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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한국 의사 vs 독일 의사 ‘선생님’


한국·독일 의사 비교로 살펴본 한국 의료계 사익추구적 토양… 의사가 되기까지 국가 지원 전혀 없는 시스템 근본 원인
등록 2012-06-29 11:27 수정 2020-05-03 04:26
연재순서 ① 과잉진료 권하는 병원
② ‘가짜 원장’ 양산하는 병원들
③ 폐업하는 동네의원
④ 거대병원의 무한경쟁
⑤ 무너지는 공공의료
⑥ 의료사고, 상업화의 그늘

⑦ 의사는 왜 ‘자영업자’가 됐나

김응수 원장. 김명진 기자

김응수 원장. 김명진 기자

틸로 슈나이더 원장.  한주연 제공

틸로 슈나이더 원장. 한주연 제공


































과잉의료, 리베이트, 의료사고, 수술 거부….

왜, 언제부터 우리나라 의사들은 사고뭉치로 돌변했을까. 수많은 전문직 가운데 유일하게 선비 ‘사’(士)가 아닌 스승 ‘사’(師)자가 붙은 직업인이면서도 왜 의사들은 대부분 마땅한 존경을 받지 못할까. 왜 한국의 의사들은 ‘스승’의 위치에서 벗어나 저잣거리의 장사치를 자임하기 시작했을까. ‘병원 OTL’ 7회에서는 그 까닭을 풀이해보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의사들이 자라나고 살아가는 토양을 파헤쳐보았다. 도대체 어떤 자양분을 먹었고 자랐기에 한국의 의사들은 이토록 타락하고 위축됐는지 그 영문을 알기 위해서다.

상대적인 분석을 위해서 한국과 독일의 의사를 한 명씩 호출했다. 한국에서는 서울 동작구에서 동네의원을 단독 운영하고 있는 김응수(43) 원장이, 독일에서는
옛 동독 지역의 도시 로스토크에서 동네의원을 공동 개원한 틸로 슈나이더(38) 원장이 나섰다. 둘 다 각자의 지역에서 건전하고 상식적인 ‘선생님’이 되고자 노력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두 사람에게 10개의 공동 질문을 던졌다. 두 나라 사이에서 토양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설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병수 새로의 도움을 받았다.

한 건물 병원 6곳 vs 병원수 지역별 제한

1. 일주일에 근무시간은?

김응수 원장(이하 김): 일주일에 60시간 조금 넘게 일한다. 3년 전부터는 수익을 늘리려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야간 진료도 하고 있다. 월·수·금은 아침 9시~저녁 7시, 화·목은 아침 9시~밤 9시, 토요일은 아침 9시~오후 4시 병원 문을 연다. 환자가 오든 안 오든 영업시간을 늘리는 것이 병원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근무시간을 더 늘려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주변에 개원하는 병원이 늘어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방문진료는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틸로 슈나이더 원장(이하 슈나이더): 3명이 공동 원장이 돼서 병원을 운영한다. 의사 1명을 고용해 우리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수는 모두 4명이다. 보통 진료는 일주일 가운데 5일만 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아침 8시~오후 4시에 근무한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근무하지 않는다. 이날에는 방문진료를 할 때가 많다. 목요일엔 오후 1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7시에 끝난다. 바빠서 점심시간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근무 외의 시간에는 연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을 만든다. 우리 의원은 잘 조직돼 있어서 근무량이 좀 적은 편이다.

2. 하루에 몇 명의 환자를 보는가?

김: (컴퓨터 모니터를 보여주며) 오늘 환자 49명을 봤다. 개원의 가운데서는 아주 많이 오는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적은 편도 아니다.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환자 수는 변동이 있다. 대략 40~70명이 온다. 평균적으로 이 정도 수준이다. 환자 1명마다 진료하는 시간은 3~10분이다. 오래 진료하고 싶어도 환자들이 바쁠 때도 있다. 또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오래 진료하지 못한다. 당뇨병 환자들은 20분 정도 좀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관리 방법 등을 두루 알려주고 싶다. 그렇지만 시간이 생각처럼 쉽게 나지 않는다. 안타깝다.

슈나이더: 오전에 20~35명, 오후에 20명 정도 진료한다. 그 가운데 몇몇은 정기적으로 검진하러 오는 경우다. 나는 환자 1명에게 10분 정도의 시간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이것도 불가능할 때가 종종 있다.

3. 병원들 사이의 경쟁은?

