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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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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누가 뭐래도 스포츠는 살아 있다

등록 2007-03-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어릴 때부터 반듯했다는 스물일곱의 젊은 죽음을 바라보는 일은 난감했다. 윤장호 하사의 사망 소식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고, 온라인에서는 누리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그것이 추모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뜬금없는 물결이 이어진 곳은 따로 있었으니 우리의 장군님들 자주 납시는 군용 골프장이었다. 수도권에 있는 두 개의 군용 골프장에만 모여든 별과 무궁화는 모두 100여 명. 모처럼의 3·1절 휴일을 맞아 군용 골프장은 때 아닌 ‘스타워즈 시리즈’로 후끈 달아올랐다는 후문이다. 안 그래도 국방부에서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장군님들 계실까봐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골프를 한 타임 쉬어주실 것을 예하 부대에 지시했다는데, 골프를 향한 장군님들의 열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고, 윤 하사는 죽었지만 스포츠는 살아 있다. 장군님이 싱글 진입하는 그날을 위해, 우리의 김 상병 오늘도 오라이~!

세월이 흐르면 전선(戰線)도 변한다. 서울 강남의 금싸라기 땅에 비닐하우스 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였다. 강남 개발이 진행되면서 곳곳에 남겨졌던 자투리 땅에 갈 곳 잃은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났고, 땅을 개발하자는 사람들과 여기서 물러나면 갈 곳이 없다는 비닐하우스 주민들 사이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80년대 수법은 무작정 철거였다. 그 시절 대통령답게 무식하던 시절이었다.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90년대 수법은 스리슬쩍 방화였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멋모르고 잠자던 홀몸 노인들이 자주 질식해 숨졌다. 2007년 3월, 드디어 독극물을 넣은 요구르트가 등장했다. 주민 세 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재개발을 앞둔 문정동 개미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가난한 범인은 “마을 사람들이 재개발로 쉽게 돈 버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공격하는 사회를 말세라 부른다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공격하는 사회는 뭐라 불러야 할까.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서울시가 업무능력과 근무태도가 불량한 공무원들을 가려뽑아 6개월 동안 담배꽁초 무단투기범 단속에 전격 투입할 계획임을 밝혔다. 각 부서에서 내로라하는 문제아들을 가려뽑아 출범하게 될 ‘공포의 외인부대’의 명칭은 이름하야 ‘현장시정추진단’(가칭). 서울시는 수 틀리면 2~3급 국장급 고위 공무원도 담배꽁초 단속 업무에 투입할 야심찬 계획을 밝혔지만, 어디 장사 한두 번 해보는가. 2급 공무원이 담배꽁초 단속하는 일은 죽어도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안다. 서울시는 쓸데없는 짓으로 사람 욕보일 생각 말고, 제발 기본에만 충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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