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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의 두 번째 죽음

트럼프 정부, 범죄 기록 없는 미 시민권자조차 ‘암살자’ 매도… 정치가 뿌린 증오의 씨앗, 산산조각 난 미국 사회
등록 2026-01-29 21:39 수정 2026-01-31 13:59
2026년 1월2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요원이 폭력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주민을 제압한 뒤 최루가스를 뿌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1월24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요원이 폭력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주민을 제압한 뒤 최루가스를 뿌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불만의 겨울’이 깊어간다. 중서부 미네소타주 최대 도시 미니애폴리스에서 폭력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주민이 다시 연방요원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첫 사망자 발생 뒤 불과 2주 만의 일이다. 미네소타주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대 치적으로 삼으려던 불법이민자 단속이 선거의 해에 그의 발목을 옥죄는 초대형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5살 아이 체포해 부모 구금 미끼로

2026년 1월7일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한 뒤 현장을 빠져나가다 총격당해 세 아이의 엄마 러네이 니콜 굿(37)이 목숨을 잃었다.(제1598호 참조) 사건 발생 직후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굿을 “국내 테러범”으로 규정했다. 법무부는 굿을 쏜 이민세관단속국(ICE·아이스) 요원을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현장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조너선 로스(굿을 쏜 아이스 요원)에게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다. 항의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1월20일 미니애폴리스 외곽 컬럼비아하이츠 지역에서 유치원에서 귀가 중이던 5살 남아 리암 라모스가 아이스 요원에게 체포됐다. 아이스는 라모스를 집 앞으로 데려가 그의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한 ‘미끼’로 썼다. 아이스 쪽은 라모스와 아버지를 텍사스주의 불법이민자 구금시설로 보냈다. 1월22일 오후 1시께 엘비스 조엘 티이와 그의 2살 난 딸이 상점에 들러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체포됐다. 이날 밤 9시30분께 법원은 2살 아이의 석방을 명했다. 그럼에도 아이스 쪽은 부녀를 텍사스주 구금시설로 보냈다.

미네소타주와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굿의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한 증거 접근도, 수사 참여도 차단당했다. 유가족의 요구로 진행된 굿의 부검 결과는 1월21일 공개됐다. 유가족의 변호인 쪽 설명을 종합하면, 굿은 모두 3곳에 총상을 입었다. 왼쪽 팔과 오른쪽 가슴, 그리고 머리다. 머리 총상은 관통상이다.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을 뚫고 들어간 총알은 오른쪽으로 빠져나갔다. 트리샤 매클로플린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부검 결과에 대한 엔비시(NBC) 방송의 질의에 “법 집행을 방해하고, 연방요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치명적 무기를 사용해 연방요원을 살해하거나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이 사건처럼 치명적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 그랬다.

2026년 1월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무장한 연방요원들이 폭력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해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1월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무장한 연방요원들이 폭력적인 불법이민자 단속에 항의해 벌어진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무원연맹 조합원 몸에 박힌 총알 열 발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37)는 미니애폴리스 보훈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이자 연방공무원 노조인 미국공무원연맹(AFGE) 조합원이다. 1월24일 오전 미니애폴리스 중심가 니컬렛애비뉴 일대는 아이스의 단속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로 요란했다. 프레티는 폭력 단속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치명적 결과’를 부르는 데는 단 48초가 걸렸다.

사건 발생 48초 전, 프레티는 오른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항의하는 주민을 거칠게 제압하는 연방요원 쪽으로 접근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주민도 다가와 항의에 가세했다. 사건 발생 28초 전, 흥분한 연방요원이 항의하던 주민을 거칠게 밀쳐 넘어뜨렸다. 25초 전, 프레티는 넘어진 주민에게 다가서는 연방요원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연방요원이 최루가스를 프레티의 얼굴에 뿌리기 시작했다. 프레티는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른 손으로 최루가스를 막으려 애썼다.

사건 발생 23초 전, 프레티가 넘어진 주민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최루가스는 계속 발사되고 있었다. 17초 전, 연방요원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프레티를 힘으로 제압해 길바닥에 쓰러뜨렸다. 11초 전, 프레티 주변으로 몰려든 연방요원이 7명까지 늘어났다. 길바닥에 엎어진 프레티는 사지를 제압당했다. 제압에 가담한 연방요원 1명이 최루가스 분사기로 프레티를 반복해 가격했다.

여덟 번째 연방요원이 프레티 주변으로 다가왔다. 사건 발생 1초 전, 제압당한 프레티의 몸을 뒤지던 연방요원이 그의 오른 허리춤에서 권총을 발견해 빼냈다. 곁에 있던 다른 요원이 권총을 받아 치우기 위해 자리를 뜨는 순간, 다른 요원이 자기 총을 꺼내 프레티의 등을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첫 번째 총성이 울렸다. 세 발의 총성이 뒤를 이었다. 총성과 함께 프레티를 제압하던 연방요원이 일제히 그에게서 떨어졌다. 프레티한테 최루가스를 쐈던 요원도 총을 꺼내 들었다. 네 발의 총격을 입고 바닥에 엎어져 움직임이 없는 프레티의 몸에 여섯 발의 총알이 추가로 박혔다. 불과 5초 동안 적어도 열 발의 총격이 프레티에게 가해졌다.

목격자들이 찍은 동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졌다. 그럼에도 국토안보부 쪽은 성명을 내어 “연방요원들이 무장해제하려 했지만 용의자가 폭력적으로 저항했다. 결국 연방요원이 방어적 차원에서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국토안보보좌관은 프레티를 “암살자”로 규정했다.

2026년 1월24일 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주민들이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의 총격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1월24일 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주민들이 앨릭스 제프리 프레티의 총격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네이 니콜 굿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미네소타주와 미니애폴리스 경찰 당국은 프레티 사건 관련 증거 접근이 차단되고 수사에서도 배제됐다. 브라이언 오하라 미니애폴리스 경찰국장은 프레티가 범죄 기록이 없는 미국 시민권자로, 총기 소지 허가를 받은 주민이라고 밝혔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1791년)는 “규율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각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이자 미국 보수 진영의 최대 로비단체로 통하는 전미총기협회(NRA)가 프레티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이유다.

 

2026년 1월2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한 백인 남성이 연단에 있는 일한 오마 민주당 하원의원에게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리려다 제압당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년 1월27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주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한 백인 남성이 연단에 있는 일한 오마 민주당 하원의원에게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리려다 제압당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민자 출신 정치인에게 욕설과 액체 퍼부은 백인

“미국으로 오는 외국인은 보여줘야 한다. 미국을 사랑하고, 또 자부심을 느낄 것이란 점을 말이다. 일한 오마처럼 굴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27일 오후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니애폴리스가 지역구인 일한 오마 연방 하원의원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의 무슬림 정치인으로 민주당 진보파의 일원이다. 8살 때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어 케냐 난민캠프에서 생활한 오마 의원은 12살 때 미국에 정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있고 불과 몇 시간 뒤 오마 의원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주민과의 대화’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아이스 철폐와 크리스티 놈 장관의 사임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동안 백인 남성이 연단으로 뛰어올랐다. 그는 오마 의원을 향해 스프레이로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린 뒤 욕설을 퍼붓다 제지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뿌린 ‘증오의 씨앗’이 열매를 맺고 있다. 선거의 해, 미국 사회가 산산조각 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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