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병원들이 조금씩 상업화할 때, 병원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찰실과 수술실, 입원실 같은 현장에서는 무슨 변화를 거쳤을까. 일반인이 감지하기 어려운 병원 내부의 사정을 ‘내부자’로부터 들어봤다. 이른바 ‘빅5’ 병원 가운데 4곳의 전·현직 간호사 5명을 초대했다. 모두 10년차 이상 고참 간호사들이다. 좌담에 참여하지 못한 1명의 목소리는 따로 인터뷰를 통해 좌담에 보탰다.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병원은 상업화의 과정에서 안에서부터 곪고 있었다. 그 안에서 동병을 겪는 이들은 상련했다. 은상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좌담의 진행을 맡았다.
이상은(이하 이): 환자 수가 많이 늘었다. 우리 병원 건물을 지을 때 예상했던 규모보다 4배 가까이 많은 환자가 찾아온다. 병원이 정신없이 바빠졌다. 과거에는 외래 환자를 오전 9시30분~오후 4시에 봤다. 이제는 거의 아침 8시부터 진료가 시작된다. 그리고 밤 10~11시까지 문을 연다. 늘어나는 환자들을 보면 끔찍하다.
정소미 (이하 정): 우리도 비슷하다. 아침 외래 진찰 시간이 8시로 빨라졌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에만 환자 120명을 볼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이 1~2분마다 1명씩 환자를 봐야 한다. 의사들도 성과를 내려고 그렇게 한다.
이: 의사들도 이제 일하기 싫다고 말한다. 위에서 압박이 오니 할 수밖에 없다. 과마다 실적이 거의 매일 보고된다. 게다가 새로 오는 환자나 초진·재진 환자 등 통계가 달마다 그래프로 나온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박신애(이하 박): 병원에서 입원 기간도 최대한 짧게 한다. 그래야 병원 수입이 늘어나니까.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 환자랑 보호자는 더 있고 싶은데 병원은 나가라고 하니까. 그러면 원무팀이 나서서 환자를 설득한다. 교수님까지 나서기도 한다.
이: 얼마 전에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평균 환자 재원 일수가 7.8일이라고. 우리 병원은 중증·희귀병 환자가 오는 곳이다. 그런 환자들은 잠깐 머물다 가는 거다.
민수희(이하 민): 우리 병원은 목표 재원 일수를 6.9일로 잡았다.
김소영(이하 김) 환자가 2주 이상 갈 것 같으면, 2주 이후에 다른 병원에 가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기도 한다. 한번은 자기 환자를 안 보내고 버틴 교수님이 있었다. 부원장님이 직접 나서서 그 교수님을 면담했다.
이: 우리도 병원에 진료협력팀이라는 것이 생겼다. 다른 병원과 연결해주는 팀이다. 환자가 2~3주 간다 싶으면 ‘작업’에 들어간다.
민: 병원에서 사후 관리를 안 하고, 말하자면 ‘단물만 빨아먹는’ 것이다.
김: 중환자실도 머무는 시간이 짧아졌다. 내가 있는 동안에도 2박3일 정도에서 당일로 많이 바뀌었다. 중환자실에 오래 있던 환자가 1명 있었다. 뒷배경이 든든해서 못 내보낸다고 하더라.
박: 기부를 하지 않으면 머물기 어렵다. (모두 웃음) 우리 병원에도 6개월까지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알고 보니 병원에 거금을 기부했다고 하더라. 물론 환자가 무작정 오래 입원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큰 병원에 있으면 다 나을 거라고 인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수술도 빨리빨리 하게 됐다. ‘데이 서저리’라는 외래 수술장이 1990년대 후반에 생겼다. 그러면서 환자를 아침에 수술하고 저녁에 퇴원시킨다. 안과·이비인후과 등에서 처음 했는데, 반응이 좋다 보니 병원에 퍼졌다. 기술이 좋아진 점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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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환자 얼굴을 볼 시간도 없다.
