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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쓰나미, 고시촌 강타하나

등록 2005-04-06 15:00 수정 2020-05-02 19:24

예상되는 사시시장 축소에 전전긍긍하는 신림동… 사시학원·고시원·사설 독서실, 3대업종 암중 모색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신림동 고시촌’이 꿈틀대고 있다. 오는 2008년에 도입될 로스쿨(법학대학원) 제도가 사법시험(사시)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곳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고시촌 3대 업종인 사시 학원과 고시원, 사설 독서실 업주들은 올 11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확정할 로스쿨의 세부적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직장인 고시원 대안될까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학원이다. 중소 규모의 학원들은 물론 사시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대형 학원들도 로스쿨에 맞는 영업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로스쿨 도입을 앞두고 지금이 사시에 합격할 마지막 기회라는 초조감에 아직까지는 고시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수가 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신림동 고시촌 3대 학원 중 한 곳인 ㅂ학원 관계자는 “시험에 비유한다면 아직 로스쿨에 대한 문제 출제가 안 되어 예상 답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로스쿨 도입에 따라 사시 시장의 크기가 줄어들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시 응시자가 평균 2만명(1차)인 데 비해 로스쿨의 예상 정원은 120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시 시장의 절대적 크기가 10분의 1 이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이곳 학원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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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 학원들이 사시 ‘대체재’로 선호하고 있는 것은 공무원 시험이다. 공무원 시험 과목은 사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업종 전환’에 따른 비용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이미 서울 노량진 학원가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게 형성됐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다. ㅎ학원 관계자는 “이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고시는 신림동, 공무원 시험은 노량진’이라는 말이 공식화돼 있다”며 “사시 학원의 변신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로스쿨이 도입되더라도 사시 학원의 중요성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져 그 변신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ㅂ학원 관계자는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기존의 사시 과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시 학원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의 절대적 크기가 줄어드는 데서 오는 자연 감소분만큼만 공무원 시험 강좌로 대체하고 나머지는 지금처럼 사시 과목 위주로 운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말했다. 사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찾듯이 로스쿨 진학을 위해 자연스레 학원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는 사시 학원이 ‘법조 인력 양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시 학원들의 자존심에서 나온 전망도 약간 섞여 있다. ㅊ학원 관계자는 “신림동 고시촌 학원 강사들의 실력은 사법연수원 교수들도 인정할 정도”라며 “이곳에서 사시를 준비한 사시 합격자들이 훌륭한 법조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로스쿨 도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업종이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지금도 초과 공급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사시 합격자 500명 시대 때부터 일기 시작한 ‘고시원 붐’은 사시 합격자 1천명 시대를 연 2001년 이후 조금씩 가라앉다가 최근에는 불경기가 겹쳐 고시원마다 빈방이 속출하고 있다. 불경기를 이기지 못해 폐업하는 곳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스쿨 도입으로 사시 시장의 크기가 줄 경우 고시원의 줄폐업은 불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고시원의 변신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대표적인 게 고시원 영업의 범위를 일반 직장인들로 확대하는 것이다. 고시원은 원룸 등 다른 형태의 숙소에 비해 값이 싸기 때문에 미혼의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다. 이미 발빠른 고시원들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는 한편, 기존의 고시생들에게 맞춘 시설을 개조하는 공사도 하고 있다. 고시원의 변신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시원 업주들은 이 지역의 학원들과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림동고시원발전대책위원회 손남식 회장은 “학원이 죽으면 고시원도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학원이 계속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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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3년 뒤" 고시생들 무덤덤

고시원이나 학원과 달리 고시생들의 로스쿨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했다. 이곳 고시생의 대부분은 로스쿨이 적용되는 04학번(2004년 입학) 이상의 학생이나 졸업생들로, 이들에게 로스쿨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ㅂ학원에서 만난 한 고시생(한양대 졸업)은 “로스쿨이 도입되려면 앞으로 3년은 더 있어야 되는데, 그 전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차피 법조인은 못 되는 것”이라며 “한달에 최소 100만원이 들어가는 사시 준비를 무슨 재주로 3년 이상 계속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로스쿨이 가난한 학생들의 법조계 진입장벽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로스쿨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법조계의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쿨은 올 11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세부적인 인가 기준이 확정돼 내년 6월 대학들로부터 인가 신청을 받아 그해 10월까지 설립대학이 최종 결정된다. 지금 추세라면 로스쿨 수가 많아야 10개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로스쿨 설립이 대학의 존폐는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유치 경쟁은 대학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간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과연 로스쿨은 그런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생들은 이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술집? 고시낭인? 화 나네요."

“또 고시낭인(浪人)이라고 쓰려고 그러죠?” 지난 3월30일 서울 신림2동의 한 학원 앞에서 만난 그들은 기자의 신분을 밝히자마자 대뜸 이렇게 대꾸했다. “고시생들 중에서 신문이나 방송에 나는 거 좋아할 사람 하나도 없어요. 괜히 헛수고 마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저 없이 강한 불쾌감을 나타낸 이들은 이곳 고시촌에 입촌한 지 각각 3개월과 10개월 된 남(32)·여(31) 고시생이었다.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며 가까스로 이들을 붙잡은 뒤, 점심 한끼로 이들의 입을 여는 데 성공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고시촌 취재한다고 카메라로 여기저기 지나가는 사람들 찍어놓고서는 고시낭인이네, 사회적 손실이네 하는 바람에 참 화가 났죠. 고급 술집에서 흥청대는 장면들도 나왔는데, 그런 곳에 가는 사람들은 고시생이 아니에요. 그냥 이곳에 사는 직장인들이나 하숙생들이죠. 고시생이 그런 데 어떻게 갑니까. 돈이 없어서 도저히 견적이 안 나와요.” “그 방송을 보고서는 집에서 전화 왔어요. ‘너도 그런 데 다니냐’고. 가뜩이나 부모님께 죄송한데 그런 걱정까지 끼쳐드려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은 ‘고시낭인’이라는 말은 고시생을 두번 죽이는 말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시 한번 떨어지면 자학하게 됩니다. 한창 돈 벌어야 할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냐고. 부모님이나 형제, 친척,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에게 면목이 없죠. 이런 상태에서 고시낭인이라는 말까지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축구선수는 축구가 가장 자신 있고, 요리사는 요리를 가장 잘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고시공부입니다. 아직 시험에 붙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적 무능력자 취급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질문을 못하는 기자에게 이들이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사시 불합격죄의 형량이 얼마인지 아세요?” “….” “정답은 ‘징역 1년에 벌금 1천만원’. 1년 동안 남부끄러워서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 기간 동안 생활비로 1천만원 정도 드니까.” 고시생들은 이곳에서 ‘죄 아닌 죄’ 값을 치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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