김: 10년 전에 개원했다. 그사이 건물에는 안과, 재활의학과, 이비인후과 병원 3곳이 더 생겼다. 지금은 한 건물에 병원만 6곳이다. 좁은 집에 가족이 꽉 찬 ‘풀하우스’다. 치과는 이웃한 건물 2곳에도 다 있다. 그러니 병원들은 완전히 자율 경쟁을 한다. 의사들은 알아서 벌이를 해야 하고, 책임도 각자 져야 한다. 동네의원은 동네슈퍼랑 처지가 비슷하다. 주변에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밀려나게 된다.

슈나이더: 우리 병원이 위치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에서는 의원 수가 지역마다 제한돼 있다. 그래서 개원할 수 있는 동네와 이미 의원이 포화 상태인 동네가 따로 있다. 의사가 포화 상태인 지역에서 개원하려면 의원 자리를 사야 한다. 물론 개원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그냥 개원할 수 있다.

1회 3800원 vs 1분기 10유로

4. 환자들은 진료비를 얼마나 내는가?

김: 기본적인 증상의 경우, 환자들은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을 때마다 3800원을 낸다. 그러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090원을 채워 병원에 보상해주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진단이나 치료 내용에 따라 비용은 다르다. 환자들은 치료를 추가적으로 받을 때마다 부가적인 비용을 낸다.

슈나이더: 환자는 분기마다 10유로만 내면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환자 1명에 대한 총액예산제다(상자 기사 참조). 한 분기 동안에는 환자가 병원을 몇 번 찾아오든 상관이 없다. 주마다 의료보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의료보험의 돈은 의사협의회에서 협상한 내용에 따라 의사들에게 배분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분기마다 환자 1명꼴로 30~50유로의 수입이 생긴다. 어린이나 노인 같은 환자 진료에 대한 병원의 수입은 약간 더 많다. 2004년 총액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은 되도록 많은 환자를 받기 원한다. 한 분기 동안에는 일단 한 번 본 환자는 다시 안 오기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전문의들은 다음 진료 예약을 다음 분기로 미루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면 의사 수입이 그렇게 많은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의사들의 수입은 적지 않다. 비보험 환자에 대한 수입이나 민간보험 환자에게서 나온 치료비 등 다른 수입들이 있기 때문이다.

5.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견은?

김: 가정의학과는 당장 상관이 없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제왕절개나 치질 수술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포괄수가제로 완전히 바꾸었을 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정부에서 재정지출을 절감하려는 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의료비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면 협조할 생각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들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 심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슈나이더: 모든 시스템에는 장단점이 있다. 독일에서도 옛날엔 행위별 수가제를 적용해 모든 진료 행위에 대해 각각 계산됐다. 이로 인해 과잉 진료 행위가 생겼다. 이제는 (포괄수가제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인) 총액요금제를 통해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지금 총액요금제에 만족한다. 우리 의원은 질 좋은 기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환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 개인 수입은 얼마나 되는가?

김: 일반 봉직의보다는 조금 좋은 편이다. (흔히 ‘페이닥터’로 알려진, 일반 병원에 고용된 의사를 가리키는 봉직의의 월급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수도권에서는 보통 500만~1천만원이다.) 그런데 개원 비용을 아직 못 갚고 있다. 채무를 갚고 나면 저축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지출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골프도 치지 않고, 출퇴근용 차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집도 전세로 살고 있다.

슈나이더: 우리 지역의 주치의는 의료보험 환자를 본 수입으로만 1년에 10만유로(약 1억5천만원) 정도를 할당받는다. 그 밖에 소견서를 쓰는 등 다른 데서 생기는 수입이 있다. 여기서 소득세와 민간보험비를 공제한 것을 보통 주치의들의 평균수입이라고 보면 된다. 소득 액수에 따라 15∼42%의 소득세를 낸다. 독일의 세금 구조는 누진적이다. 대다수 의사에게 최고과세율이 적용된다. 그만큼 수익이 높다는 뜻이고, 세금도 많이 낸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억원의 개원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공공 지원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의사 집단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게 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비싼 대학 등록금과 수억원의 개원 비용을 스스로 감당한다. 공공 지원은 거의 없다. 이 과정을 거쳐 의사 집단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규정하게 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등록금 비싼 한국 vs 등록금 거의 없는 독일

7. 수입에 만족하는가? 수입을 늘리려고 어떤 활동을 하는가?

김: 저축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불안하다. 그래서 야간 진료를 한다. 피부 레이저 시술도 한다. 이런 시술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아서 병원에 돌아오는 수익이 크다. 피부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매력도 있다. 건강보험에서 보상하는 수가가 매우 적기 때문에 건강보험 환자만 봐서는 병원이 생존하기 힘들다. 수익만 생각하면 피부나 미용 시술만 하면 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동네에서 오래 봐온 환자들도 있다. 지역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 그러니 건강보험 환자들도 계속 본다.