박: 우리 병원에서 간호사 수를 늘려서 간호 등급이 1등급으로 올랐다. 그런데 일의 강도는 떨어지지 않는다. 병상회전율이 높아지니 일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김: 일상이 없다. 항상 응급 상황이 됐다. 그러니 원래 있던 환자는 잊게 된다. 새로 온 환자만 신경 쓰게 된다. 간호의 질이 떨어진다.
이: 일이 고되니, 우리 병원에서는 한 해 간호사 300명을 뽑으면 100명이 나간다.
김: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목욕시켜줄 시간을 못 낸다. 인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린넨아줌마’라고 해서 인력을 따로 고용했다. 그런데 간호사가 봐주지 않으면 어차피 못한다. 그러니 형식적으로 환자를 닦고 끝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잘하게 된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질은 떨어진다.
박: 외국 영화를 보니 환자 1명 씻기는 데 간호사 2명씩이 매달리더라. 우리는 그게 안 된다.
민: 병원에서는 인력이 나가도 신규 인력이 들어오니 계속 신입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 간호사는 심리적 치료나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차트 정리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환자들과 얘기를 하고 설명을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 있으면 욕먹는다. 옛날에는 환자의 얼굴을 기억했다. 지금은 환자 얼굴을 볼 시간도 없다.
김: 내가 있던 중환자실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곳이었다. 병상 하나마다 1년에 8천만원의 적자가 났다. 병원에서 1년에 병상을 하나씩 줄이라고 했다. 그래서 회의를 열었다. 중환자실에 격리방이 있는데, 여기 들어오는 환자들에게 돈을 더 받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 없이 그렇게 하기는 힘드니까 방마다 미니오디오를 하나씩 넣었다. 그리고 하루에 8만원을 비급여로 받았다.
박: 옛날에는 7인용 입원실이 꽤 있었다. 환자들은 부담이 덜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비싼 1~2인용 상급병실을 늘렸다.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1인실로 간다. 환자들에게 부담이 커졌다. 비급여니까 비싸다.
김: 병원이 수익이 많은 외국인진료소, 건강증진센터, 장례식장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건강증진센터는 한번에 1500만원짜리 상품까지 내놓았다. 병원 지하는 거의 백화점이다. 밥값도 비싸다. 병원은 거기에서 임대료를 벌어들인다.
민: 병원에 의료기 업체가 입점해 있다. 병원에서는 다른 업체가 병원에 못 들어오게 한다. 그러니 환자들은 필요한 기기가 있으면 거기 가서 사야 한다. 환자 처지에서는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박: 병원 규모가 커지자 홍보과가 생긴 것도 특이하다. 기자실도 생겼다.
김: 언론을 유치하려 한다. 방송 한번 타면 환자가 확 늘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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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에 따라 교수님들 줄을 세운다”
이: 병원마다 돈 되는 암병원을 짓는 것도 상업화의 일종이라고 본다. 병원에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실이 많다. CT실에서 하루에 400건을 찍는다. 그러니 기기가 엄청나게 돌아간다. 전신 양전자단층촬영(PET)은 보험이 안 된다. 가격이 150만~180만원 한다. 몸 전체를 찍는다. 교수들이 ‘오더’를 내리면 해야 한다. 심지어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찍고 와도 “그 영상 못 봐”라며 다시 찍는다. 물론 외부에서 가져온 자료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정: 우리 병원에서도 CT·MRI를 남용한다고 본다. 그래도 교수님이 “진단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박: 옛날에는 응급실에서도 엑스레이만 기본이었다. 이제는 CT·MRI를 찍는 게 기본이 됐다. 의사 선생님 처지에서 생각하면 시간이 없어서 그런 점도 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판단을 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이: 의사들도 성과급을 받는다. 그러니 매출을 올려야 한다. 과별로 경쟁도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다빈치’라는 로봇 수술이 많이 늘었다. 처음엔 갑상선 수술에서 쓰기 시작했다. 수술 한 건에 1500만원을 받았다. 그냥 절개 수술하면 200만원을 받았다. 그렇게 외과가 돈을 많이 버니까 비뇨기과도 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전립선암 수술을 시도했다. 비급여니까 부르는 게 값이다. 환자들한테는 이렇게 설명했다. “절개 수술을 하려면 8개월 기다리세요. 그런데 다빈치는 두 달 만에 합니다.” 그렇게 로봇 수술 건수가 늘었다. 1년 만에 수십억원 하는 기계값을 뽑았다. 병원이 좋아했다. 그래서 기계를 한 대 더 사줬다. 그러니 산부인과도 하고 싶어 했다.
