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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공장’ 스타를 키우나 갈아 넣나

데이비드 번의 코첼라 무대가 비춘 것, 케이팝 아이돌에게 없는 시간
등록 2026-04-16 19:57 수정 2026-04-20 13:39
2026년 4월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미국 밴드 ‘토킹 헤즈' 출신의 음악가 데이비드 번. 코첼라 공식 유튜브 채널 공연 영상 갈무리

2026년 4월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미국 밴드 ‘토킹 헤즈' 출신의 음악가 데이비드 번. 코첼라 공식 유튜브 채널 공연 영상 갈무리


대중문화 산업은 나이 든 아티스트에게 늘 두 가지 역할만을 요구한다. 하나는 전설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히트곡을 연달아 부르며 관객이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소환한다. 다른 하나는 그가 누군지 모르는 요즘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이다. 자신을 부정하다보면 차라리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라 웃긴 캐릭터를 정립한 유튜버가 될 수도 있다.

2026년 4월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에서 열린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이하 코첼라) 무대에 오른 미국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 출신의 음악가 ‘데이비드 번'은 그 두 극단 사이로 난 좁은 길을 택한다. 백발에 오렌지색 점프슈트를 입고 홀로 등장한 무대에 점점 세션들이 모여든 뒤 다채로운 동선을 보여주며 끊임없이 이동한다. 번의 몸짓은 예전보다 조금 느려졌지만, 다음에 어디를 향해 움직여야 할지 분명히 계산 중인 것처럼 보인다.

토킹 헤즈의 1983년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에서 번은 자기 몸보다 훨씬 더 크고 각진 회색 슈트를 입고 무대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스타성을 각인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도 현역 때의 자신이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고 인정한 바 있는데, 토킹 헤즈의 베이시스트는 그 시절의 그를 ‘도널드 트럼프’에 비유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30대 때 자기만의 기준을 고수했던 천재 아티스트는 70대가 돼서는 젊은 연주진 그리고 댄서들과 수시로 조율해서 무대를 완성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총 18번이나 등장하는 ‘왓 이즈 더 리즌 포 잇?'(What is the reason for it?)을 부르기 전, 번은 자신의 또 다른 동료가 말한 적 있는 “사랑과 친절은 저항의 한 형태입니다”를 힘주어 말한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저항하는 이들을 비롯해, 불안과 분열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흐른다.

번의 코첼라 무대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치적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동시에, 케이팝 아이돌에게 허락된 유효기간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 전 데뷔 10주년을 앞둔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소속사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일견 커리어를 스스로 중단하기로 한 결심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너무 젊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고 난 뒤 여전히 젊기만 한 사람이 남아 있다.

연차가 10년이 넘은 케이팝 아이돌의 컴백 소식에 ‘기강을 잡는다’는 농담이 따라붙는 이유는 무엇인가. 너무 많은 신인 그룹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무한 경쟁 구도 속에 산업은 늘 가장 새롭고 가장 어린 것에 돈을 걸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에 속한 아이돌 멤버는 자신의 속도로 나이 들고 변화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데이비드 번의 무대는 한 아티스트가 음악을 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남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지어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그러는 동안 잠재력을 가지기 위해 더 어려져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더 민첩해지기를 요구하는 케이팝 산업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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