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유명인사, 특히 정치인이라면 요즈음 새삼 한문에 능통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듯도 합니다. 새해를 맞아 자신의 소망을 우회적이고 함축적으로 담은 사자성어를 내놓는 게 ‘유행’인 때문입니다.
오는 12월이 대선이라 아무래도 대선 후보군의 사자성어가 화제입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한천작우’(旱天作雨)를 들었습니다. 맹자의 말로, ‘한여름에 가물어서 싹이 마르면 하늘은 구름을 지어 비를 내린다’는 뜻입니다. 고건 전 국무총리가 내놓은 4자 화두는 에 나오는 ‘운행우시’(雲行雨施)입니다. ‘구름이 움직이니 시원하게 비가 뿌린다’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 모두 비를 소재로 삼은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이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2006년 한 해를 평가하는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정한 것에 대한 일종의 화답입니다.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내리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된 정치·경제·사회적 답답함을 자신이 시원스럽게 풀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겠지요. 두 사람 쪽에서 ‘비’와 ‘구름’을 소재로 좀더 그럴싸한 사자성어를 찾는 데 머리를 싸맸을 것을 생각하니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지기도 합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은 ‘구동존이’(求同存異·다른 점이 있더라도 같은 점을 취하며 이견을 좁혀간다)로 포용과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좀더 직설적이고 알기 쉬운 사자성어도 있습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제시했는데, 미안합니다만 좀 낡은 느낌입니다. 어쩐지 1970년대식 애국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지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독특하게 한자말 대신 ‘처음처럼’을 내놓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로 새해의 바람을 드러내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바람직할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공개적인 ‘국민과의 약속’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어딘가 공허하고 말의 성찬 같은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 약속을 지킬 실천력을 확인할 길이 없는데다, 늘상 정치인의 ‘공약’(空約)에 휘둘려온 탓일 겁니다. 특히나 갈등과 대립이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자기반성이 우선하지 않은 것 같아 더욱 그렇습니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1월 새해 화두로 ‘천지교태’(天地交泰·하늘과 땅이 화합을 이루는 상태)를 내놓았는데, 지난 한 해의 부동산값 폭등이나 고용 불안, 정치적 혼란 등에 비춰보면 참 부끄러운 약속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2007년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한 ‘반구저기’(反求諸己)의 의미는 한결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맹자의 말인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활을 쏘아서 적중하지 않아도 나를 이기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기에게서 찾을 따름이다)에서 나왔습니다. 알기 쉽게 ‘내 탓 먼저’쯤 되겠지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굳이 사자성어가 아닐지라도 새해를 막 출발한 이때 나만의 소박한 화두를 하나쯤 지니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혹 이미 만드셨나요? 2007년, 당신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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