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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21]도널드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등록 2010-01-06 13:14 수정 2020-05-03 04:25
* 이 이야기는 711호 맛있는 뉴스 코너의 ‘인간적 고민’
(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2478.html)을 읽은 뒤 보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도널드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사령관이 깨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입술이 쓰라렸다. 입술을 만져보니 쩍쩍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습관적으로 시가를 찾았다. “책상에 놓아두었나?” 일어나 책상 위로 갔다. 그런데 왠지 걸음걸이가 뒤뚱뒤뚱하다.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시가 박스엔 시가가 없었다. 옆에 은단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정력은단’이라는 선명한 로고가 빛났다.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에 은단 3개를 꺼내 탁탁탁 깨먹었다. 씹을 때마다 알싸한 은단향이 몸 깊이 새어 들어왔다. “휴~ 시가를 끊어야 해.”

도널드 사령관은 책상 위 신문을 주워들다 곧바로 떨어뜨리고야 말았다. 신문에는 2110년 1월1일이 찍혀 있었다. “내가 1년이나 잤단 말인가!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우라질레이션’이라니.” 그의 입에서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호크 BY센터장이 문을 열었다.

“오~ 자네, 잘 왔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랫동안 잠겼던 성대가 놀랐는지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진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호크 센터장은 말문을 열었다. 사령관이 치명적인 ‘인류독감’에 걸려 1년 동안 잤다는 것, 그가 자는 동안 지지율이 80%까지 올라갔다는 것, 좌빨·친북 인간들이 6월을 맞아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촛불을 들고 반란을 일으킬 때 도널드 사령관은 “법대로”를 외치며 요술봉과 슬리퍼로 간단히 제압해버렸다. ‘제대로 법도 지키지 못한 그깟 인간들이야 싹둑 잘라버리면 그만이지.’

“좋아, 좋아, 일단 대책회의를 하자고. 피전 전쟁부 장관, 쿠쿠 여성부 장관, 크로 통신부 장관, 치킨 공군참모 총장 다 불러봐.”

“근데, 사령관님 사대강이 범람하는 바람에 모두 사망했습니다.”

문득 도널드 사령관 머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길레온’. 독수리를 닮은 그. 1년 전 도널드 사령관은 아길레온을 IAC(International Amnesty Committee·국제사면위원회) 위원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던가.

“그의 자금만 뒷받침돼준다면 무서울 게 없지, 암.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고 계속 황제처럼 지낼 수 있어. 그는 어디에 있나?”

“쫄딱 망했습니다. 사면을 받은 뒤 라면 장사를 했는데, 거덜이 났어요. 쫄면 장사를 했어야 했는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이건 왜 이렇지. 걷는 게 이상해졌어.”

“레임덕입니다. 인류독감을 앓고 나면 마치 오리처럼 뒤뚱뒤뚱거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탁탁탁. 도널드 사령관은 은단을 씹었다.

후세 역사학자들은 도널드 덕 사령관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사령관은 특유의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특징이다. 걸핏하면 화를 냈다. 레임덕에 괴로워하던 사령관은 인간들의 반란으로 몰락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고 전한다. “법대로!” 이 말은 ‘내가 하면 로맨스(합법)고 남이 하면 불륜(불법)’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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