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쪽지광고들. 한겨레 탁기형 기자
→ 독자님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투리가 섞인 중년 여성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이전에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자는 “이것저것 했는데 영업일도 하고 사무일도 했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는 곧바로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고, 기자는 “서울 성북구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면 상무님이 미팅을 끝낸 뒤 전화할 것”이라고 얘기하더군요.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회사냐. 혹시 다단계판매 회사 아니냐”고 묻자, 그는 “여기는 전자제품을 파는 회사다. 우리는 다단계판매 회사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상무한테서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에는 독자님이 본 것 같은 광고가 너무너무 많습니다. 대충 이런 식입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오빠처럼 믿고 의지하며 사업 도와주실 분’ ‘가족같이 일하실 분’ ‘미국·중국·동남아 해외 출장 업무, 회화 불문’ 등의 전단지가 지하철 유리창 안에 슬그머니 꽂혀 있습니다.
이런 전단지에는 모집 부문, 나이, 급여도 나와 있습니다. 모집 부문은 ‘물류관리’ ‘대리점관리’ ‘인사관리’ ‘사무보조’, 나이는 ‘35~65살’, 근무조건은 ‘주 5일, 8시 출근, 15시 퇴근’ 등입니다. 높은 임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남 월 240만원, 여 월 145만원’ 같은 식입니다. 급여조건을 직종이나 노동시간, 경력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단지 ‘성별’로 구분해놓는 것도 특징입니다.
이처럼 최상의 조건만 나열한 이 문구는 취업이나 생계가 절박한 사람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화를 걸면, 담당자는 전화로는 설명이 어렵다면서 자꾸만 방문을 요청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와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광고는 대부분 정수기 판매와 같은 다단계 업체가 뿌린 ‘낚시성’ 전단지입니다. 영업 교육 등을 핑계로 고가의 물건 구매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전단지를 뿌리는 업체 중 일부는 노숙인 지원단체 등에 기부를 하면 수십 배의 목돈이 굴러 들어온다며 유혹합니다. 하지만 금융업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가 원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불특정 다수에게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는 ‘유사수신행위’로 불법입니다.
일단 이런 낚시성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전화를 걸 경우엔 꼬치꼬치 물어보세요. “혹 다단계판매 회사가 아니냐”고 물어보면, 상대편에서 갑자기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만둬라”며 전화를 끊기도 합니다.
엉터리 같은 이들 광고가 끊이지 않고 지하철에 붙어 있는 걸 보면,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서민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사람들이 이런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텐데 말이죠.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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