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에나 있었다. 인센티브.
공공의료기관도 자유롭지 않았다. 국립서울대학교병원부터 지방의료원까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의사는 소속 병원에서 인센티브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인센티브제란, 병원에서 진료를 많이 하는 의사에게 일정한 비율의 보상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목적은 분명하다. 병원의 실적을 올리자는 취지다.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진료량을 늘리면 병원의 매출은 늘게 되고, 그 매출의 일정 부분을 다시 의사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이 구조 속에서 엄격한 의사도, 준엄한 교수도 모두 사라진다. 대신 병원의 실적에 충실한 ‘영업사원’만 남게 된다. ‘사원’들이 인센티브에 매달리는 이유는 물론 경제적 목적이 크다. 한 사립대 의과대학 교수의 말이다.
“경쟁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않아”
“올해 들어 병원에서 교수들에게 토요일에 병원에 나와서 진료를 보도록 했다. 다른 대형병원과의 매출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결정이었다. 당연히 교수들은 싫어한다. 그러니까 병원에서 내건 것이 토요일에 한해서는 진료 수익의 50%를 보장해준다는 것이었다. 잘 봐야 한다. 일정액이 아니라, 일정 비율이다. 환자들이 최대한 더 많이 돈을 내도록 유도하라는 얘기다. 그러니 의사 처지에서는 토요일에 초진 환자를 보면 좋다. 처음 온 환자는 검사할 거리가 많으니까.”
인센티브제도는 병원 내부에서 경쟁을 자극하는 구실도 했다. 다른 사립대 의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병원에서는 인센티브제도의 취지를 설명하며 어디까지나 다른 대학병원과 실적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보면 병원의 다른 동료 교수들과 내 실적을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안에서 나도 ‘등수’가 대략 정해진다. 말하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된다. 교수 사회가 점잖다 보니, 드러내놓고 경쟁하지는 않지만 모두 의식을 하게 된다.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경쟁에 나서는 이유에는 정치적 측면도 있다. 첫 번째 사립대 의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실적이 높은 교수는 아무래도 병원 안에서 발언권이 세진다. 병원에서 공간이나 시설을 확보하기도 편해진다. 반대로 실적이 낮은 교수나 진료과는 찬밥 신세가 된다.”
공공병원도 마찬가지다. 한 국립대 병원 간호사는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주는 인센티브의 액수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선택진료비는 모두 해당 교수들에게 준다. 그리고 재진, 검사, 수술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을 돌려줬다. 그 액수가 교수에 따라서는 해마다 수천만원, 수억원이 된다. 그러니 이를 두고 교수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었다.” 대형병원뿐만 아니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공중보건의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방의료원들은 공중보건의를 구슬려서라도 ‘매출’을 늘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공식적으로 공중보건의의 월급은 140만원으로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올해 초 지방의료원의 한 원장이 도의회에 출석해 공중보건의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 사실을 인정해서 작은 파문을 낳기도 했다.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으로 돌아와
인센티브는 ‘그들’끼리의 경쟁으로 그치는 얘기가 아니다. 인센티브로 더 가열차게 타오르는 실적 경쟁은 고스란히 환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의사들의 인센티브 실태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조사나 설문이 진행된 바 없다. 그사이 과잉진료와 ‘30초 진료’는 계속된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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