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을 거세하면 재범의 위험성이 없어질까? 2003년 어느 날 밤 교도소에서 면도칼을 이용해 스스로 거세를 한 제임스 젠킨스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3건의 성폭력 범죄로 5년을 복역했고 집행유예 조건을 어겼다는 이유로 2년6개월을 더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검사는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치료시설 구금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젠킨스는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특단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거세한 성폭행범 젠킨스
그는 법정에 말쑥한 모습으로 출정하고 싶다면서 교도관에게 면도기를 빌렸다. 면도날을 빼들고 샤워부스로 들어간 젠킨스는 비명을 막기 위해 입에 사과를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거세를 했다. 그의 음낭은 교도소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젠킨스가 이런 극단적인 일을 벌인 것은 물론 장기간의 수감을 피하기 위해서다. 성폭력범은 재범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형기를 마치더라도 치료시설에 구금돼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젠킨스 본인은 거세가 효과가 있었으며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세는 정확히 제가 원하는 효과를 가져왔어요. 지난 2년간 어떤 성적인 충동도 느끼지 않았거든요. 예전에 어린 여자애들을 보고 느끼던 변태적인 환상은 사라져버렸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거세를 했음에도 판사는 그를 계속 구금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담당 검사는 젠킨스가 또다시 성폭행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를 풀어주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거세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성폭행을 ‘성’범죄가 아닌 ‘폭력’범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젠킨스에게 당한 피해자는 각각 13살, 10살 그리고 8살이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종류의 범죄는 성적 속성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를 자기 마음대로 괴롭히고 싶어하는 폭력적 행위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성적 충동을 약화시키거나 성적 능력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위험성은 여전하지 않을까.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조지프 프랭크 스미스는 1983년 화학적 거세를 받았다. 그는 화학적 거세의 성공 사례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5년 뒤, 그는 75건의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다시 구금된다. 이런 사례는 화학적 거세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근거로 제시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 빈발하는 어린이 대상 성폭력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지난 3월11일치 는 애꿎은 성매매금지법을 탓하기까지 한다. “이 나라엔 성매매금지법이 있다. 여성계 투쟁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성매매가 지하로 숨어들면서 비용이 높아졌다. 가난하고 소외된 젊고 늙은 남자들이 적당한 비용으로 성욕을 해결할 곳이 없어졌다. 이게 잠재적 성폭행 범죄자의 수를 늘리는 것은 아닐까?”
화학적 거세의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몇몇 국회의원은 법안을 만들어 발의하기까지 했다. 화학적 거세란 약물을 주입해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는 시술이다. 수술을 통해 물리적으로 거세를 하는 시술과는 다르지만 성폭력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물론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야 하고 중단하면 다시 성적 욕구와 기능이 살아난다. 그러나 일반의 이해는 ‘거세’라는 단어에 방점을 두어 이 시술을 하면 영구적으로 성기능이 박탈된다고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개조’하거나 ‘무력화’해서 아예 범죄를 저지를 생각도 못하게 하자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앤서니 버지스의 는 잔인한 폭력을 자행하는 주인공을 세뇌해서 범죄에 대한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내용의 소설이다.
주인공 알렉스는 폭력적 범죄를 저지르는 데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알렉스와 친구들은 마약을 먹고 그날그날 희생양을 찾아 거리를 배회한다. 단순히 돈을 노리고 범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에 금품을 빼앗은 뒤에도 피해자들을 잔인하게 폭행한다. 물론 성폭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루는 어떤 작가 부부가 사는 집에 침입해 작가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부인을 번갈아 성폭행한다. 어떤 날은 열 살도 안 된 여자아이들과 섹스를 한다. 또 다른 범행 대상을 찾아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에 침입한 알렉스는 친구들이 망을 보는 사이에 할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한다. 그러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고, 탈출을 시도하던 알렉스는 친구들의 배신으로 경찰에 체포된다. 중상을 입은 피해자는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생명을 잃는다. 알렉스는 살인죄로 처벌받게 된 것이다.
수감 생활을 하던 알렉스는 어느 날 교도소장으로부터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받는다. 2주 동안 ‘갱생요법’을 받기로 동의하면 남은 형기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형기를 대폭 줄여준다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알렉스는 소장의 제안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갱생요법은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알렉스는 매끼 식사 때마다 ‘루도비코’라는 주사를 맞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본다. 의자에 꽁꽁 묶이고 눈꺼풀도 강제로 잡아당겨놓았기 때문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상영되는 영화에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잔인한 폭력 장면이 쉴 새 없이 되풀이된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노인을 때리는 장면, 여자를 윤간하는 장면, 포로를 고문하다가 살해하는 장면 등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영상이 알렉스의 눈앞에 펼쳐졌다.
