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명숙/ 작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점 하나는 그가 권위주의를 탈피하려 노력하는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나 역시 대체로 그런 시각을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안기부 X파일 사건의 와중에서 불거진 DJ의 입원과 이후 전개된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무언가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는 국정원의 발표 며칠 뒤 DJ가 돌연 입원했을 때 정치권과 언론은 즉각 그 이유를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에서 찾았다. 이구동성이었다. DJ 본인이 한번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음에도(알다시피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내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기정사실이 돼버렸다. 모두가 군소리 없이 ‘어른’의 심기를 ‘알아서 모신’ 셈이다.
DJ는 무오류의 존재인가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노심(盧心)이니 김심(金心)이니 하는 망신스런 표현이 자주 등장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 표현만 예전처럼 안 했을 뿐이지 딱 그 짝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은 병실의 ‘김심’을 알아서 읽고 향후 정국을 그리며 득실을 따지느라 부산했다. 특히 여권은 노골적으로 전전긍긍하면서 DJ의 ‘진노’를 무마하고 달래느라 전력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DJ의 권위(주의)는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보다 더 대단해 보일 정도이다.
상식적으로 궁지에 몰려 곤혹스러워해야 할 쪽은 도청 의혹을 받고 있는 DJ쪽이어야 마땅하다. DJ의 입원 이유도 현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아니라 불거진 도청 의혹에 대한 고민과 충격이어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 앞뒤가 맞는다. 그러나 입원과 동시에 정치권과 언론이 알아서 그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하고 대변해줌으로써 사태를 적반하장 비슷하게 전개시켜 나 같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들려온 DJ쪽의 목소리는 당당하기만 하다. 전직 대통령이자 노벨상 수상자에다 북쪽 대표단의 문병을 받는 권위까지 더한 바탕 위에서 그의 불편한 심기가 국민들이 받은 충격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정치권과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DJ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서 모셨는가? ‘DJ는 피해자일 뿐 가해자로서의 잘못은 있을 수 없다’는 DJ쪽의 무오류적 태도나 ‘어떤 일이 있어도 명예를 꼭 지켜드리겠다’는 비중 있는 여권 인사의 약속, 이같은 상황을 별 문제의식 없이 중계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삼박자는 어떻게 가능한가? 모두가 똑같이 권위주의적 사고 회로에 속해 있어 이런 짝짜꿍이 이뤄지는 건 아닌가?
권위주의 잔재에도 도전하라
일부 언론의 경우 이번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건을 전·현 정부간 갈등과 음모론으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러 DJ의 불편한 심기를 부각시킨 것이지 꼭 권위주의적 사고 때문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이라고 해서 새로운 시각을 보인 것 같지도 않다. 정치권으로 오면 특히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할 말이 없다. 호남 민심을 의식한 것이지 권위주의를 받아들인 건 아니지 않느냐고? 호남과 DJ의 관계를 절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DJ의 힘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권위주의적 태도이다. 힘에 대한 맹신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정적, 정서적 차원에서 작동한다. 때문에 호남 사람들에 대한 DJ의 영향력을 합리적 근거가 빈약해도 그냥 믿어버리는 경향이 생긴다. 최근 <시사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남지역 사람들의 46.2%는 국정원 발표가 DJ와 민주당 죽이기라는 음모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하는 사람은 35.7%였다.
권위주의는 대통령이 토론을 즐기고 편지를 잘 쓴다고 탈피되는 게 아니다. 그 정도는 그냥 스타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진정 권위주의를 벗어나고 싶다면 DJ와 호남간의 권위주의 잔재에도 도전하라. 진실의 힘, ‘진정성’의 힘을 믿는다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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