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의인 나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지난 몇 년 사이 주변에 동네의원 몇 개가 더 들어서 환자가 줄어 마음이 편치 않은데, 포괄수가제 문제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부딪치며 분위기가 험악하기 때문이다. 처음 개원한 12년 전에는 의사협회의 방침에 동조했지만, 이제는 상황을 좀더 냉철하게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왜 이렇게 정부 정책마다 반대의 기치를 들며 반발하는 걸까? 한국 의사들은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이 이기주의로 가득 찬 의료인이고, 국민의 건강을 영업으로만 바라보는 파렴치한들일까?
유신독재 위세에 의료보험 반대 못한 의료계
의사들이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것은 의사가 된 이후에 본 것만 여럿이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하던 ‘주치의등록제도’가 의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야심차게 준비하던 ‘단골의사제도’ 역시 시작도 못해보고 묻혔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와 의사들의 대화가 잘되는가 싶더니 ‘선택의원제’ 문제로 다시 격돌했고, 이번에 포괄수가제 문제로까지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의사협회장이 앞장서서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의사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이 동참했다. 그다음에 돌아온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협하는 정책과 저수가뿐이었다. 주변의 의사들은 하나같이 이전 정부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의사들에게는 자승자박,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토양은 도대체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조선 말엽, 서양의학을 도입할 때는 미처 국가적 보건의료 체계를 잡을 여유가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 사람들을 문명화하고 위생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조선총독부) 하는 것이 보건정책의 목표였다. 보건정책은 일제의 조선 통치 목적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등 의학교육과 장기적인 보건정책을 수립하지 않았다. 낮은 단계의 위생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파리잡기’나 ‘쥐잡기’ 등을 중요 보건사업으로 삼았을 정도다. 게다가 배출되는 의사들에게는 아무런 제재 없이 개업할 수 있게 해서 영리를 취하게 하다 보니 이들을 국가 보건사업에 참여하게 하는 조처나 의도조차 없었다.
해방 뒤 미 군정 때도 국가적 차원의 보건의료 정책은 여전히 부족했고, 의사들이 국가정책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개발경제를 외치던 1970년대 이후에 조금씩 변화는 있었다. 그나마 의료기관 인프라를 늘리는 데 정부가 힘을 기울이기도 했다. 1977년에는 전국민건강보험의 모태가 되는 의료보험이 잉태됐다. 아마 의사가 사회와 연결돼 공적 관계를 맺는 최초의 의료정책일지 모른다. 1989년에는 지역별·직능별로 나뉜 의료보험이 전국민건강보험으로 확대됐고, 의료전달 체계가 최초로 시행됐다. 당시 낮은 수가에도 공적 건강보험을 의사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박정희 정부의 힘에 눌린 탓이 컸다. 정부는 의사들의 수입이 좋은 것을 보고 수가를 낮춰도 되겠다는 판단을 했고, 서슬 퍼런 유신시대여서 의사들은 크게 소리를 높여보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국가와 공적 관계 맺을 기회 없어
1980년대 이후에는 정부의 의료개혁이 의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거의 뜻을 못 이뤘다. 원인은 과거 정부가 찍어내린 진료 수가에 대한 저항감이 컸다. 그러나 한국의 의사들 사이에서 지난 120년 동안 몸에 밴 자영업자 의식도 한몫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의사자격증을 따서 전문의 과정을 거쳐 개원하기까지 국가는 의사로 성장하는 개인에게 어떤 지원도 한 적이 없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사면허증을 받는 순간을 제외하고 의사들은 국가나 사회와 어떤 공적 관계를 맺어볼 기회가 없었다. 외국처럼 국가와의 계약을 통해 주민의 보건의료를 책임지는 위치에 서보지도 않았고, 의사들은 전문가임을 자처하지만 그 전문성을 배타적인 것으로 만들어 수입을 얻는 것에 주력할 뿐이었다. 오히려 보건소가 지역에서 환자 진료를 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거나, 그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의료사회학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의사들의 이런 정체성을 ‘기업가주의’(Entrepreneurism)에서 찾기도 한다. 병원 운영을 기업 운영처럼 여기고 이익 창출을 주된 목표로 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의사로서 가지는 전문성을 사회적 관계 속에 역할하도록 하고 존경받는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외국에서도 동네의원은 대부분 개인 사유물이지만, 의사들은 교사나 경찰관, 소방관처럼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군으로 인식된다. 의사들은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다. 물론 충분한 의료재정과 ‘의료를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문명화된 시대에 의료는 분명 공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은 종합병원이든 동네의원이든 대부분 사적 영역에서 일을 한다. 그 토양 속에서 자영업자로 성장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포괄수가제 같은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보이는 의사들의 집단적인 거부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속 시원한 답을 내기는 어렵다. 몇 가지 실마리는 있다. 먼저 우리 의사들도 이제는 의료를 국민에게 돌려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사가 자영업자 정신을 유지하는 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의료 문제에 대해 이익집단으로서만 목소리를 높이는 한, 의사집단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힘들다. 요즘 포괄수가제를 둘러싼 여론의 싸늘한 반응을 봐도 이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이 때로 타당할지라도 이를 자기만의 언어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부가 의료 공공성 강화 앞장서야
정치인이나 정부도 의료의 공공성을 유도해내고, 필요한 재정과 인력 배치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의사들이 믿음으로 의료개혁 정책을 같이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먼저 자영업자를 양산하는 의과대학 교육 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 또 종합병원 이상은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하되, 동네의원들은 지역 주민이 편안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지속적이고도 포괄적인 1차 의료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형태가 주치의제도가 됐든, 다른 어떤 형태일지라도 근본적인 제도 변화가 필요할 때다. 자영업자로 위축된 의사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의료 행위에 대해 공적 개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지난 의약분업 때는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 아무런 타협 없이 서로 등을 돌렸다. 이번 포괄수가제 문제를 계기로 정부와 시민, 의사들이 현재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하며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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