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아, 안녕. 올해는 ‘뭘 보고 살까’ 궁금한 게 많다. ‘당신이 먹고 있는 게 바로 당신이야’(what you eat is what you are)라는 말처럼 ‘당신이 보고 있는 게 바로 당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눈 속에 그리고 당신의 눈 속에는 뭐가 비집고 들어올까. 그래서 우리가 본 것들은 또 어떤 이상한 화학작용을 불러일으킬까. 매일 건너는 횡단보도의 녹색 신호등부터 부엌에 있는 일제 식칼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면도기부터 양옥집 옥상에 올라가 앉은 노란색 물탱크까지. 이상한 것도 많이 보고 싶고 웃기는 것도 많이 보고 싶다.
그러다가 2011년에 볼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는 기상 예보처럼 2011년 ‘대한민국 디자인 예보’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기상캐스터가 된 것처럼 ‘볼 수 없게 된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무섭게 세워지고 있는 다리, 미끈한 아파트, 새로운 기차들을 위해 그 숫자 이상의 수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해마다 참 많은 디자인과 갑작스레 이별 인사를 하며 지내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울적한 것은 아니고, 문득 의뢰인 없는 탐정이 된 기분이다. 입었던 남색 교복이나 대학교 시절의 초현실적이었던 내 파마머리, 비둘기호에서 무궁화호로 바뀐 뒤 이제는 사라진 춘천 가는 기차까지 많은 물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왔다.
사라지고 있는 사물도 있다. 우리가 먹고 ‘있고’ 보고 ‘있는’ 것처럼 지금 한창 ‘사라지는’ 걸 온몸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들이다. 요새 내가 보고 있는 건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옥인아파트다. 옥인아파트엔 2011년의 청사진이 없다. 인왕산의 입구를 몸에 끼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지금 아무도 살지 않는다. 2009년 여름 철거가 결정된 옥인아파트는 1969년 여름 세워질 당시 9동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생겨난 ‘시민’아파트인 회현 제1시민아파트, 와우아파트와 함께 잘나가던 아파트였다. 지금은 3개 동만이 황량하게 남아 있다. 2011년을 맞은 아파트는 텅 비었지만 옥인아파트가 있던 자리의 청사진은 화려하다. 2011년 여름이 올 때쯤이면 정선이 그린 인왕산 자락의 몸체가 능수능란하게 드러나는 생태공원이 생겨날 예정이라고 아파트 입구의 현수막은 말한다.
한때 ‘차도남’이었던 남자가 어느 날 망태 할아버지가 되어 나타난 것처럼 옥인아파트는 지금 허름한 공사장 천막에 덮여 있다. 뻣뻣한 천막에 가려진 채로 아파트가 무너지는 소리가 가끔씩 쿵쾅쾅 들린다. ‘철거’라는 빨간색 글자가 새겨진 아파트 건물엔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이 보인다. 옥인아파트는 인왕산 산세 지형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각 동마다 실내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이토록 상냥한 분홍색과 살구 색깔을 가진 아파트를 또 볼 수 있을까. 다행히 옥인아파트의 급작스런 철거가 빚어낸 이야기와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옥인아파트에 살았던 한 작가의 제안에서 시작된 아티스트 그룹 ‘옥인 콜렉티브’(okin.cc)는 옥인아파트의 2009년과 2010년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혹시 옥인아파트는 새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마을로 이사 중인 건 아닐까.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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