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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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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주인가 직원인가

등록 2008-05-30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몇 년 전부터 젠체하는 지식인들 일부가 ‘최고경영자(CEO) 대통령’이라는 신조어를 떠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성공한 CEO’라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낳을 정도로 사회의 지배적 담론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CEO 대통령’ 담론은 정치와 경제 모두에 대한 바닥 모를 무지에 근거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러한 무지와 혼란 속에서 마구 악용될 경우 사회에 끼치게 될 해악은 헤아릴 길이 없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생각은 무엇보다도 ‘나라’와 ‘기업’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을 마치 동일한 것인 양 놓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기업’이란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며, 그 내부는 CEO의 명령- (집단) 해고까지 포함해- 아래 일사불란 상명하복으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반면 ‘나라’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과 자연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고 그것을 향유하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이 두 개의 조직은 각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제 목적을 찾아갈 수 있는 최고의 조직 원리로서 21세기 현재까지 발견된 바는 전자의 경우 ‘주주 이익 극대화의 효율성’이요, 후자의 경우 ‘민주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대통령이 얼마 전 미국 어딘가에서 “한국은 주식회사 코리아이며 자신은 그 CEO”라고 외쳤을 때 모골이 송연해졌다.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으로서 자신이 관장하는 관료기구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CEO라고 자리매김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라 전체가 ‘주식회사 코리아’라고?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던가? 대통령이 CEO가 되면 나라의 성격은 저절로 ‘민주공화국’에서 ‘주식회사’로 변하는가?

한칼로 물어보자. 대통령이 CEO라면 국민들은 주주인가 직원인가? 만약 ‘민주주의’의 정신에 입각한다면 국민들은 응당 주주이며, 대통령은 자신 휘하의 행정부 및 국가기관을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운영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주식회사 코리아’라는 원칙에서 본다면 바로 국민들이야말로 직원이다. (달리 누가 직원이겠는가?) 그리고 한국의 자연환경은 기업의 ‘원자재’ 및 ‘공장 부지’가 된다. 대통령께서는 이 ‘직원’과 ‘원자재’를 맘대로 주물러서 목표한 바의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려 든다. 그러면 기업체의 전 임직원이 그러하듯, 우리는 CEO 대통령 각하의 모든 결정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 그가 ‘기업(혹은 나라?)을 살리기 위해’ 정리해고를 결정하면 국민들은 집단으로 ‘해고’당해야 한다. 그가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의료 및 공공 서비스의 대폭 축소를 결정하면 꼼짝없이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삶의 한계선으로 밀려나야 한다. 그가 전 직원 영어 실력 향상을 결정하면 우리 모두와 아이들은 ‘아륀지’를 혓바닥에 익히기 위해 밤낮으로 시달려야 한다.

이번에 CEO 대통령께서는 ‘구내식당’에 위험천만의 싸구려 쇠고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전 직원’(임원은 빼고)은 꼼짝없이 줄을 서서 매일 그것을 입에 넣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먹기 싫으면 알아서들 밖에 나가 딴 거 사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도 한다. 이유는? 이번에 어느 유력 대기업과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이름의 ‘빅딜’(아마도 인수합병일 듯)이 진행 중인데 그걸 성사시키려면 그 대기업에서 배출되는 해로운 유해물질을 우리가 ‘소화’해줄 것이 조건으로 붙어 있으며, 이 험한 시장 상황에서 우리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충 이 정도가 5월22일 오전에 우리의 CEO 대통령께서 동요하는 ‘전 직원’에게 사내 방송을 통해 내린 ‘훈화’의 내용이었다. 소통이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한다. 자신의 역량 부족을 통감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결정된 ‘회사 방침’을 되무를 수는 없다고 한다. 이것이 이 무책임한 ‘CEO 대통령’ 담론의 결말이다.

지식인들이여, 답하라

무언가 참신한 생각인 듯 여기에 부화뇌동해 이것을 사회의 지배적 담론으로 만들어버린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이제 답해야 한다. 대통령이 CEO라면 ‘직원’은 누구이며 ‘주주’는 누구인가. 그들이 이 뼈아픈 질문에 답할 리 없다. 그래서 밤마다 온 시내가 촛불로 대낮같이 휘밝다. 누가 ‘주주’인지를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 글자 그대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몰려나와 ‘주주총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주 울려나오는 노래의 가사가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이다. 절창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눈먼 무지와 탐욕이 빚어낸 이 어이없는 ‘CEO 대통령’의 미망을 단번에 깨버리는 마력의 진언(眞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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