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발명을 말하라면 단연 전기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법정 스님 같은 분은 단순하고 간소한 삶을 지향하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단출하게 생활하셨다지만, 현대인에게 전기를 뺀 삶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빛이 그림자를 만드는 이치처럼 최대의 발명품도 완벽한 긍정과 장점만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어서 인간 사회의 불행을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전기의 공급에서 찾기도 한다.
불면 권하는 사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눈뜬 자들의 도시
인위적으로 밤을 밝혀 얻어낸 시간과 공간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느라 사람들은 오늘 밤도 눈을 뜨고 있다. 불야성을 이루는 야간의 도심이야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접하는 일상이어서 무감각해졌다는 외국인도 동대문 야시장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새벽까지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인도를 꽉 메우고 차량 정체가 심해 교통정리를 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며 놀라워했다는 것이다. 소비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잠을 못 자고, 더 많은 소득을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해 밤에도 일을 한다. 대낮처럼 밤을 밝힌 대한민국은 점점 만성피로 덩어리가 되어가는 꼴이다.
우리나라 성인의 70%는 밤 12시 이전에 잠을 청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 겪어온 일이므로 별로 놀랍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그저 덤덤한 통계 수치다. 수면 부족이 집중력과 기억력을 해치고 우울증을 비롯한 심각한 건강 장애를 초래하므로 사회적·개인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고 만다.
현재의 기성세대들은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무언가 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자랐다. 누구에게나 고루 주어진 24시간에서 남과 똑같이 일하고 공부하고 식사하는 데 쓰는 시간 이상을 원한다면 잠자는 시간을 빼거나 쪼개어 쓰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것은 부지런함이요 성실함으로 귀감이었다. 반대로 심신이 건강한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입증된 시간(이를테면 8시간)만큼 자는 것은 곧 게으름이요 불성실하다는 무의식이 자리해 있다. 4시간을 자면 수험생으로서 당당해지고 1시간을 더해 5시간을 자면 게으름과 자책으로 몸부림치도록 했던 ‘4당5락’이 공공연했다. 잘 것 다 자고 어떻게 남을 앞서고 이기겠느냐는 말에도 대부분 선선히 수긍한다. 대한민국은 잠이 부끄러운 사회다.
이처럼 잠들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생의 수면 문제야 더 말할 이유마저 잃게 하고, 초등학생까지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의 수면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의 만성피로 정도는 이미 중증의 도를 넘었다.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 충분한 수면을 취할 권리를 영원히 박탈당하는 시작점인 셈이다.
초등학생에게 점심 한 끼를 먹이느냐 마느냐를 놓고 난리를 거듭하고 어린아이들에게 잠을 재우지 않는 것으로 세계 제일이라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모양새는 정말 모질고 인색하다. 경쟁이라 이름 붙이고 아이들을 위한 애정이라 쉴 새 없이 합리화해가며 잠조차 빼앗는 채찍질을 서슴지 않는 사회와 그에 무감한 어른들에게는 잔인하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고된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고생을 당연시하듯, 잠 안 오는 약으로 쓰였던 각성제 타이밍의 이름을 공유하고 살아온 기성세대의 방식을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가도록 그저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꿈을 갖길 원한다면
내 아이가, 우리의 아이들이 나보다는 조금 더 풍요롭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길 희망하면서 잠을 쫓아가며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온 것 아닌가. 불안과 바꾼 아이들의 잠만은 찾아주는 어른이 되자. 내 아이가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꿈을 갖기를 원한다면, 깨어 있기를 원한다면 나부터 오늘부터 무조건 많이 재우자. 제발.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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