 지방의료원을 보는 중앙정부의 생각은 어떨까.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월 공공의료 관련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방의료원의 시설을 개선하고 장비를 보강해 공공병원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겠다.” 말대로 됐을까. 그 다음달 보건복지부는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에 대한 운영 평가를 앞으로 회계법인에 맡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이 맡아오던 일이었다. 정부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지방의료원이 앞으로는 공공성이 아니라, 수익성을 기준으로 ‘승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장관의 말은‘립서비스’였다는 얘기다. 지방의료원을 시장으로 떠미는‘빤히 보이는 손’은 다름 아닌 중앙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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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강원)=글 김기태 기자 kkt@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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