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같이 먹어 행복하다면.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인간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먹는 사람인데, 특히 혼자 걸어가면서도 곧잘 뭘 먹는 사람이다. 이 모습이 추잡하다는 지적을 여러 번(특히 가족에게, 비난 멘트는 “니가 거지냐”) 받았지만 나는 좀처럼 길거리를 걸으며 무언가를 먹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
한번은 빵집에서 갓 구운 토스트를 사서 크게 한입 베어먹으며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건너편을 보니 최아무개 기자가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임지선, 너 뭐 먹어?”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 여성이 빵집에서 나오며 비닐봉지를 뒤적뒤적해 토스트를 꺼내들더니 아주 기쁜 표정으로 크게 한입 베어먹더란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여성은 토스트에서 절대 눈을 떼지 않았단다. 사람들로 가득한 길거리에서도 엄청난 집중력으로 음식을 먹던 여성이 ‘아는 여자’인 걸 안 순간,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참 민망했다. 그리고… 토스트는 맛있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아침에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를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배가 고팠다.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들어가 김밥 한 줄을 샀다. 김밥을 까서 들고 거리에 나섰다. 제법 온순해진 3월의 바람에 김밥 향기가 물씬 풍겼다. 이것이 김밥천국, 할렐루야. 군침이 돈다. 한입 먹었다. 맛있다. 열 걸음 정도 가니 김밥이 다 씹혀 목구멍을 넘어간다. 입을 크게 벌려 남은 김밥을 마저 먹는다. 운동화를 신어 발은 편하고 크로스로 멘 가방은 가볍다. 이보다 자유로울 수 없다. 웃으며 먹으며 회사로 향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끗거린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검찰청 주변. 양복 입은 이들이 제법 많다. 이 속에서 나는 우적우적 음식을 씹으며 걸어간다. 엄마가 봤다면 “니가 거지냐”고 했을 법한 순간이다. 그 순간, 나는 거지 같아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자유로운 느낌에 김밥을 더 꼭꼭 씹었다. 내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뇌활동이 시작됐다. 거지같이 먹어 행복하다면 이 세상에서 거지가 가장 행복한 것 아닐까. 아, 거지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 온몸으로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이구나. 어차피 길거리에 벽 세우고 지붕 얹어 만든 것이 집이고 건물인데 그 안에서 먹는 것과 밖에서 먹는 것이 뭐가 다른가.
이 글을 읽고 있을 수많은 ‘길거리에서 음식 먹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끼며 모두 별일 없이 먹고 다니길 빈다. 우리는 가방에 과자 까서 넣어두고 눈치 보며 한 개씩만 집어먹는 사람들과 격이 다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쌀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겁니다, 건투!
임지선 기자 blog.hani.co.kr/s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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