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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의 꿈 | 김신명숙

등록 2005-06-02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신명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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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동네 사람들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아파트 주변 나무와 꽃들, 숲과 동산의 푸르름도 유난히 빛나 보인다. 왜냐고? 아파트값이 껑충껑충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판교 후광효과라는 것이다. 용인 서북부 수지라고 불리는 지역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표적 난개발 지역이라는 낙인 때문에 아파트값이 낮았다. 강남이나 분당에서 살다가 전원 속에서 넓은 평수의 잘 지어진 새 아파트에 살려고 들어왔던 사람들은 그 이후 수억씩 치솟은 강남과 분당의 아파트값을 보며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땅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집값 상승 효과, 성스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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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우리 동네의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킨 판교의 힘! 정말 후광을 거느릴 만큼 성스럽지 않은가? 제2의 강남을 꿈꾼다는 판교. 강남과 판교는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꿈이기도 할 터인데, 그러나 다 알고 있듯 이는 집에 대한 꿈이 아니라 돈에 대한 꿈이다. 하고많은 꿈 중에 하필 돈에 대한 꿈이 대한민국의 꿈 ‘시장’을 석권하게 된 것은 요즘 사람들이 갑자기 떼거리로 천박해져서는 아닐 것이다. 돈의 힘이 그만큼 막강해진 것이다.

이제 돈은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가 돼버렸다. 한때 돈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권력과 명예는 진작에 무릎을 꿇었고, 아파트와 차뿐 아니라 몸을 통해서도 돈은 신분 구별짓기의 힘을 과시한다. 부자들은 더 건강한데다 발달한 외모관리 기술 덕에 더 젊어 보이고 더 멋져 보인다. 대체로 자녀교육 역시 성공적이이어서 ‘개천 출신 용’은 이제 신화일 뿐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삶 사이에는 갈수록 견고한 벽이 쌓이고 있으며 어쩌면 그 벽은 앞으로 생사마저 가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궁극적인 위안은 짧고 덧없는 삶과 죽음이었다. 부자나 거지나 늙고 병들고 마침내 죽는다는 점에서는 하등 다를 게 없다는 사실 앞에서 돈의 힘은 약해진다. 그리고 거기서 시와 철학과 종교가 힘을 얻는다.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욕심 부리는 중생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제 황우석 교수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게 돼버렸다. 앞으로 난치병 극복은 물론 복제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이식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니 돈의 힘은 그만큼 커지고 만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신문에는 ‘무병장수 시대 - 재테크로 10억 만들자’는 광고문구가 등장했다. 앞으로 ‘백년도 못 사는 인간’에 대한 조롱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조롱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어느 날 갑자기 ‘부우~자 되세요’가 전국민의 새해 덕담으로 자리잡았을 때 이미 사태는 심상치 않았다. 마침내 ‘민의’에 민감한 대통령 입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항복 선언이 나왔고, 며칠 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조직 1, 2위 자리를 삼성과 현대차 두 대기업이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한 신문의 1면을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정의감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수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시민단체의 웹사이트엔 우리 동네 소모임방이 있다. 아파트값 상승과 함께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고 있는 동네 사람들 중 일부는 요새 여기서 ‘우리 아파트값은 우리가 지키자’는 강력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바로 옆의 광교테크노밸리에 황우석 박사가 연구할 첨단시설도 들어선다며 앞으로 몇년 뒤면 ‘집값이 날아갈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웹사이트의 자유게시판 역시 비슷한 분위기여서 ‘부자의 꿈’이 흐뭇하게 익어가고 있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가끔씩 이상한 제목의 글이 올라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이를테면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의 되는 그날까지!’ 물론 이런 글의 조회 수는 아주 낮다. 대개는 무시하지만 ‘이제는 지겹다’는 댓글로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노동자의 꿈’은 부자의 꿈, 판교의 꿈 앞에 속수무책이다. 한때 치열했던 변혁의 꿈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호소로 찌그러져버린 요즘 아닌가?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냐고? 사람이 정의감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하지 말라. 앞으로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하면 정의감도 뇌에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단, 부자들이 그걸 살 뜻이 있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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