원래의 성격 같으면 참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루도비코 주사의 작용으로 알렉스는 폭력적인 장면을 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된다. 2주일이 지났을 때 교도소에서는 일종의 발표회가 열린다. 의사는 알렉스를 자극해서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옷을 벗다시피 한 여자를 들여보내서 성폭행하고 싶은 충동이 들게도 한다. 알렉스에게는 무기로 쓸 수 있는 면도칼이 주어지지만, 그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2주간 투약한 약물과 강제로 보게 한 영화가 알렉스를 개조시킨 것이다.
그는 이제 폭력적인 일을 하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고통과 메스꺼움을 느낀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그를 자극하기 위해 폭행을 가하는 남자에게 알렉스는 주머니에 있던 면도칼을 바친다. 성욕을 자극하기 위해 등장한 여자 앞에서는 “이 세상의 사악한 놈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도와주겠소. 내가 당신의 진정한 기사가 되게 해주시오”라고 말하면서 무릎을 꿇는다.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안전한 인간이 된 알렉스는 다음날 석방된다.
반복되는 아동 성범죄, 반복되는 국민적 분노그 모습을 지켜본 교도소 소속 신부는 알렉스가 진심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이한 행동을 하는 것뿐이라고 항의하지만,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에요. 우리는 동기라든가 고차원적인 윤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범죄를 줄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요.” 구치소를 나선 알렉스는 자살 기도를 하면서 비참한 생활을 계속한다.
2006년 서울 용산 어린이 성폭행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1살의 피해자가 동네 이웃 어른에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사건이다. 2007년 크리스마스에는 경기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 사건이 있었다. 10살·8살인 어린이들이 납치되어 살해당한 사건이다. 피해자들의 토막난 주검은 실종 3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2008년에는 조두순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 가던 8살의 피해자를 화장실로 끌고 가서 잔인하게 성폭행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이 일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었다. 그리고 최근의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이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격분하게 된다. 처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를 생각하면 짐승 같은 범죄자에게 어떤 처벌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화학적 거세는 물론 만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면 ‘루도비코’를 병째 투약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의도만큼 효과가 있을까. 그리고 과연 바람직한 해결책일까.
소설에서 알렉스는 ‘갱생요법’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루도비코가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범죄에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끼는 상황이 아니라면, 대다수 사람은 범죄자를 인위적으로 개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를 영화로 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관람기의 대부분은 알렉스를 세뇌하는 정부 조처를 혐오하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약이 있어서 범죄자들에게 투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내용의 평은 찾아보기 어렵다.
힘들더라도 신중하고 인간적인 방안 고민을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에서는 강력한(!) 대책을 내놓는다. 그러다 보면 ‘화학적 거세’ 같은 극단적 방법도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범죄자의 육체나 정신을 무력하게 만들어 범죄를 방지하려는 시도는,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이 잔인하게 희생되는 것을 두고 보아야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2008년 이후 전자발찌를 부착한 성폭력 범죄자 574명 중 재범을 저지른 사람은 1명에 불과하다. 유난히 재범률이 높은 성폭행 범죄의 특징을 생각할 때 0.17%의 재범률은 경이에 가깝다. 범죄에 대한 예방과 대책은 이렇듯 검증된 방법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마련해나가야 한다. 효과도 확실하지 않은 극단적 방법을 섣불리 선택하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누구나 공분하는 성폭력 범죄자에 대해 화학적 거세 방안을 들고 나온 정치인이 단지 인기를 얻거나 실적을 올리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막자는 주장에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런 문제일수록 차분한 성찰이 필요하다.
젠킨스 사건을 보도한 웹사이트에는 한 네티즌이 아동 성폭력범은 실명을 시켜버리자는 댓글을 달아놓았다. 눈을 멀게 하면 화학적 거세보다도 더 원천적으로 재범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잔인한 성폭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생각하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심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눈을 멀게 할 수는 없다. 화학적 거세도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기능을 강제로 박탈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찬성하기 어렵다. 힘들더라도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효율적이고, 조금 더 인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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