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제가 기억하죠. 다른 사람들은 몇 번 오다 마는데 선생님은 계속 오시네요.”
50대 후반인 경준(가명)님은 15년 전 뇌졸중 발병 뒤 편마비 증상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발병 뒤 충분히 재활하지 못했고 마비 증상이 심해 거동이 어려워졌다. 가족이 있지만 헤어지고 홀로 남았다. 이후 돌보는 이가 없이 칩거하면서 살이 많이 쪘다. 시력과 청력도 조금 떨어진 상태다. 제때 건강관리를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서 지낸다. 한쪽 팔로 식사 등 일상생활을 겨우 한다.
5년 전 경준님을 돌보던 활동지원사가 건강관리를 요청해 와서 처음 만나 뵙게 되었다. 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였기에 살도 빼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잘하면 일어서고 잠시라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식습관을 돌아보고 복약 상태를 점검하며 당뇨 관리를 했다. 가까운 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집에서 넘어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안전바를 넓게 설치했다. 화장실에도 안전바를 설치해서 낙상을 예방했다. 꾸준히 찾아 익숙해지도록 도왔더니 안전바를 붙잡고 잠시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장애인복지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운동을 가르쳐드리고 함께 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병원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주로 혼자 계시기에 오며 가며 연락 없이도 들러서 이야기 나누고 무엇을 먹었는지도 여쭤보고 운동도 격려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체중 감량도 운동 효과도 높지 않았다. 계속 찾으면서도 큰 변화가 없으니 기대만 크고 정성이 부족했던 건 아닌지 자책감이 커졌다. 그렇게 5년째 종종 찾아뵙고 있다. 그래도 전혀 운동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좋아졌겠지 위안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치통이 심하다고 해서 구강 관리도 돕고 건강한 식습관을 안내했다. 일어나기, 걷기라는 목표는 다소 희미해졌지만 나름대로 곁에서 건강관리를 돕고 있다. 편하게 나에게 전화로 어려움을 호소하면 증상에 맞는 약도 처방해드린다. 당뇨는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며 다행히 비슷하게 유지된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 말고도 관공서 같은 곳에서 찾아왔었나보다. 경준님은 무뚝뚝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일회적으로 찾는 사람들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듯했다. 언젠가 환자 상태와 관련해 자문을 얻고자 전문가 몇 분을 모시고 갔는데 대뜸 내가 “계속” 찾아와서 고맙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운 마음도 들고 여러 번 갔을 뿐 크게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인연을 이어가니 나라는 사람을 알아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약을 처방해주거나 운동을 도와줘서가 아니라 계속 찾아왔기 때문에 기억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 경준님을 만나보니 그가 그동안 건강을 잘 관리하지 않았던 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했다. 인연을 이어가는 일, 관계를 쌓아가는 일이 더 중요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건강을 관리하는 일은 어렵다. 의사 마음처럼, 환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긴 시간 관계를 쌓으며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건강을 챙기기 어렵다면 서로 조언하면서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는 방법도 좋은 일 아닌가 싶다. 건강을 챙기는 일은 경쟁할 일이 아니라 상호 보완 작용을 통한 결실이다. 시간이 흘러 활동지원사는 여러 번 바뀌었고 종종 다른 가족이 찾아와서 만나기도 했다. 나도 제법 오랜 시간 곁을 축낸 사람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가는 일이 전부다. 찾아가고 찾아가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를 알아봐주는 이들과 조금 더 오래 만나고 싶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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