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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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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공공성’이 답이다


재앙 불러올 게 뻔한 의료상업화의 내일… 탈상품화·탈이윤화 정책과 함께 공공의료 재공공화, 민간의 공공성 강화해야
등록 2012-07-14 13:46 수정 2020-05-03 04:26
상업화로 치닫는 의료계의 전망은 암울하다. 호바르 부스트니스 감독의 2010년 영화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의 한 장면.

상업화로 치닫는 의료계의 전망은 암울하다. 호바르 부스트니스 감독의 2010년 영화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의 한 장면.

아주 잘된 일이라고 적극 나서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적극적인 옹호론자를 빼면 극단으로 치닫는 의료 상업화를 바라보는 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시대적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는 쪽이 하나, 그래도 되돌려야 한다는 쪽이 다른 하나다. 적응하거나 편승한다는 쪽을 소극적 옹호론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는 공공의료(또는 공공성) 강화론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건보 보장성 확대라는 ‘탈상품화’정책

나는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려 한다. 현실과 규범,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이 방향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연재한 8번의 ‘병원 OTL’에서 보듯, 끝 모르고 질주하는 상업화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그것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바닥을 향한 경주’를 피할 수 없다.

누구의 이익과 손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업화는 이 사회 99%의 건강권과 건강정의를 질식시킨다. 문명사회의 포기할 수 없는 지향이자 민주공화국이 국민에게 보장해야 할 가치를 가로막는 것이다.

가던 길을 바꾸지 않고 ‘완전한’ 시장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으로나 경험으로나 성립할 수 없는 대안이다. 근본적 시장주의자조차, 전제조건이 많이 붙지만, 공공의료의 역할 찾기와 보강을 주저 없이 말한다.

문제는 ‘어떤’ 공공의료인가, 그리고 ‘어떻게’ 갈 것인가다. 딱 부러진 답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의료 역시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사회경제 구조에 속해 있다. 실핏줄처럼 구석구석까지 뿌리내린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는 것도 쉽지 않다. 20년이 넘도록 공공의료를 말해왔는데도 뚜렷한 성과가 없는 데에는 이런 사정도 크게 작용했다.

지난 논의와 노력의 경과를 볼 때 앞길 역시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의료의 공공성은 ‘과연 그게 될까’라는 실현 가능성에 따라 달라질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할 당위에 속한다. 그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회적 가치라는 것 자체가 변화의 힘을 갖는다.

지향은 당위라 할 수 있으나 대안도 추상에 머무를 수는 없다.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과 장기적으로 추구할 것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 물론 단기적·현실적 과제라 해도 장기적 지향과 느슨하게 멀어지면 안 된다.

단기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은 큰 틀은 그대로 둔다(또는 둘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경우 상품으로서의 특성이 약해지도록 고리를 끊거나 느슨하게 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우선 환자에게는 의료가 하나하나 값을 쳐서 거래하는(구매하는) 상품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 현재는 이윤과 영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간 공급자(병원이나 의사) 역시 그러한 경제적 동기의 강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보자. 환자가 직접 ‘구입’해야 하는 의료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좋겠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는 것이 중요한 한 가지 방법이다. 내가 돈을 내고 사는 것은 사회제도인 건강보장의 범위 밖에 있는 몇몇 가지로 한정해야 한다. 주치의제도 역시 설계를 제대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서비스를 사고파는 관계가 아니라 건강관리의 협력관계로 바꿀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탈상품화’ 정책이다.

면세 등 혜택주고 공공 의무 강제해야

민간 공급자가 경제적 동기로부터 좀더 느슨하게 되는 데에는 진료비 보상제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을 차지한다. 포괄수가제 시행을 두고 한 차례 홍역을 치렀지만, 진료비 보상제도가 가지는 의미는 가격의 높낮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의료를 보는 눈과 환자-공급자 관계가 바뀐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행위별 보상제도는 환자든 공급자든 의료의 가짓수와 그 가격에 아주 민감하게 만든다. 서로 사고파는 관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환자든 의사든 가짓수와 가격에 신경을 덜 쓰는 제도가 대안이 되어야 한다. 탈상품화와 짝을 맞추면, ‘탈이윤화’ 정책이라고 할 것이다.

탈상품화와 탈이윤화 정책으로 한국 의료의 구조화된 특성과 경향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구조적 문제의 바로 그 ‘구조’를 해결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공공성을 결정하는 근본적 구조는 소유와 거버넌스다. 누가 권력을 가지고 누가 지배하는가, 이에 따라 공공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공공적 지배가 아니면 공공성은 보장될 수 없다.

공공의 권력과 지배를 국가나 정부가 직접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으로 좁히지 말자. 현재 상황을 보더라도, 국립대병원을 비롯해 이른바 공공병원의 행태가 민간병원과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공공성은 단순히 누가 소유하는가 하는 문제를 넘는다는 것을 뜻한다.

공공의 권력과 지배가 강화되려면 서로 수렴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하나는 공공기관을 ‘재(再)공공화’ 하는 것(공공기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새삼 다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민간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공공병원을 다시 공공답게 하자는 것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익숙한(그렇지만 보건의료에서는 낯선) 과제와 연관된다. 지금까지도 공공병원 개혁을 말해왔지만 효율성, 경쟁, 성과보상, 위탁 등등의 시장적 방식은 상품화를 강화할 뿐이다. 대신, 더 많은 참여와 민주적 운영을 통한 공적 지배의 강화가 필요하다. 시민과 주민이 공공병원의 기획과 운영, 평가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민간병원의 공공성 강화 역시 민주주의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첫째, 명목뿐인 비영리기관의 의무와 권리를 명확히 하자. 면세를 포함해 적극적으로 혜택을 주는 대신, 미리 규정해놓은 공공의 의무를 이행하게 한다. 사회적 압력과 감시가 새로운 거버넌스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다. 둘째,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는 동기를 줄여야 한다. 독일과 같이 공적자금으로 건물과 장비 같은 자본에 투자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째, 자본과 전문가가 독점하는 의료의 ‘생산체제’를 넘어, 다양한 대안을 실험하고 성취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새로운 소유와 관리 방식의 기관은 의료생협 정도다. 더 많은 대안들,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소유와 관리 방식, 그리고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견고한 시장구조에 틈을 낼 수 있어야 또 다른 대안의 공간이 생긴다.

사회권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에서 에릭 올린 라이트가 쓴 말을 빌리자. 공공성 강화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두 가지 권력 모두에 사회권력(시민사회)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의 문제다. 다시 말하면, 사회권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공공성의 수준이 결정된다. ‘민주적 공공성’이야말로 한국 의료의 상업화를 역전시킬 수 있는 핵심 전략이다.

김창엽 서울대 교수·보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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