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대표팀 감독 후보로 10여명의 외국인들이 선정되었고 몇 차례에 걸친 엄정한 심사를 거쳐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질 모양이다. 사실 국가라는 이름 또는 다소 환상적이긴 하지만 국익을 내걸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월드컵경기에서도, 상당수 나라, 특히 축구개발도상국의 감독들은 외국인인 경우가 많다. 하긴 선수들조차도 실제로는 주로 유럽의 빅리그에 흩어져 있다가 잠시 국가대표라는 이름으로 모여드는 것이니, 누군가가 월드컵을 일컬어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본의 대리전이라 표현한 것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순수혈통에 대한 집착이 워낙 강한 사회분위기 탓인지, 다른 나라에서 가끔 일어나는, 남미출신 선수를 귀화시켜 국가대표로 만드는 해프닝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감독에 관한 한 외국인을 임명하는 것에 대한 편견이나 거부감은 사라진 듯하다.
‘축구’에서 읽힌 국제적 사슬관계
어디 이런 현상이 한국축구만의 것이겠는가? 일본의 야구영웅 이치로나 마츠이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자리를 메우는 것은 한국의 국민타자 이승엽이고, 그렇게 해서 비어버린 자리는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의 외국인 용병선수가 메운다. 한때 의식 있는 경제학자라면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수직적 분업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 세계화에 관한 사회학 논문에서는 심지어 자녀양육에서 나타나는 국제적 사슬관계에 관한 주장마저도 읽은 적이 있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의 백인 중산층의 아기는 영어에 능통하며 대학까지 졸업한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이멜다(이름이야 무엇인들!)가 돌보고, 그렇게 해서 번 돈이 마닐라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되면 그 중의 일부는 이멜다의 아이들을 돌보는 시골 출신의 보모에게 수당으로 지급된다는 식이다.
그래, 이것이 바로 국제화라는 말만으로 모자라는 세계화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너는 너의 아이들을,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2군 리그에서 뛰게 하고 싶은가, 아니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뉴욕 양키즈의 구장에서 홈런 세러머니를 하도록 만들고 싶은가? 이렇게 강한 위력을 갖는 협박성 질문 앞에서 누가 꿋꿋하게 버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기러기 아빠들은 휴가 때면 컵라면 싸들고 보스톤, 하다못해(!) 뉴질랜드의 어느 공항을 향해 떠난다. 과외 한번 안 하고 교과서 위주로 충실하게 공부하였으며 법관이 되어 정의사회를 실현하겠다던 서울대 수석합격자 인터뷰 기사의 자리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 한번 없지만 토플을 만점 받았으며 장차 국제변호사가 되겠다는 아이비리그 입학허가서 최다획득 학생의 인터뷰 기사가 대신하게 되었다. 달라진 것은 욕망의 대상과 방식일 뿐, 우리의 욕망을 지배하는 논리구조, 그것을 만들어냈을 사회적 가치판단의 구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대학은 멍들어간다. 사실 초등학교만도 못한 시설이나 투자로 학생들 등록금이나 축내왔던 부실한 대학들, 기득권에 길들여져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닫혀진 세상 속에 살아왔던 교수들, 요컨대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좀먹어왔던 당사자들의 무사안일이나 낙후된 사고가 개혁된다는 긍정적 의미야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학이야 사유재산권 주장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버티다가 ‘자본철수’를 손쉽게 만들어주는 법률이라도 생기면 손털고 돌아서면 되고, 교수도 경쟁이 엄청 치열하긴 하겠지만 능력 있으면 비례대표자리라도(?) 얻어서 나가면 된다.
교육을 바로 세우는 논의가 필요하다
세계화론자들이 흔히 말하듯 어차피 대안이 없는 것이라면, 영어참고서식으로 표현해서 한국 대학의 미국 대학에 대한 관계는 청담동의 맨해튼에 대한 관계와 같도록 내버려두자. 그저 영원한 짝퉁으로 남을 바엔, 그나마 근사한 짝퉁이 되도록 만들어보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으랴.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외국인학교 세우고 외국대학과 손잡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교육, 우리의 대학이 바로 서도록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내 어린 시절의 축구영웅들이 외국인 감독 앞에서 하릴없이 물러나는 것이 서글픈 만큼이나, 우리의 대학교육이 하버드도 아닌 마이너리그 대학 앞에 꼬리를 내리는 모습 또한 서글픔을 넘어 우리 학문의 암울한 미래와도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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