슈나이더: 의사들의 불평은 많은 편이지만 돈은 충분하다. 로스토크에서 내가 아는 모든 의사는 우선 삶의 질과 노동 부담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의사 수에 비해 환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과로가 가장 큰 문제다. 돈은 그다음 문제다. 의사들이 넘쳐나는 베를린에서는 운영난에 빠진 의원들도 있다. 그들은 환자를 얻으려고 고군분투한다.

8. 의과대학에 다니는 비용은 얼마였는가?

김: 내가 의대 다닐 때, 1년 등록금이 270만원이었다. 다른 전공은 200만원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비쌌다. 의대에 다니는 것이 효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재비도 한 학기에 20만~30만원이 들었다. 당시에는 복제본 교과서를 많이 봤다. 그래서 그나마 그 정도 든 것이다. 지금은 저작권 때문에 원서를 사야 한다는데 부담이 클 것이다. 의대 교육 과정에서 정부 지원은 없었다.

슈나이더: 등록금은 거의 들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 학기에 100유로 정도의 등록금을 냈다. 이는 버스와 기차, 그리고 학교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금액이다. 책과 자료에 드는 돈도 별로 많지 않다. 부모님의 소득이 낮은 학생에 한해 학자금 융자도 받을 수 있다.

9. 의대에 다닐 때 의료윤리에 관한 과목이 있었는가?

김: 본과 2년차에 의료윤리학 수업을 들었다. 물론 ‘국·영·수’는 다른 과목들이었고, 의료윤리학 과목은 학점 비중이 낮다. 말하자면, 고등학교 때 윤리 같은, 그러니까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는 과목이다. 게다가 본과 때라서 밤늦게 해부학 실습을 하기 때문에, 윤리학 수업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슈나이더: 들은 바 없다. (독일 하노버의과대학의 나이츠케 박사가 지난 2008년에 쓴

“시골 개원 때 5만 유로 무상 지원” 10. 개원 비용은?

김: 10년 전 개원할 때 2억원을 대출했다. 당시 의료 관련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에서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2억원을 빌려줬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은 없었다. 중간에 이자 부담이 적다는 ‘엔화 대출’로 갈아탔다가 엔화 환율이 크게 올라 빚이 오히려 많이 늘었다. 아직도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당시 다른 개원의들도 엔화 대출을 했다가 손해를 많이 봤다. 지금껏 금융기관의 노예가 된 느낌이다. 이자를 제때 갚아야 하니까.

슈나이더: 정확하게 이야기하긴 어렵다. 의사가 부족한 시골 지역에서 개원할 때는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다. 내가 사는 주에서도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에 의원을 열 경우 무상으로 5만유로를 받는다. 지역에 따라 지원 내용이 다르다. 도시에서 주치의가 병원을 여는 비용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아주 비싼 기계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개원할 때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컴퓨터 장비들이다.

11. 하고 싶은 말은?

김: 다른 병원에 가면 나도 환자다. 의사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거 아니다. 치과에 가서 입 벌리고 있으면 나도 ‘이거 속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의사들이 양심적으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제도적·재정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너희만 고생하냐’라는 말 듣는 것 알고 있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운영하는 병원들이 안 망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공익적인 의료를 하고 싶지만 ‘수익을 위해서는 피부·비만에 비중을 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도 그걸 바라는 거 같다. 비싼 레이저 시술을 하고, 공격적으로 홍보하라고. 그러면 돈을 더 대출받아서 병원 확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아직도 보험 환자 받냐”고 말하기도 한다. 돈이 되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로 진료과목을 갈아탄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배운 가정의학을 버려야 하나, 이런 억울함이 있다.

슈나이더: 독일에서도 1차 의료 전담 의사 수는 부족하다. 현재 정부(기민련-자민당)도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지만 전문의 이익단체의 뜻을 거스르는 데 주저하고 있다. 그래서 1차 의료 전문의 시스템을 제대로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사민당은 주치의제도를 강화해서 불필요한 진료로 생겨나는 비용을 제한하려 한다. 그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 개혁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어설명
행위별수가제: 의사가 진료량에 따라 보상을 받는 방식. 이를테면 병원이 수술 환자에게 주사나 검사 등 치료 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늘게 된다.
포괄수가제: 의사가 질환별로 정액의 보상을 받는 방식. 질병에 따라 보상액이 미리 정해져서 주사나 검사 등 치료행위가 늘어도 병원의 수입이 늘지 않는다.
총액예산제: 병원이 한해 예상되는 비용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진료하며 보상을 받는 방식. 수입 총액이 미리 정해져서 주사나 검사 등 치료 행위를 여러 번 해도 수입이 늘지는 않는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로스토크(독일)=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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