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와 이언주 최고위원이 2026년 2월4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제안한 것은 갑작스러웠다. 당내 논란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시기와 절차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논란은 곧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전형적 권력 다툼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된 직접적 원인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청래 대표의 정무적 판단에 있다. 규모의 차이가 있는 두 정당이 합당하기로 하면 당연히 ‘지분 협상’ 구도로 논의가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안을 민주당이 했다면, 합당의 대가로 혁신당에 무엇을 얼마나 양보할지가 핵심이 된다. 힘의 논리대로만 한다면 혁신당이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그림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합당의 그림이 그럴듯하려면 그럴 수 없다. 혁신당 인사들이 당명, 공동대표, 최고위원 등을 거론한 이유가 이것이다. 조국 대표의 ‘디엔에이’(DNA)론도 같은 맥락이다. 혁신당의 DNA는 합당 이후 어떻게 보존될 수 있을까? 당명이거나, 자리이거나, 사람이다. 여의도 정치 문법에서 합당 논의라는 게 보통은 그렇게 된다.
민주당이 양보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양당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선거에서 진다든지, 정권을 바꿔야 한다든지, 합치면 개헌선이 확보된다든지 등.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 사람들은 굳이 혁신당과 힘을 합치지 않아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따로 있는 게 더 낫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조국 대표가 민주당 간판을 걸고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면, 국민의힘은 ‘조국이냐 아니냐’ 프레임을 만들려 할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이런 부담을 안고 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을까? 혁신당이 원내에서 ‘비교섭단체’ 몫을 맡는 우당 역할을 한다는 점도 놓치기 싫은 메리트다. 여당의 원내 전략에 다양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합당을 추진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 되니 ‘밀약설’이 등장했다. 하지만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는 정청래 대표가 조국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사람들에게 뭘 보장해줄 수 있겠나? 정청래 대표의 연임설을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혁신당 사람들이 지방선거 이후 있을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대표를 지지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독자 후보를 낼 가능성도 상당하다. 조국 대표가 합당 이후 혁신당 출신 인사들을 다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의도 사람들은 정청래 대표의 ‘1인1표제’ 추진도 의심의 눈으로 본다. 당원들 사이에 인기가 좋은 정청래 대표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갑작스러운 합당 추진과 한 번 부결(표결 무산)된 ‘1인1표제’ 도입 강행이 정청래 대표의 연임을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른바 ‘1인 1표’ 도입은 제도적 합리성을 기한다는 측면에서는 필요한 방안이다. 원래 룰은 권리당원과 국민 여론조사, 대의원 투표를 일정 비율로 합산하는 것이다. 권리당원과 국민 여론은 주권자의 직접 권리 행사라는 같은 층위에 있으므로 배합할 수 있다. 그러나 대의원은 최고대의기관의 구성원이고 당연직도 있지만, 당 기구가 추천하거나 당원이 선출한다. 층위가 다르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할 때 해당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들만 2표씩 행사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1인 1표’ 도입 논의는 2000년대 들어 국민경선의 열기에 힘입어 주류 정당에서 진행된 대중정당(mass party)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서구 역사에서 대중정당이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진화한 것과 달리, 한국 정치에서 대중정당화는 정치-소비자들의 ‘내돈내산’에 비유할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차이는 있다. 어쨌든 역사적 맥락이 있는 변화라는 것이다. 특정인의 정치적 유불리로만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민주당 중앙위가 ‘1인 1표’ 도입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상당한 반대표가 나온 것은 왜인가? 정청래 대표 쪽 일부 인사가 주장하는 대로 ‘기득권 포기’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겠으나, 결국 ‘연임용’이라는 비판이 유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정청래 대표의 연임 도전에 유리한 조건이 늘어나는 만큼 반대파의 움직임도 조직되는 것이다. 이게 앞서 언급한 정무적 패착의 한 단면이다.
합당 논의를 현명하게 진행하고자 했다면 꾸준한 ‘빌드업’이 있어야 했다. 우회적으로 합당 이슈를 띄우고 혁신당과 서로 코드를 맞춰가는 작업이 있었다면 논쟁 양상은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잖아도 첨예한 이해가 맞부딪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혁신당이 ‘제3정당’ 노선을 강화해 공간을 찾으려 시도하는 와중에, 정청래 대표가 단독으로 합당 제안을 던지는 그림을 만들었으니 연임이니 밀약이니 하는 얘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돼버렸다.
이런 때는 퇴로를 만드는 게 차라리 낫다. 합당 반대파 인사들이 주장하는 지방선거 이후 합당론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전당대회 일정이 걱정이라면,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과의 합당 마무리를 공약으로 내걸고 연임에 도전하면 된다. 당선되면 논란은 그대로 종결된다. 정청래 대표는 일단 당원 여론을 방패로 지방선거 전 합당을 계속 밀어붙일 태세지만, 이 경우 여당 내 갈등 심화로 정권 전반에 부담이 실릴 수 있다.
