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초콜릿처럼 여행도 착하게


현지 환경 파괴하지 않고 원주민 생활에 도움 주는 ‘공정여행’으로
등록 2009-02-24 14:43 수정 2020-05-03 04:25

앞의 내용들이 불편하셨던 분들은 물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답을 찾을 차례다. 국제민주연대와 이매진피스에 조언을 구했다. ‘공정여행’이 답이라고 했다. 공정여행? ‘착한 여행’이다. 현지인들의 삶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는 여행이다.
공정여행은 한국식 용어다. 이 개념을 처음 만든 영미권에서는 ‘도덕적 여행’(Ethical Travel), ‘책임여행’(Responsible Travel) 등의 용어를 쓴다.

지난해 12월 말에 이매진피스가 주최한 공정여행축제의 마지막 뒤풀이에서 참가자들이 흥겹게 어울리고 있다. 이들은 “좋은 여행은 나를 바꾸고, 성숙한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사진 / 이매진피스 제공

지난해 12월 말에 이매진피스가 주최한 공정여행축제의 마지막 뒤풀이에서 참가자들이 흥겹게 어울리고 있다. 이들은 “좋은 여행은 나를 바꾸고, 성숙한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사진 / 이매진피스 제공

1988년 런던서 시작… 국내는 진행중

공정여행 운동은 1988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됐다. 대규모 관광지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와 원주민 공동체 파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런던에서 만들어진 ‘투어리즘컨선’은 초기에는 서구인들의 몰지각한 관광으로 파괴된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참상을 고발하는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에서는 ‘글로벌익스체인지’라는 반세계화 단체가 동참했다. 착한 여행을 생각하는 단체들과 함께 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여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이 만든 상품을 모두 끌어모은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이란 인터넷 여행사도 생겼다. 전세계 공정여행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과 북미의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정여행 상품은 수천 가지가 넘게 만들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아쉽지만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이매진피스와 국제민주연대가 1세대 공정여행을 이끌고 있다. 이매진피스는 활동가들이 자비를 털어 동남아와 네팔 등지에서 한국 여행의 문제 사례들을 모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매진피스의 공정여행 축제에 참여했던 이들도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다양한 정보들을 축적하고 있다. 국제민주연대는 공정여행의 대중화를 위한 패키지 여행 개발에 열심이다.

이매진피스의 이혜영씨는 “가장 먼저 자신이 일정을 짜는 자유여행을 가는 것으로 시작하면 될 것”이라며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박시설과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입문 1단계”라고 말했다. 이매진피스는 착한 여행을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제안을 만들어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여기에서 다시 한번 이런 물음이 나올 법하다. “한국인이, 한국인이 만든 숙박시설과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우리나라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나요?”

“현지인 운영 시설 이용이 입문 1단계”

국제민주연대 김경씨의 대답이다. “현지의 자연이 수만 년간 만든 풍경과 현지인들이 수천 년간 만들어온 문화유산을 우리가 즐긴 대가는 현지인들에게 돌아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이런 질문에는 좀 난감하다. “1~2년씩 정성껏 돈을 모아 사나흘 기분 좋자고 떠나는 해외여행에 이런 고민까지 떠안아야 하나? 우리가 삿포로 우동이 생각나면 곧바로 전용기 타고 일본 가는 F4도 아닌데.” 같은 서민 처지에서 공감하는 반론이다. 그래도 이렇게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한 명이지만, 그곳에 가는 한국인은 수십만 명이라고.”


국내 공정여행 패키지 1호 떴다
중 윈난성 코스에 신청자 몰려


2월21일 인천국제공항, 32명의 한국인들이 조금은 낯선 여행길에 올랐다. 국제민주연대가 기획한 ‘윈난 소수민족 체험 공정여행’ 참가자들이다. 차마고도를 따라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들을 만나고 오는 8박9일 코스다. 이 여행이 의미 있는 것은 ‘제1호 공정여행 패키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대중화’를 위한 시도인 셈이다. 그간의 국내 공정여행은 뜻있는 여행자들이 각자 찾은 정보에 따라 알아서 가는 식이었다. 일종의 전문가 여행이었다.
이번 공정여행 참가자들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과 식당을 이용하고, 100% 버스와 도보로만 여행을 하게 된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활동가 김경씨는 “참가자들이 현지 소수민족들과 함께 그들의 전통 방식으로 물고기도 잡고 현지인들 축제에 참가하는 등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구성했다”며 “현지인들의 삶에 우리가 녹아드는 현지 밀착형 여행”이라고 소개했다.
국내에도 이런 ‘착한 여행’에 목마른 이들이 적지 않다. 국제민주연대는 1차 공정여행단에 30명을 모을 예정이었는데 100명이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고 한다. 이에 따라 3월6일까지 2차 여행 참가자들을 모집한다.
은 1차 윈난성 공정여행 참가자들의 공정여행 체험기를 지면에 소개할 예정이다.
국내외 공정여행 단체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 공정여행 단체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매진 패스’의 공정여행 가이드 9
숙소도 가이드도 현지인으로


1.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여행을 하자
비행기 이용 줄이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전기와 물 낭비하지 않기. 수건과 침대 시트를 다시 쓰기.
2. 생명을 돌보는 여행을 하자
코끼리쇼, 호랑이쇼 등 야생동물을 붙잡아 학대하는 여행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사람을 태우기 위해 코끼리는 12년간 사슬에 묶여 조련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조련받은 코끼리는 60살까지 사람을 태워야 한다.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을 하자
아동 성매매는 더더욱!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하자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음식점을 이용하자. 가이드와 강사는 현지인을 쓰자.
5. 윤리적으로 소비하자
공정무역 제품을 사자. 현지인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서는 지나치게 깎지 말자.
6. 관계 맺는 여행을 하자
현지 인사말을 익히고 노래와 춤을 배워보자.
7. 여행하는 곳의 문화를 존중하자
8. 고마움을 표현하자
현지인들에게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자. ‘한국인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안다’고 생각하는 현지인들이 많다.
9. 기부하는 여행을 하자
여행 경비의 1%를 현지의 구호·빈민 단체에 기부해보자. 거리의 아이들에게 1달러를 주기보다, 현지 어린이와 여성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여행 경비의 1%를 기부해보자. 일본의 평화운동 단체인 ‘피스보트’는 일본 언론들의 북한 편파 보도에 맞서고 북한을 제대로 보자는 취지에서 남북한을 오가는 크루즈 여행을 했다. 미국의 공정여행 단체인 글로벌익스체인지도 미국의 쿠바 경제제재에 항의하는 쿠바 국경넘기 여행을 미국 시민들과 함께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