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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도입하면 내가 더 건강해질까?

등록 2012-07-11 18:06 수정 2020-05-03 04:26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하면 경제에 도움이 된다.’
영리법인 도입을 찬성하는 쪽의 논리다. 우리나라 병원들은 ‘상업화’의 흐름에 휩쓸려 대부분 돈벌이에 몰려 있는 현실이지만, 정부와 일부 재벌 연구소에서는 영리병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논거는 여러 가지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미국, 비영리병원이 서비스 질 더 높아
첫째,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서비스가 향상된다?
미국 잡지 는 해마다 미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한 뒤 순위를 발표한다. 이 잡지는 올해도 어김없이 5천 곳에 이르는 병원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미국 최고의 병원 17곳을 선정해 누리집에 올렸다. 이 명단을 보면 정부의 논리와는 다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병원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은 존스홉킨스 병원을 포함한 17곳 가운데 영리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15곳이 민간이 운영하는 비영리병원이었고, 2곳이 주립병원이었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이 오래 공존한 역사를 지닌 미국의 연구는 우리나라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2003년 미국 텍사스대학의 로스나우 교수(보건학) 등은 1980~2001년 미국에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성과를 비교한 논문 149편을 모아 비교·분석했다. 결과를 보면, 의료서비스의 질을 비교한 논문 69편 가운데 41편이 비영리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반대로 영리병원의 서비스 질이 낫다고 풀이한 논문은 8편에 불과했다. 비용 대비 편익 부분에 대해서도 28편이 비영리병원이 더 낫다고 분석한 반면, 13편만이 영리병원의 편에 섰다. 접근성에 대해서도 20편(비영리병원) 대 1편(영리병원)의 일방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자선적인 기능에서도 비영리병원(16편)이 영리병원(0편)을 한참 앞섰다. 거의 모든 기준에서 비영리병원은 영리병원에 판정승을 거둔 셈이었다.
정부는 왜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서비스가 나아질 것이라고 볼까. 의료서비스의 특수성을 파악하지 않은 채,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의료서비스가 비슷한 것으로 유추하기 때문이다.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공급자 사이의 경쟁이 심화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서비스가 개선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의료서비스의 경우 시장의 룰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케네스 애로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1963년 보건경제학의 포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저명한 논문에서 의료시장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격에 대한 무감각과 가격경쟁의 결여.’ 소비자가 ‘서비스의 질’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가 서비스의 양과 질을 사실상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에서 경쟁이 커진다고 해도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율곡로) 보건복지부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의료민영화 저지 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율곡로) 보건복지부 앞에서 출범식을 갖고 의료민영화 저지 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돈 더 쓴다고 더 건강해지는 건 아냐

둘째, 영리법인이 도입되면 나라경제가 살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한국은행은 2009년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서 투자개방형 영리법인을 도입할 때 나타나는 경제적 효과를 약 24조원으로 어림잡았다. 영리병원을 도입한 결과, 의료서비스 산업이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한 추산이었다.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산업은 2007년 기준으로 30조원인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3.1% 정도였다. 미국(6.3%), 영국(5.4%), 일본(5.1%) 등 다른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

기획재정부도 2000년대 말부터 이른바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며 영리병원 도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기준이 되는 셈법은 한국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조업의 성장이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는 법률시장 등과 함께 의료시장을 미래의 성장 엔진으로 보고 있다. 특히 ‘747’ 등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는 ‘미개척’ 의료 분야는 경제지표를 ‘쉽게’ 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이런 ‘쉬운’ 성장도 괜찮은 성장일까?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경제학)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는 2010년 출판된 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수많은 연구들은 보건의료 분야에 들인 비용이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미국에서 보건의료에 더 많은 돈을 쓴다고 해서 국민은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미국인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은 6931달러로 일본인(2580달러)의 3배에 육박하고, 칠레인(772달러)의 10배에 다가선다. 미국인들은 건강하려고 엄청난 소비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미국인의 수명은 77.9살로 일본인(82.6살)이나 칠레인(78.6살)보다 짧다.

라잔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커틀러 교수의 2007년 분석도 예로 들었다. 미국 경제의 생산성이 1995~2005년 사이에 해마다 2.4%씩 늘어났지만 보건의료 분야의 생산성은 오히려 위축됐다는 내용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보면, 1999~2004년 미국인들의 보건의료 지출은 해마다 5.9%씩 늘었다. 보건의료 분야가 막대한 돈을 빨아들였지만, 그 효과는 오히려 줄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가짜 성장’인 셈이다. 이 분석은 미국인들의 수명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짧은 이유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 된다. 보건의료 분야가 성장한다고 해서 국민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며, 오히려 그 사이에 ‘업자’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 실적’을 올리려는 관료 및 정치인들에게는 ‘의료 시장’은 버릴 수 없는 카드인 셈이다. 라잔 교수는 “아무리 양보를 해도, 보건의료 쪽의 생산성은 적절하게 평가하기는 힘든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공공 의료시설 확충이 고용 창출 효과적

영리법인이 도입되면 고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국은행은 2007년 보고서에서 의료 분야 규제 완화를 통해 일자리를 21만 개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만 놓고 보면, 의료시장을 확대하는 것보다 공공의료 시설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국무총리실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면, 미국 비영리병원에서는 100병상당 의료인력이 522명으로, 영리병원의 352명보다 많았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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