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4년 전, 이제 막 전역한 군법무관 출신의 몇몇 변호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군검찰관 혹은 군판사로 재직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군사법제도의 폐해를 털어놨다. 지휘관의 부당한 개입이나 압력에 의해 군 내부의 사법권 행사가 왜곡됐던 사례를 들면서, 군사법을 ‘지휘관의 사법’이 아닌 ‘국민의 사법’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들은 별도의 모임을 갖고 ‘군의 특수성 및 부당한 제도와 왜곡된 관행으로 군검찰의 검찰권 행사와 군판사의 재판은 단지 절차적 완결성을 위한 요식 행위에 그치고 있다’며 ‘군검찰관의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도록 하며, ‘지휘관의 확인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포괄적인 군사법제도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군사법제도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에 들어선 것은 그들 때문이었다.
균형감 없는 군사법제도가 존재하는 한
최근 육군장성 진급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군검찰관 3명이 보직 해임되고 당사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것도 바로 군사법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장성 진급심사를 위한 인사자료가 일부 허위로 작성되거나 누락됐는데, 이같은 행위가 특정인의 진급 혹은 탈락을 위해 고의로 이뤄졌는지, 이 과정에 윗선의 개입이 있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관들은 관련 정황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고 이미 실무자까지 구속한 상태였다. 나아가 윗선의 지시 혹은 개입 단서를 잡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현역 장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승인이 이뤄지지 않자 보직 해임을 요청했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히 영장 승인 문제뿐만 아니라 수사에 대한 군 내부의 반발과 비협조 그리고 과잉 수사, 언론을 이용한 여론몰이식 수사라는 악의적인 비난까지 더해져 정상적인 수사가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이같은 고충을 해결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마치 군 기강을 저해하고 항명을 한 것으로 판단해 수사권을 박탈하고 말았다. 본질적으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 수사 방식의 문제는 수사권을 행사하는 수사 주체의 재량권에 속하고, 다만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 군검찰과 달리, 이들 검찰관이 그동안 성역으로 존재하던 군 장성을 상대로 엄격한 수사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 비춰 국방부의 이같은 결정은 군검찰 수사를 사실상 가로막는 것이었다. 현행 군사법제도는 구속 승인은 물론 기소 여부, 재판관 지정, 판결에 대한 확인 조치 등 지휘관이 군사법 절차 곳곳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군사법 시스템이 군의 특수성을 이유로 사법권의 공정성보다는 지휘권의 확보와 군 기강 확립이라는 사법 외적인 요인에 의해 짜였기 때문이다. 지휘관이 사실상 인사권, 사법권, 사면권 모두를 행사함으로써 군검찰과 군사법원은 들러리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원칙적으로 군사법제도의 틀과 운영은 군의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일반적인 법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양자간에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 사건과 같은 진급을 둘러싼 인사 비리나 뇌물·횡령 등과 같은 부패범죄는 탈영, 항명죄 등과 달리 군의 특수성이 인정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군은 이를 이용해 군 내부의 비리, 부패 문제까지도 덮어두려 했다. 그나마 어렵게 드러난 단서조차도 군의 명예를 명분으로, 관행을 이유로 면죄부를 주기에 급급해왔다. 그 과정에서 군사법제도의 맹점이 활용돼온 것은 불문가지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장성 진급심사와 관련해 제기돼왔던 여러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군검찰관들의 행동과 낡은 군사법제도를 악용하려는 군 내부 기득권과의 충돌이다. 제도를 바꾸기 이전이라도 최소한 기존 제도가 악용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군이 국민의 신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면 그 신뢰의 초석이랄 수 있는 도덕성과 윤리성만은 제도 이전의 문제이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군 내부와 제도의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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