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그들을 적으로 생각하였다. 2009년 1월20일 오전 5시30분, 한강로 일대 5차선 도로의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경찰 병력 20개 중대 1600명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대테러 담당 경찰특공대 49명, 그리고 살수차 4대가 배치되었다. 경찰은 처음부터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한강로2가 재개발지역의 철거 예정 5층 상가 건물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 중인 세입자 철거민 50여 명도 경찰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최후의 자위책으로 화염병과 염산병 그리고 시너 60여 통을 옥상에 확보했다. 6시5분, 경찰이 건물 1층으로 진입을 시도하자 곧바로 화염병이 투척되었다. 6시10분, 살수차가 건물 옥상을 향해 거센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흠뻑 젖은 시민을 중요 범죄자나 테러범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6시45분, 경찰특공대원 13명이 기중기로 끌어올려진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에 투입되었다. 이때 컨테이너가 망루에 거세게 부딪쳤고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이 물대포를 갈랐다. 7시10분, 망루에서 첫 화재가 발생했다. 7시20분, 특공대원 10명이 추가로 옥상에 투입되었다. 7시26분, 특공대원들이 망루 1단에 진입하자 농성자들이 위층으로 올라가 격렬히 저항했고 이때 내부에서 벌건 불길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며 큰 폭발음과 함께 망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물대포로 인해 옥상 바닥엔 발목까지 빠질 정도로 물이 흥건했고 그 위를 가벼운 시너가 떠다니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작전은 경찰 한 명을 포함, 여섯 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원로 시인 이시영의 열두 번째 시집 (창비 펴냄)의 표제작 전문이다. 용산 참사, 반문명적 비극이다. 대한민국의 목구멍에 걸린 가시다. 지금, 8명의 시민이 감옥에 갇혀 있다. 재개발 공사는 3년째 중단 상태다. 철거의 긴급성은 부인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살인 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오사카 총영사로 영전시켰고, 김씨는 4월 총선에 나서겠다며 총영사직을 열 달 만에 그만뒀다. 이 대통령은 1월12일 특별사면에서 건설 분야 행정제재 3472건을 풀어줬다. 용산 참사로 감옥에 갇힌 철거민은 사면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에겐, 떼돈을 벌려고 법을 어긴 건설족은 사람이고, 삶터를 지키려 발버둥친 철거민은 사람이 아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 사면을 두고 “토건정부로서는 ‘당연한 임무’를 다한 것”이라고 조롱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2월2일 감옥에 갇힌 8명의 특별사면을 이 대통령에게 청원했고, 2월7일 박원순 서울시장도 특별사면을 공식 건의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오불관언이다. 새누리당의 핵심 인사는 ‘당내에서 용산 사면 문제가 논의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그런 거 몰라. 그거까지 관심 쓸 놈이 어디 있나. 머리 아픈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퉁쳤다. 새 세상을 열겠다며 14년3개월 만에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이 떠받들 민심에 용산 참사는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강제퇴거금지법안은 국회 책상 서랍에 갇혀 있다. 3년 전 이른 아침 망루의 외로운 절규는, 아직도 가닿을 곳을 찾지 못하고 겨울 찬 허공을 맴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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