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들의 겨울 패션 경향은 가히 전국 통일 수준이다. 길거리를 다니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노스페이스’ 재킷 덕분이다. 그들은 학교, 학원,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좀처럼 노스페이스를 벗지 않는다. 해당 업체 담당자마저 의아해할 정도로 노스페이스 신드롬(?)은 이례적이다.
노스페이스는 어쩌다 10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일까? 여기서 표준적 답변은 되도록 삼가자. 방한·보온 기능성,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망, 광고 모델에 대한 동일시, 또래 소속감, 자아 정체성의 표현처럼 이미 아는 해석 말이다. 실제로 10대들에게 사정을 물어보면 대개 지레짐작 성인들의 눈높이에서 답을 들려주기 일쑤다. “바람막이잖아요. 제법 따뜻하다니까요” “다른 애들이 입으니까 입지 않으면 불안해요” 등등. 그/녀들조차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방증이다.
물론 어떤 강박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래와의 동일시’라는 것은 상당수 10대들에겐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나 패딩을 입고 다니는 게 너무 흔하고 그렇기에 ‘찌질’해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들은 이 유행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도가 강한 경우에는 유사 브랜드나 ‘짭’(짝퉁의 요즘 말)이라도 입음으로써 ‘날라리’나 ‘일진’같이 이른바 잘나가는 아이들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표준적 해석 말고, 좀더 강한 해석을 시도해보자.
“너무 말라 보이는 게 싫었어요.” 비로소 말문을 열기 시작한 친구는 노스페이스 패딩에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마술적 효과가 있음을 드러낸다. 실제로 노스페이스 패딩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여학생보다 주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된다. 아웃도어 패션으로서 노스페이스 재킷은 남학생에게는 특히 남성성을 과시하도록 해준다. 패딩의 올록볼록함은 그에겐 없는 가상적인 알통인 셈이다. 육체노동자와도 같은 강인한 남성-성인으로서 이상적인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성인 이미지 창출은 학생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아닌, 학교 바깥으로 탈출한 듯한 능동감마저 부여한다(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과잉 때문에 노스페이스는 가장 10대적인 현상이 됐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의미심장하게도 노스페이스 유행 현상은 서울 강남이라는 빗장 도시에서는 좀처럼 출현하지 않는다. 10대들에게 바람막이나 패딩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그와 동시에 전혀 강남적이지 않은 현상이다. 노스페이스 스타일이 존재론적 불만에서 나오는 특정한 반응이라는 점을 감안해보자.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그리고 경향적으로, 현실로부터의 탈출이 무의미한 강남의 10대들로선 이 교복이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그저 찌질’한 스타일에 불과할지 모른다.
강남의 10대들이 자신의 문화자본과 사회 공간적 입지에 근거해서 시크함과 댄디룩을 강조하는 동안, 전국의 10대들은 바람막이와 패딩이라는 겹겹의 ‘아이러니’를 몸소 착용하고 있다. 10대들에게 노스페이스는 모호하고도 모순적인 계급적 전망 속에서 선택된 브랜드이자 스타일이다. 오늘날 전국의 (비강남의) 10대들에게 노스페이스는 단순히 유행에의 휩쓸림이 아니라, 자기 처지에서의 탈출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꿈을 향한 몸부림으로서 작용한다. 고가 브랜드 구입을 통해 중간계급을 향한 ‘집합적’ 신화를 꿈꾸는 한편, 역설적이게도 성인-사회인으로의 탈출을 위해 육체노동자 이미지를 지향하는 대량생산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노스페이스 재킷, 즉 고가이면서도 규격화·평준화된 패션 경향에는 (남학생들에게는 과잉된 남성성까지 부가하면서) 계급 이동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평등에 대한 모순적 관념이 난해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이런 결합이 적절히 해소되지 않는 한, 당분간 오늘날 10대들은 노스페이스를 계속 입고 다닐 것이다. 또 다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의 18 세상’은 10대 청소년의 하위 문화를 이리저리 요모조모 분석하는 칼럼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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