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아래가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싸리나무로 빗자루를 만들었다. 산속에서 긴 싸리만을 잘라 물속에 큰 돌로 눌러 뻣뻣한 싸리의 숨을 일단 죽인다. 이후 길이에 맞춰 칡을 끈 삼아 위아래를 묶으면 끝나는 꽤나 간단한 작업이다. 싸리나무를 베고 묶고 이후 청소를 하는 모든 과정에 나와 아버지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팔아본 적이 없어 상품가치가 어떠했는지는 가늠할 길 없지만, 아버지와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 한쪽에 묵직하게 남아 있다. 나는 이후 노동자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 산과 들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해 만든 물건들을 잊지 못한다. 일을 할수록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게 되는 자동차공장. 머릿속에서 시작과 완성품이 늘 함께 존재한 예전의 물건은 내게 다른 의미로 차츰 고개를 든다.
파업공장 안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꿈!
“우리가 자동차를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파업이 한창이던 2009년 6월의 어느 날. 어떤 이가 불쑥 던진 이 한마디는 파업 이후 내게 깊이 후회하는 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러나 강제로 뽑혀나가는 콩나물시루의 콩나물 신세인지라 코앞 투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후회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글과 말이 아닌 가장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봐라, 너네들이 아무리 우리를 내쫓으려 해도 우리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이며 ‘공장의 주인은 우리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자동차공장을 20년쯤 다니면 자동차 박사가 될 거라는 생각. 그런데 의외로 대다수 노동자들이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른다. 컨베이어 시스템 속에서 점차 부속화돼가는 노동자들이 자동차 전반을 이해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각자가 맡은 공정을 밤낮없이 기계처럼 조립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계와 사람의 경계가 없어진다. 내 일과 다른 작업자의 일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오직 그이의 관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공장의 현실이다. 그것도 관심의 영역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생산수단이랄 수 있는 기계는 노동자가 함부로 운영할 수 없지 않은가. 애초 생산 과정에 노동자가 개입할 수 없는 구조다. 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와 자본가의 첨예한 대립이 공장에서 일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 동안 자동차를 만든다’는 뜬금없는 생각은 ‘생산시설을 파괴하고 회사를 망하게 한다’는 회사 쪽의 음해를 보기 좋게 깨는 의미 또한 있었다. 노동자가 생산시설의 파괴를 꾀한다는 회사 쪽 주장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주장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파업공장 안에서 자동차를 만든다’는 꿈을, 나는 여전히 간직한다.
기타를 만들고 기타를 연주하는 꿈!
나는 기타를 못 친다. 난 왜 이 흔한 기타 하나 칠 생각을 못했지? 커나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드는 자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한다. 그렇다면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과연 어떨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자동차공장을 다닌다고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장기투쟁 사업장 가운데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사용자 쪽의 노조 말살로 인해 4월7일이면 만 5년의 투쟁 기간을 맞는다. 5년 동안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일반 시민보다 뮤지션들에게 유명한 투쟁 사업장이다. 이유는 이들이 만든 콜트 기타가 지금도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콜트·콜텍을 주제로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는 이들의 투쟁이 얼마나 길고 질긴지를 보여준다. 콜트·콜텍 공장엔 창문이 없다. 사장이란 사람이 딴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창문조차 막아버린 것이다. 기타 생산 과정의 특성상 수많은 연마질은 엄청난 분진을 발생시키는데도 말이다. 그 먼지를 오롯이 노동자들이 다 들이마시고 밤낮없이 기타를 만든 결과는 해고였다. 그 밖에도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들의 투쟁 기간만큼이나 두텁고 고단했다.
노동자들이 삶의 노래를 시작했다.
기타만 만들다 해고되고 5년간이나 싸운 이들에게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직접 기타를 연주한 것이다. 심지어 밴드까지 구성해버렸다. 이 얼마나 소름 돋는 유쾌함인가.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서울 홍익대 앞 ‘빵’이란 클럽에선 뮤지션들을 주축으로 해서 콜트·콜텍 노동자를 위한 수요문화제가 열린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문화제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풍성하게 한 달을 마무리한다. 뮤지션들의 자발적 연대라 할 이 공연은 매회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다. 이 무대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밴드, 이름하여 ‘콜밴’이 선 것이다. 아직은 어설픈 수준이지만 첫 공연 때 관객과 연주자 모두 눈물바다를 이뤘다. 베이스기타와 기타 2대, 그리고 ‘카혼’이라는 생소한 악기를 든 이들은 기타만을 만들던 노동자였다.
새로운 소통 방식과 연대의 장을 연 이 사건(?)은 나에게 큰 충격을 줬다. 파업공장 안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싶은 자동차공장 노동자와 기타를 연주하는 기타공장 노동자들은 지금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노동 과정에서 부품처럼 처분되고 해고가 남발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넘어서려는 이런 시도가 가진 자들의 군림과 억압을 이겨내는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는 그것을 확신하며 한발 한발 길을 열어가고 있다.
이들이 몸으로 전진시키는 역사
‘희망’이라는 말이 지천에 넘쳐난다. 그만큼 ‘절망’이라는 유령이 세상을 자욱한 안개로 덮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로 인한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점차 마음의 안정을 잃어간다. ‘장기투쟁 사업장’이라 일컫는 곳의 노동자들이 이처럼 장기적으로 탄압을 받는 이유는 뭔가. 신의 비밀을 알았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운명처럼, 자본의 비밀과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밤에 잠 좀 자자는 유성기업, 1500일이 넘도록 거리에 선 재능교육, KTX 민영화 반대를 외치는 철도노동자, 노래방 도우미와 못 논다는 이유로 8년 동안 해고된 코오롱 해고자, 사기 매각으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당한 풍산 노동자,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싸우는 3M 노동자, 작지만 큰 싸움인 한일병원 비정규직 식당노동자, 불법파견에 맞서 싸우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KEC라는 악마와 전쟁을 벌이는 노동자, 거대 공룡 KT에 맞선 자회사(KTIS, KTCS) 노동자들의 눈빛 속에 담긴 꿈…. 통제력을 상실한 자본의 무한 착취를 그나마 제어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해고노동자들에게 접을 수 없는 꿈이 있다. 노동자로 당당히 살아가고픈 꿈. 노동 과정에서와 생산물로부터 소외되는 구조와 틀을 바꾸는 꿈. 어떤 이들의 꿈이다.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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