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국회지점을 통해 본 국회 근무자 신용 백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여의도 국회 안에 있는 유일한 금융점포는 농협중앙회 국회지점이다. 고객은 3500여명인데 거의 다 국회 관계자들이다. 고객 절반가량은 의원회관쪽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국회의원부터 의원실의 4·5급 보좌관 및 비서관, 6~9급 비서, 운전기사까지고 다른 절반은 국회 본관 사무처쪽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이 점포의 대출연체율(신용·담보대출 포함)은 1월8일 현재 1.69%이다. 서울지역 농협 점포 평균연체율이 1.29%이므로 서울 평균보다 연체율이 더 높다. 국회와 마찬가지로 공무원들이 주요 고객인 정부과천청사 농협지점의 연체율은 0.98%, 정부중앙청사 농협지점의 연체율은 1.16%로 둘 다 1% 안팎으로 엇비슷하다. 그런데 유독 국회 점포의 연체율이 훨씬 더 높은 이유는 뭘까?
가난한 17대 의원, 대출자 많아
농협 국회지점 류지홍 지점장은 “현재 우리 점포의 총 대출금이 450억원인데 부동산 담보대출은 거의 없고 대부분 신용대출”이라며 “국회 사무처쪽 고객은 연체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연체는 대부분 의원회관쪽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의원회관쪽만 따로 놓고 보면 연체율이 3%를 넘는다고 할 수 있다. 류 지점장은 “사무처쪽 사람들은 정년까지 보장돼 계속 근무하기 때문에 소득이 안정적이라서 대출금 연체가 적은 반면, 의원회관쪽은 총선거로 국회의원이 교체되는 시기에 부실채권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선거에서 떨어지면 국회의원뿐 아니라 딸린 보좌관·비서관·운전기사까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이때 부실채권이 급증하게 된다는 얘기다. 국회지점쪽은 현재 연체 대출금이 약 6억∼7억원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신용대출 한도는 △국회의원 5천만원 △4급 4천만원 △5급 3천만원 △6급 2천만원 △7급 1500만원 △9급 1천만원이다. 워낙 국회 농협점포 신용대출이 일반적이다 보니 국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신용대출 한도가 얼마인지 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용대출을 받은 국회의원은 몇명이나 될까? 신용대출 금리는 변동금리로 연 4∼7%대인데 상습 연체자가 아닌 한 대부분 4%대를 적용받고 있다. 농협쪽은 “국회 근무자들은 별정직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싼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신한은행의 공무원우대 신용대출 연 최저금리는 연 5%대(퇴직금 담보대출)이고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최저금리는 연 5∼6%대다. 어떤 공무원 신용대출 상품보다도, 나아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도 더 싸다. 농협쪽은 “다른 공무원 직급에 비해 국회 근무자들의 보수가 더 높기 때문에 신용대출도 잘나가는 편”이라며 “국회 사무실을 돌면서 대출 세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쪽은 공개를 꺼렸지만 이 점포를 통해 싼 금리로 상당수 의원들이 신용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총 대출금액이 450억원이므로, 점포 고객(3500명)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신용대출을 받았다 쳐도 1인당 평균 대출금이 1200만원에 이른다. 따라서 부자 국회의원을 빼고 대다수가 대출한도 5천만원을 꽉 채워 신용대출을 받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경우 신용대출 한도가 초과되면 4%보다 조금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해 추가 신용대출도 해주고 있다.
류 지점장은 “지난 16대 의원들은 부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독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출금을 갚았다”며 “17대 의원은 초선도 많고 가난한 의원도 많은데다 정치자금법 규제로 ‘돈가뭄’에 시달리면서 대출을 해가는 의원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 본인이 연체하고 있는 건 별로 없고 대부분 보좌관, 운전기사 등이 연체하고 있는데, 특히 16대 시절 한나라당 보좌·비서관들의 경우 모시던 의원들이 선거에서 여럿 낙마하면서 일자리를 잃어 연체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연체고객 중에는 국회의원(월평균 세비 855만원)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 닥치면 4개월 전부터 대출 억제
연체가 늘자 농협 국회점포도 그동안 쌓인 대출 노하우를 활용해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류 지점장 책상에는 국회의원 재산공개내역 신문기사 스크랩이 비치돼 있다. 대출해줄 때 재산내역을 판단하는 자료 중 하나다. 류 지점장은 “현역 국회의원이라 해도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의원직 유지가 유동적인 사람은 철저하게 체크해서 대출을 막고 있다”며 “총선이 닥치면 4개월 전부터 대출 억제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180만원의 월급을 받는 민주노동당 의원들한테는 5천만원을 다 채워서 대출해주지 않는다. 농협쪽은 그러나 “무작정 ‘당신은 이번 선거에서 떨어질 것 같으니 빨리 대출금을 다 갚아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난감하다”며 “재산 공개로 인해 일찌감치 다들 다른 사람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고 출마하기 때문에 연체하면 받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국회의원의 마음에 따라 수시로 교체되기 때문에 신분이 불안정한 의원보좌관·비서관·수행비서 등이 골칫거리 연체자들인데,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관에 대해서는 특별 심사를 거친다고 한다. 의원 본인이 낙선할 경우 다른 의원실로 스카우트되기도 어렵고, 결국 직장을 잃어 연체자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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