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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핵, 핵가족 | 박민규

등록 2005-07-08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민규/ 소설가


‘핵가족’이란 단어를 알게 된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그것도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포스터엔 아빠와 엄마, 아이가 손을 잡고 선 그림이 핵가족을 장려한다는 문구와 함께 단출하게 그려져 있었다. ‘장려’와 같은 단어를 알 길이 없었던 나는 막연히 그것이 핵폭탄, 핵실험, 핵전쟁과 연관된 어떤 게 아닐까라는 불안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지구 종말의 날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버섯구름을 쳐다보며 맛있게 아침을 먹는 장면을 생각하니 - 그것은 또 여간 두렵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빠, 핵가족이 뭐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 삼촌과 고모까지 앉아 있는 대가족의 밥상 앞에서 나는 물었다. 그건 아빠하고 엄마하고 니들끼리, 그렇게만 사는 거란다. 귀밑이 붉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대답을 한 것은 고모였다. 우리끼리? 그래, 니들끼리.

아파트로 우리끼리… 그게 핵분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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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집은 분열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우리끼리, 삼촌과 고모들도 이를테면 니들끼리. 가정의례의 짐을 덜게 된 우리는 더 많은 일을, 노동을 할 수 있었고 함께 김장을 하던 마당과 기와집을 벗어나 각자의 아파트로 ‘우리끼리’ 들어갔다. 아마 당신도, 방대하고 울창했던 당신의 가족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게 핵분열이야. 일터로 갑시다, 약진하는 조국의, 조국 근대화와 경제발전의 기치, 그 아래서 일인당, 일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이미 선진국 대열에, 어머니 있잖아요 그런 말씀 마세요. 요즘엔 다들, 다들 그렇게, 냉장고에 우유 있으니 꺼내 마시고 학원 빼먹지 마 - 엄마가. 엄마, 엄마 언제 와? 엄마는 일곱시에, 늦어도 일곱시 반까지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아버지 연락 자주 못 드려서, 괜찮다, 우린 아무 일 없으니. 예, 부디 아무 일 없으세요. 제발, 제발요. 그건 그렇고 엄마는?

마치 핵폐기물처럼, 그때 그 포스터 속의 아빠와 엄마? 말하자면 나의 부모와 당신의 부모들은 노인이 되었다. 그들은 더러 기적처럼 건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경통이나 디스크, 당뇨와 고혈압, 동맥경화와 중풍, 치매와 암을 앓으며 죽어가고 있다. 마치 핵폐기물처럼, 한국 현대사라는 원자로 속에서 분열된 그들은? 그리고 오롯이 각자의 핵가족에게 떠맡겨졌다. 처리하세요. 처리시설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처리시설도 없이 이렇게 살라고 옆구리 콕콕 찔렀습니까? 저기, 그러니까 당신의 가족 아닙니까? 가족, 이라구요(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효도 안 하실 겁니까?

보건복지부가 추진한다는 노인요양 보장제도의 실체도, 결국은 또 하나의 보험제를 만들어 그 부담을 국민에게 안기는 것이었다(또 공익광고 만들겠지, 열심히 때리겠지). 나는 점점, 이곳이 하나의 국가라기보다는 하나의 계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일해라, 그리고 부어라. 곗돈을 타는 그날까지 우리는 누구도 안심하지 못한다. 여보, 꽉 잡아. 우리도 늙어가고 있어. 이거 사회 문제 아니래, 개인 문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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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저 방사능에

수십년 전의 포스터처럼, 나는 아내와 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생각한다. 단출하게, 그래서 돈 벌어야지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짐이 돼선 안 되는데, 라는 생각과 더불어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독해진다. 줄어든 질량은 막대한 에너지로 바뀌겠지만(핵폭발의 원리이다), 이제 당신들은 이 에너지를 통제할 방안을 모색하고 모색해야 한다(제발, 염치가 좀 있어라!). 많이 먹어라. 삼촌도 고모도, 누나도 동생도 없는 밥상 앞에서 나는 아들에게 얘기한다. 저 멀리 버섯구름 피어 있고, 속았다, 저 방사능에 ‘우리끼리’ 오염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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