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해지고 있지만 클린턴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확실히 있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예상대로다. 이번에도 무승부다. 되풀이되는 무승부에 쫓는 이는 애가 탄다. 남은 승부는 단 세 차례. 뒤집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왜 끝을 보려 할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여성 부통령 시대는 올 수 있을까? 가능성도,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실현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래저래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드라마는 종영 시점을 넘겨가며 연장 방송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당분간 시청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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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경쟁력도 오바마가 확실한 우세
지난 5월20일 치러진 켄터키·오리건주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가 나란히 1승씩을 챙겼다. 켄터키주에선 클린턴 후보가 65.5%의 지지율로 37명의 대의원을 확보했고, 오바마 후보는 29.9% 지지를 얻는 데 그치면서 14명의 대의원을 추가했다. 반면 오리건주에선 오바마 후보가 58.7%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8명의 대의원을 확보했고, 클린턴 후보는 41.3%의 지지로 12명의 대의원을 보탰다. 이로써 오바마 후보는 1965명(슈퍼대의원 309명 포함)의 대의원을 확보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2026명)의 96.9%를 확보했다. 이날까지 1780명(슈퍼대의원 280명 포함)의 대의원을 확보한 클린턴 후보는 ‘목표 대의원’의 87.6%를 확보한 데 그쳤다.
이제 남은 경선은 3곳뿐이다. 6월1일 대의원 63명이 걸린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예비선거가 치러지고, 이어 6월3일엔 몬태나주(대의원 24명)와 사우스다코타주(대의원 23명)에서 각각 최종전이 열린다. 켄터키주에서 클린턴 후보가 무려 35%포인트 차로 오바마 후보를 앞섰음에도, 이미 승부는 가려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선 판도를 뒤집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게다.
여론의 변화도 눈에 띈다. ‘조그비인터내셔널’이 5월21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후보로 오바마 후보(47%)가 나설 경우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37%)를 10%포인트 차로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후보로 클린턴 후보(41%)가 본선에 나서면, 매케인 후보(40%)와 오차범위 내에서 백중세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클린턴 후보 진영이 “오바마 후보는 본선 경쟁력이 없다”고 비판해온 게 무색하다. 조그비인터내셔널 쪽은 이를 두고 “접전을 펼치던 당내 경선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바마 후보 지지로 모여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15개월 전 겨울이 한창이던 때, 이곳 아이오와주에서 미국을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첫 여정이 시작됐다. …오늘 밤, 봄이 만발한 이 자리에서 우리는 경선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켄터키·오리건주 경선 결과가 속속 전해지던 5월20일 밤, 오바마 후보는 아이오와주 드모인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였다. 아이오와주는 지난 1월3일 치러진 첫 예비선거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주며 일찌감치 경선 판도를 가른 곳이다. 이날 그의 얼굴에선 연방 웃음이 번졌고, 몸짓마다 한껏 여유가 묻어났다. 은 이날 오리건주 경선 승리로 오바마 후보가 선출직 대의원 과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클린턴의 믿는 구석, 313명의 행방
애초 오바마 후보 선거캠프는 이날 ‘경선 승리’를 선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 합중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는 게 머지않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클린턴 후보 지지자를 의식한 게다. “지난 경선 기간 동안 클린턴 후보는 신화를 깨고, 장벽을 부쉈다. 그렇게 우리의 딸들이 살아가야 할 미국을 바꿔냈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 클린턴 후보에게 사의를 표해야 한다.” 오바마 후보가 16개월여 치러진 피 말리는 경선 과정을 되새기며 클린턴 후보를 치켜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여러분의 표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경선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각 클린턴 후보 역시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번 경선은 미국 근대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접전”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유권자들의 표심이 우리 쪽으로 모이고 있으며, 마지막 한 표까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경선 포기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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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후보에게 ‘믿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규정을 무시하고 예비선거 일정을 앞당겼다가 ‘경선 무효화’란 징계를 받은 플로리다주와 미시간주에 할당된 대의원이 313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지난 1월29일 치러진 플로리다주 경선에서 클린턴 후보는 50%의 지지율을 얻어 33% 지지에 그친 오바마 후보를 압도했다. 오바마 후보는 미시간주 경선에선 아예 투표용지에서 이름을 뺐다. 문제는 매번 대선에서 공화당과 접전을 벌여온 두 지역을 대표하는 대의원 없이 공식 대선 후보를 지명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두 지역의 선출직 대의원을 석권한다면 클린턴 후보가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사세인 게다.
