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장거리 자전거 여행은 1994년 가을이었다. 당시 대학을 휴학 중이던 나는 집이 있던 전북 남원에서 서울 신촌의 학교까지 280여km를 자전거로 홀로 달려 올라왔다. 이유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주체할 수 없이 주어진 많은 시간이 너무 무료했고, 어느 유명인의 자전거 여행기를 읽고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무언가에 도전해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지도책을 펼쳐 내가 지날 길을 꼼꼼히 살피고 지도 위에 표시했다. 남원~논산 100여km, 논산~평택 역시 100여km, 평택~서울 신촌 80여km를 달렸다. 1시간에 고작 십 몇km를 달린 셈인데,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달릴 이유가 없었다. 충남 공주를 지나면서는 무령왕릉에 들렀고, 고갯마루에 올라서는 바람도 맞고 들꽃도 구경했다. 자전거 여행의 ‘느림’에서 오는 여유가 좋았다. 2박3일 동안 더듬거리며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맛본 기쁨과 내 자신에 대해 느꼈던 뿌듯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타고 돌아갈 엄두는 나지 않아 서울역에서 화물열차에 자전거를 실어 보냈다.
최근 1조2456억원을 들여 ‘전국 일주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는 정부 발표를 보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새 길을 내겠다는 것인지, 기존 국도에 자전거용 포장을 새로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10여 년 전 내가 달렸고, 지금도 많은 ‘라이더’들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여유로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길 지도’만 만들어 뿌려도 그 길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한 사업인지 의문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차량 운전자들이 자전거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잠시만 배려하면 될 일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길을 만들면 법도 만들 테지. 다른 길로 가는 자전거 여행자에게는 ‘전국 일주 자전거도로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을 내라 하는 것은 아닐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앗! 이 글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죄로 잡혀갈라!
김정효 기자 blog.hani.co.kr/hyo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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