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자해로 교도관 폭행에 항의하는 영등포구치소 재소자들… 구치소쪽과 맞고소 사태로 번져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교도관의 상습적인 폭행에 항의해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던 재소자가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발생해 파장이 일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감옥살이 체험’을 기획할 정도로 재소자 인권개선을 강조하는 참여정부에서도 여전히 교도관들의 폭행 시비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조합원 정아무개(44)씨는 지난 4월3일 자신의 왼쪽 동맥을 1회용 면도칼로 그었다. 정씨는 자해 뒤 최근 영등포구치소에서 발생한 교도관들의 재소자 폭행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며 치료를 거부하다, 구치소쪽의 재조사 약속을 받고 인근 병원에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정씨는 “지난 1월과 2월 발생한 재소자 폭행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하며 지난 3월20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여왔다.
영등포구치소에는 현재 정씨 말고도 전국해고자원직복직특별위원회(전해투) 전 조직국장 강아무개씨 등 4명의 재소자가 20일 넘게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재소자 안아무개씨가 구치소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다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강씨는 폭행에 항의해 단식농성을 벌이던 중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폭행 항의하는 단식자도 폭행”
천주교인권위원회와 민주노총에 따르면 강씨는 안씨의 폭행사건에 대한 항의로 지난 2월16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강씨는 단식 9일째인 2월24일 2명의 교도관에게 “아침 점호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맹주천 변호사는 “강씨의 폭행을 목격한 증인은 없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폭행을 당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과 전해투는 “강씨가 사건 당일 계속되는 단식으로 탈진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교도관 2명이 강씨의 독방에 들어와 강씨를 일으키려다 강씨가 저항하자 방바닥으로 밀쳐냈다. 그 뒤 교도관 한명이 넘어진 강씨를 올라탄 뒤 무릎으로 명치를 누르고 발로 입을 비벼대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교도관들은 강씨가 실신할 무렵에야 폭행을 그쳤는데, 잠시 뒤 강씨가 정신을 차리자 경비교도대원들과 함께 강씨를 의무과로 끌고가 강씨의 목과 입을 조르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등포구치소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오히려 강씨가 교도관을 폭행했다고 주장한다. 강씨가 점호에 응하지 않자 교도관들이 방에 들어가 강씨의 이불을 들췄는데, 강씨가 욕을 하고 책을 집어던졌다는 것이다. 조영호 영등포구치소장은 “강씨는 한 교도관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으나, 다행히 다른 교도관이 이를 제지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의무과에서 발생한 폭행 시비는 강씨가 진료를 거부하고 자해를 시도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치소는 안씨에 대한 폭행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 소장은 “안씨가 평소 구치소 행정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등 문제를 많이 일으켜왔다”며 “안씨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서 교도관들이 이를 제압했을 뿐 폭행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구치소는 강씨를 교도관 폭행 혐의로 징벌위원회에 넘겨 30일 금치 처분을 내렸고,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강씨 등도 이에 맞서 구치소장과 장아무개 교도관 등을 검찰에 고소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강씨는 단식을 계속하다 건강이 악화돼 3월5일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 치료를 받은 뒤, 3월16일 다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법무부 인권개선 작업 실패인가
이번 사건은 폭행 장면을 목격한 ‘제3자’가 없다는 점에서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영국 변호사는 “구치소의 특성상 중립적인 증인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하다”며 “재판에서 교도관의 폭행을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재소자들이 동조 단식농성을 벌이고 게다가 자살까지 기도한 정황으로 볼 때 이들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권 변호사는 “다른 재소자 중에서도 교도관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며 “교도관들의 폭행은 대부분 징벌방이나 독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목격자를 확보하기가 어려운데, 영등포구치소가 이런 점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아직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양쪽이 검찰에 맞고소를 한 상태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진상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관의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금실 장관 취임 이후 별도의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대대적인 재소자 인권개선 작업을 추진해온 법무부는 이번 사건으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 교정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가죽수갑 폐지, 현대적 계구 도입, 계구 사용 요건과 계구 사용시간 제한, 과도한 징벌 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재소자 인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강 장관이 지난해 12월 인권주간을 맞아 ‘1일 감옥체험’을 기획하는 등 재소자 인권 개선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참여정부의 법무부 정책이 결국 ‘이미지 행정’이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목 아프니 두통약 먹어라? |
[구치소의 열악한 의료 환경] 영등포구치소 폭행사건의 발단은 구치소의 열악한 의료 환경이다. 단식농성의 계기가 된 안씨 폭행사건은 안씨가 구치소의 부실한 의료 시스템을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안씨는 영등포구치소에서 의사 자격이 없는 교도관이 직접 약을 처방하는 등 무면허 의료행위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안씨를 접견한 민주노총 맹주천 변호사는 “안씨가 목이 아파서 의무과에 갔는데, 교도관이 머리 아픈 약을 처방해 부작용을 겪은 일도 있었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변의 이상희 변호사는 “교도소나 구치소의 열악한 의료 환경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며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데, 참여정부도 예산타령만 한다”고 지적했다.
영등포구치소도 의료 시스템의 허술함을 일부 인정한다. 조영호 구치소장은 “영등포구치소의 수용자는 2천명인데 불과 3명의 의사가 이들을 돌보고 있다”며 “법무부에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펄쩍 뛴다. 조 소장은 “야간에는 의사들이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급한 환자가 있으면 교도관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준다”며 “재소자들이 이를 보고 교도관이 처방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등포구치소에서는 지난 4월1일 재소자 한명이 신병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재소자들은 열악한 의료 환경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숨진 정아무개씨가 평소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정씨가 종교단체 관계자나 정신과 전문의 등과의 면담을 요청했는데도 구치소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치소쪽은 “정씨가 우울증을 호소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해 의료 전문인력 확보를 중점 추진과제로 정하고 올해부터 공중보건의 21명을 증원하는 등 의료인력 확충 5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재소자들이 느끼는 구치소(교도소)의 의료 시스템 ‘체감 온도’는 아직까지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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