하지만 〈AP통신〉은 이미 지난 5월16일 “플로리다주와 미시간주 경선 결과를 합산하더라도 클린턴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위원회는 5월31일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규정을 위반한 두 주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솜방망이 징계에 그치면, 다른 주들도 비슷한 규정 위반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의원을 두 후보에게 50 대 50으로 나눠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게 통신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클린턴 후보가 경선 완주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전문 사이트 는 5월19일 클린턴 후보의 경선 잔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부통령을 노리기 때문?
“첫째, 선거는 불확실성의 게임이다. 8월 전당대회 때까지는 시간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 오바마 후보가 치명적인 스캔들에 걸려들면서 낙마할 가능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둘째, 클린턴 후보 선거캠프는 2천만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1100만달러는 클린턴 후보의 개인 돈이다. 선거부채를 갚기 위해서라도 선거자금을 모금할 시간이 필요하다. 셋째, 질 때 지더라도 끝을 봐야 한다. 막판까지 선전을 한다면, 차기 도전의 든든한 발판이 될 게다. 넷째, 11월 본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향후 4년 동안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당 지도부를 압박할 수 있다. 2012년 경선에선 클린턴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60살인 클린턴 후보로선 2012년 대선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일 게다.”
시사주간지 는 5월22일치 인터넷판에서 또 다른 분석을 내놨다. “클린턴 후보가 경선을 지속하는 건 결국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위해서”란 게다. 두 후보의 지지 계층이 엇갈리는 것도 ‘러닝메이트’론의 중요 논거다. 단적인 사례는 오리건주와 켄터키주에서 치러진 예비선거에서 찾을 수 있다. 오바마 후보를 선택한 오리건주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인구가 많고,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 반면 클린턴 후보를 지지한 켄터키주는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며, 노동자 계층 유권자가 많은 편이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클린턴 후보에겐 치명적인 약점도 있다. 유권자들은 ‘클린턴 피로증’을 말하고 있다. 그가 집권하면 ‘클런턴 행정부 3기’란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영부인’ 시절부터 따라다닌 ‘거짓말쟁이’란 이미지도 부담이다. 지난 4월 와 〈A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가량이 클린턴 후보에 대해 “정직하지 않아 믿기 어렵다”고 답했다.
클린턴 후보가 아니어도 백인 노동자층과 히스패닉·유대계 유권자를 끌어올 부통령감은 얼마든지 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 출신으로 일찌감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온 버지니아주 출신 짐 웨브 상원의원과 조지아주 출신의 핵비확산 전문가인 샘 넌 전 상원의원 등도 백인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경선을 중도 포기한 뒤 최근 오바마 후보 지지 대열에 합류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후보는 클린턴 후보 못지않게 여성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오바마 후보로선 선택의 여지가 넓어 보인다.
당 분열된 접전 뒤엔 단합
“문제는 단합이다. 무승부에 가까울 만큼의 접전으로 당이 분열됐다. 대선 후보가 결정된 뒤엔 화합을 위해 나뉘었던 세력을 합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예일대 법대 동창인 브루스 모리슨 전 하원의원은 5월21일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리슨 전 의원은 “부통령 후보 지명은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서 내리는 첫 번째 결정”이라며 “클린턴 후보를 지명함으로써 자신이 선거운동 기간 동안 강조해온 ‘단합을 통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흑인 대통령-여성 부통령’ 조합이 가능하다면, 2008년 미 민주당 경선 드라마의 인기몰이는 ‘시즌 2-본선편’까지 줄곧 이어질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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