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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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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 먹읍시다

등록 2011-01-26 14:24 수정 2020-05-03 04:26
9마리 vs 200만 마리.

지난해 12월30일. 일곱 명의 아이들은 왜 공사장을 어슬렁거렸을까. 새벽 1시였다. 그들은 왜 그 짓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폐쇄회로텔레비전을 돌려놓는 침착함도 잊지 않았다. 공사장 한켠에 묶여 있던 뽀순이는 그렇게 끌려나왔다. 주인은 뽀순이가 제 목숨을 다하지 못하고 “맞아죽었다”며 울었다. “유기견이던 뽀순이를 데려다 키운 시간이 8년”이라고 했다.

니킥(무릎치기)과 라이터로 뽀순이를 학대했다고 자백한 아이들은 학교에서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확인된 것만 9마리, 한 달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18마리를 넘어선다는 증언도 있다. 아이들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발뺌했다. 목격자가 나오고 구석진 곳에 있던 폐쇄회로텔레비전이 범행을 증명하자 아이들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재미 삼아!” 순간 할 말 잃은 어른들은 ‘재미 삼아’라는 말에 모두 학생주임이 된 듯 매를 들었다.

밥 한 끼 먹읍시다

밥 한 끼 먹읍시다

일곱 아이들이 ‘재미 삼아’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그때, 바람에도 수십km를 날아다닌다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등장했다. 산 생명을, 놔두면 멀쩡해질 생명을, ‘청정국’ 지위 유지하겠다고 매장하기 시작한 게 벌써 200만 마리를 넘어섰다.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유포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하루에 소·돼지 10만 마리를 매몰하고 있다. 돼지는 이제 산 채로 묻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수조원의 보상금, 그에 못지않은 비용을 치러야 할 환경오염 등에 뒤늦게 생각이 미친 정부는 지금까지의 매몰정책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더 이상 죽이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니다. 묻기는 묻되 덜 묻겠다는 말이다. 덜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급증했다. 누가 누구를 탓할까.

침묵.

1월3일 몰려가 눌러앉았다. 밥을 지어 나눠먹기 시작했다. 서울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보름을 넘어섰다. 한 보수 일간지에는 광고가 실렸다. “홍대 총장님 같이 밥 한 끼 먹읍시다”라며 청소노동자들은 대화를 요구했다. 울어야 할 그들이 웃으며 먼저 자리를 제안했다. “사람 대접 받고 싶어서” 노조를 만들012어보겠다고 나선 지난 1월1일 그들은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최저임금이 안 되는 월 75만원의 임금에 300원의 점심값을 받으며 일한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홍익인’이라는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의 권리 못지않게 우리의 학습권은 당연한 권리”라며 농성 반대를 두고 논쟁 중이다. 학교는 침묵한다.

1월6일 올라갔다.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한진 해고자 김진숙씨의 농성도 보름째다. 회사 쪽의 400명 정리해고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올라오니 좋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인가. 회사는 발빠르게 부산지방법원을 통해 퇴거 단행 및 사업장 출입금지 가처분명령을 받았다. 크레인에서 내려오라는 뜻이다. 지난 1월17일부터는 하루 10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있다.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진다. 회사는 침묵한다.

1월11일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 스스로 세상을 버린 김주현씨의 장례식은 미뤄지고 있다. 김씨가 숨진 당일 “빨리 3일장으로 끝내자”며 연봉과 위로금을 약속했던 삼성 쪽은 “삼성 쪽 책임자의 사과와 근로환경 개선 등 재발방지 대책이 먼저”라는 유족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같은 부서 동료들은 문상을 오지 않는다. 결국 김씨의 가족들은 김씨가 일하던 공장 정문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침묵은 계속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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