김: 기기를 환자에게 필요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구입했으니까 쓴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환자에게는 ‘성능이 좋아서’라고 설명한다. 의사들이 새로운 기계를 쓰면 원래 있던 기계는 금방 구식이 된다. 그래도 업체에서는 병원에 원가 이하에 기계를 제공하는 것 같다. 우리 병원에서 쓰면 다른 작은 병원에서도 따라서 쓰니까.
박: 의사 선생님이 수술법을 하나 외국에서 배워왔다. 물론 비급여였다. 환자들에게 새 수술은 2천만원이 더 비싸지만 합병증이 더 적다고 설명한다. 부모님을 모셔온 아들이라면 누가 더 싼 거 해달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시술의 질이 그렇게 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더 비싼 수술을 하게 된다.
이: 교수님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하게 붙었다. 교수님 한 분은 식사 시간이 아예 없다. 환자들이 들고 온 떡·샌드위치를 먹으며 진료한다. 하루에 250명 넘게 본다. 일을 한번 시작하면 저녁 6~7시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선생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정: 실적에 따라 교수님들을 길게 줄 세운다. 그러니 경쟁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병원에 새로 온 환자와 초진의 선택진료비는 교수님들이 다 가져간다. 그리고 재진·검사·수술은 일정 비율을 받는다. 교수님들이 거기에서 돈이 많이 들어온다. 몇천만원, 몇억원을 받는다고 말을 한다. 교수님들 사이에서 그게 경쟁이 된다. 반대로 환자들의 부담은 커진다.
김: 1990년대에는 그래도 병원이 복지재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간호사들도 환자 처지에서 값을 싸게 해주려고 신경 썼다. 예를 들어 엑스레이 기계를 병실로 가져와서 찍는 ‘포터블 엑스레이’ 찍지 말고, 다르게 하면 싸다는 식으로 설명도 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달라졌다. 병원이 의사 중심에서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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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아산은 어떻더라. 여기 병원은 후지네”
민: 삼성과 아산이 시장을 선도했다. 2000~2005년에 변화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대형 병원들이 규모가 더 커졌다. 다른 병원들도 따라서 규모를 키우고 리모델링을 했다.
박: 언제부터인가 환자들이 “삼성과 아산은 어떻더라. 여기 병원은 후지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우리 병원에서도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 옛날에는 교수님들의 월급이 비슷했다. 지금은 수술을 많이 하면 많이 가져간다. 그렇게 돈으로 의사의 가치를 따지는 식으로 바뀌었다. 근본적으로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의대·간호대를 오면 간호사 혹은 의사로서 봉사를 한다, 공공의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그런 게 적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 같다.
민: 병원이라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다. 민간 병원은 알아서 먹고살아야 하는 구조다. 그러니 살길을 찾아나서게 된다. 병원에서는 교수가 중요하다. 수술 많이 하고 검사를 많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병원은 도태되고 죽는다고 한다. 그러니 병원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지 못하다.
정: 환자들은 아직도 대학병원에 와야 제대로 고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큰 병원으로 몰린다. 개인적으로 이런 의료공급 체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병원이 잘돼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 모순이다.
이: 우리 병원에서도 ‘조금만 있으면 죽는다’고 한다. 지금 위치에서 곧 떨어진다고 한다. 그 얘기가 몇 년 전부터 계속 나왔다. 그러니 내부에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계속 무리를 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로 가면 지금의 추세가 더욱 심화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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