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문득 동화를 한 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두어 해 전 어느 맑은 여름날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기 양주로 이사를 한 사촌이 집들이를 한다고 해 갔다. 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신선했다. 고만고만한 나이가 모였다. 고기 몇 덩이 굽고, 술 몇 순배 돌렸다. 아이 자랑할 시간이다.
“진서는 커서 어느 대학 갈 거예요?” 사촌이 딸을 불러다 묻는다. 씨익 웃더니 ‘별 싱거운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조카가 입을 연다. “으~, 하버드대학교.” 막 두 돌이 지난 녀석을 태릉선수촌에라도 입촌시켰던 모양이다. 조카는 큰애보다 몇 달 어리다. 질 수 없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를 불러세웠다.
“명현이는 커서 어느 대학 갈 거예요?” 큰애도 씨익 웃는다. ‘별 싱거운 걸 다 묻는다’는 표정도 지어 보인다. ‘됐다’ 싶다. “어, 어~, 난, 난….” 말머리가 길다. 일말의 불안감이 스쳐지나간다.
“난, 난, 원숭이대학교!”
졌다. 그즈음 소시지가 원숭이로 변해 나오는 만화영화를 즐겨보던 녀석이,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일본에 있다는 원숭이대학교 얘기를 스치듯 본 게 화근이었지 싶다. 방 안에 있던 친척들이 하나같이 배를 잡고 모로 눕는다. 웃을밖에.
때로 아이의 표현력에 놀라곤 한다. 그대로 베끼기만 해도 바로 동화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늦었다. 일찌감치 일어난 큰애는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밥 차려놓고 기다리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결국 팔을 걷어붙였다. 밥그릇에 조기살 발라 얹고, 숟가락을 든 채 아이를 따라다니신다. “우린 작고 힘도 없지만, 우리가 힘을 모으면 할 수 있어. 출도~옹 원더 팻!”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이가 깡총깡총 뛰기 시작한다.
“자꾸 안 씹고 물고만 있으면, 입에 벌레 생긴다~!” 출근 준비로 분주한 마누라 선생이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털어내며 한마디 던진다. 아이는 여전히 깡충깡충이다. 이러다 유치원 차 놓치지 싶다. 아이를 둘러메고 욕실로 뛸 시간이다.
“자, 치카치카~!” 치약을 묻힌 칫솔을 큰애에게 물렸다. 장래희망이 ‘공주’인 아이는 칫솔도, 치약도 ‘핑크’ 일색이다. 치카치카 퐁퐁, 제법 열심이다. 윗니, 아랫니를 골고루 닦아낸다. 많이 컸다. 역시 ‘핑크’인 플라스틱 컵에 물을 받아 건넸다. 물 한 모금 입에 넣더니 소리를 낸다. ‘오르르르르르루~, 오르르르르르루~, 퉤.’
“자, 한 번 더.” 다시 ‘오르르르르르루~, 오르르르르르루~’ 두 번 한다. 무슨 생각에선지 이번엔 ‘퉤’를 생략했다. 대신 입술을 오무려 물을 주욱 뱉어낸다. 입술 주변엔 온통 허연 치약꽃이 화사하다.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방글방글, 또 장난을 칠 기세다. “아빠, 아빠. 이거 봐, 이거 봐. 꼭 입이 쉬를 하는 거 같아. 치카치카 한 다음에, 입이 쉬를 해요.”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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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