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나는 중국 사람한테도 집을 빌려줍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찾아온 한 분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아, 네. 그 ‘선행’에 감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종·출신국가·장애·가족상황 등등을 이유로 임대를 거부하는 건 차별이라고 대꾸할 수도 없고, “다들 그래야 할 텐데요”라며 얼버무렸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정하고 세입자더러 나가라 하는 일이 식은 죽 먹기인 현실에서 ‘착한’ 집주인을 만나는 건 세입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하지만 세입자가 천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쉽다고 해도 행운일 뿐이다.
행운을 복권으로 남겨둘지 인권으로 만들어갈지는 사회의 선택이다. 행운을 복권으로 남겨두고 싶은 사회는 복권 당첨자들의 감격에 주목할 것이고, 인권으로 만들고 싶은 사회는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의 우울한 냉소에 주목할 것이다. 이 천사 이야기를 공모한다고 했다. 작은 기적들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세상’으로 바꾼다며 천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온갖 어지러운 마음이 뭉클해지는 마음을 자꾸 밀어냈다. 10년 동안 나가라 하지 않고 임대료도 올리지 않은 집주인이 천사가 되는 한국의 주거권 현실에 마음이 타고, “식사하셨어요?”라는 한마디로도 의사와 환자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데 그게 어려운 병원이 떠올랐다. 만약 천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떠올라 아찔했고, 천사를 만나게 된 순간까지 겪었을 괴로움에 한몫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났다. 이러니 사는 게 늘 팍팍한가.
기적에는 분명 감동이 있다. 공무원이 자신을 숨기고 정부지원금이라며 기꺼이 내준 등록금에는 ‘반값 등록금’에 없는 감동이 있다. 한 에이즈 환자의 의약품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후원금에는 ‘무상의료’에 없는 감동이 있다. 백청강이 오랜 노력 끝에 받은 거액의 상금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한 것에는 ‘사회복지 예산 확충’에 없는 감동이 있다. 쉽게 내주기 어려운 것을 조건 없이 내주는 사람과, 쉽게 받을 수 없는 것을 받게 된 사람이 만들어낸 감동 말이다. ‘권리’에는 이런 감동이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 받아야 마땅한 것과 받게 될 줄 몰랐던 것, 주어야 마땅한 것과 주고 싶은 것은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감동의 속살은 기적이 아니다. 기적 말고는 기댈 곳이 없던 사람들의 절박함이야말로 기적에 감동을 입힌다.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을 때, 그렇게 서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게 되는 시공간의 감동.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기적이 아니다. 은 이 감동을 천사가 만드는 좋은 세상의 그림으로 액자에 담을 수밖에 없었을까.
하필, 세입자라니 “집도 없으면서 왜 설치냐”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필,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를 보여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을 읽은 직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감동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천사가 아니다. 그리고 천사는 어디에나 있지 않다. 누구나 누려야 할 것들을 두고 천사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무언가 받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게 하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천사는 그저 옵션이면 충분하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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