가령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부동산 대책 전반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라. 대통령이 정책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언론 보도나 야당의 논평에 직접 의견을 내는 것은 보통 정치적으로 좋은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총탄이 오가는 최전선에 직접 노출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공방은 여당이 감당하되, 대통령은 국정에 몰두한다는 그림을 만드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역할에는 현재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를 겨냥해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일반적 정치 구도였다면 상당한 부담을 초래했을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현실에서 다주택자는 ‘투기꾼’의 모습을 하기도 하지만 민간임대시장의 공급자이기도 하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이러한 특성은 정권이 다주택자를 겨냥하는 순간, 이제는 정형화된 몇 가지 공격 포인트를 상대에게 노출한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주택 소유를 죄악시하는 것은 불순한 사상의 잔재이다. 둘째, 다주택자를 옥죄면 부담이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셋째, 정권 내 다주택자의 존재는 ‘내로남불’이며 정책의 기만성을 증명한다. 보수정치는 이 모든 주장을 하나의 전선으로 엮을 준비가 이미 돼 있다. ‘문재인 정권 시즌2’라는 키워드로 말이다. 보수언론은 4050이 월급 받아 자산 투자해 돈 벌어 놓고 이제 와 그들이 지지하는 정권을 통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여 2030을 고립시켰다는 식의 프레임도 끼얹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2월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부담에 대응하려면 정부가 이미 내놓은 공급 대책이 결실을 봐 정권의 부동산 정책 전반이 성공으로 갈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국회는 정부가 2025년 9월에 내놓은 대책에 대한 입법 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식 몽니의 빌미가 된 대미투자특별법 처리에도 국회는 이제야 특위를 구성했다. 앞의 얘기까지 종합하면, 여당의 역할론을 둘러싸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공방이 벌어질 수 있는 구도이다.
지방선거는 보통 정권심판론이냐 지원론이냐의 구도로 치러진다. 여당이 자기들만의 싸움에 몰두하는 와중에 대통령이 정책적 공격의 대상이 되면 적어도 ‘일 잘하는 정권에 힘을 몰아달라’는 주장을 펴기 어렵게 된다. 평소 선거 구도라면 위험한 요소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인 거다.
특이한 점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이런 여건을 활용할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 보인다는 거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한동훈 제명’의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연 의원총회는 친한계가 장동혁 대표의 거취 표명을 요구하면서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이 됐다. “너 나와봐!” “그래 나왔다!”라는 유치한 입씨름도 벌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동혁 대표 체제는 주요 직책에 구 친윤이거나 극우 유튜브와 관계있는 인사를 연이어 앉히고 있다.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된 조정훈 의원은 극우 성향 유튜브 운영자 고성국씨의 방송에 나가 고씨를 두고 “특별 특별 특별 당원”이라고 했다. ‘정권심판론’이 아닌 ‘야당 한 번 더 심판론’이 형성될 기세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고들 할 판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국민의힘 일각에서 기대를 걸었던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도 당장은 모색하기 어려을 듯하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오히려 제3지대에서의 영향력 확장에 나설 채비를 보인다. 어찌됐든 ‘사회권 국가 강화’ 등의 슬로건으로 제3정당 노선을 일부 추구했던 조국혁신당이 합당론 속으로 들어가버린 만큼 자신들이 확보할 영역이 늘어난다고 본 것일 터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단 존재감을 키우는 것은 개혁신당과 이준석 대표로서는 나쁠 게 없다.
물론 제명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에 따라 이런 구도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더라도 개혁신당이 계속 진중하게 제3지대 정당의 모습을 추구할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다. 이번은 넘어가더라도 총선이나 대선 전에는 결국 보수발 정계 개편에 몸을 싣지 않겠느냐는 거다. 국민의힘 내 모임인 ‘대안과 미래’가 주최한 자리에 이준석 대표가 가서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시절을 예로 들며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모습은 이런 인상을 강화한다.
결국 구도를 종합하면 이렇다. 여야가 각자 내전을 진행하는 사이 대통령은 직접 공격과 수비 역할을 모두 자임하게 됐다. 대통령의 통치 영역은 커지지만 양당 중심의 정치는 위축을 자처한다. 좋은 일일까? 조국혁신당은 제3정당 노선을 사실상 공식 포기하게 됐고, 개혁신당은 이 빈 공간을 노리지만 보수통합론에서 자유롭지 않은 신세다. 이것은 제3지대 정치의 종말일까 기회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겠다. 앞으로 어떤 제3지대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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