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삼성 조망권 다툼에 관심 쏠리는 한남동·이태원동… 예로부터 왕가별장·사신 접대처 등 빼어난 터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뒤로는 남산에 의지하고 앞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보이는 곳. 터널 하나 지나면 강북 시내와 바로 통하면서 앞으로는 강남 고층 빌딩들을 굽어볼 수 있는 곳. ‘재벌 집성촌’이라 불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과 한남동. 이곳에 새집을 짓고 있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이웃인 농심 신춘호 회장 일가가 소송을 내면서 한남동 일대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금호·동부 등… 북풍막고 풍경좋아
차도 하나를 경계로 갈라지는 이태원동과 한남동 일대는 신춘호 농심 회장 외에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과 박삼구 금호회장,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등이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하얏트호텔 뒤쪽으로는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과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살고 있다. 지난해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도 이곳에 들어서 이른바 ‘삼성타운’이라 할 만하다.
이건희 회장이 새집을 짓고 있는 이태원동 135번지 일대는 위로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동익 농심메가마트 부회장이 살고 있으며 도로 건너편엔 신춘호 회장의 자택이 마주하고 있다. 신춘호 회장은 92년에 이곳으로 이사와 살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엔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함께 살기 시작했고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97년 건너편에 집을 지어 옮겨왔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 신동익 부회장 집 앞에 있던 주택 네채를 사들여 헐고 건평 1100여평 규모에 지하 3층 지상 2층짜리 주택 공사를 시작했다. 본래 이 회장은 ‘리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두 집안의 신경전도 점차 달아올랐다. 농심쪽이 낸 ‘이태원동 건축소송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사 초기엔 소음 때문에 낮에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으며 2002년 여름부터는 지하실 방내 천장에 누수가 시작돼 벽에는 곰팡이가 끼고 마룻바닥은 썩을 정도로 집 골조에 문제가 시작돼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개선된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택교 농심메가마트 이사는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차장에 금이 가고 보도블록이 파손돼 항의하면 삼성쪽에서 직접 보수를 해줬으나 변상은 없었으며 요즘도 기계실 소음 때문에 밤에 가족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감정다툼은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신 회장 일가는 지난 1월 공사에 따른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조망권이 침해된다며 법원에 공사진행중지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3월3일엔 용산구청장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건축허가무효소송과 정보공개거부 취소소송을 냈다. 건축허가무효소송은 “이 회장의 새집이 경관지구 내 건물높이 제한을 위반했으므로 건축허가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고, 정보공개거부취소소송은 신축 건물의 도면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이를 거부처분한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쪽은 “공사때문에 발생한 진동·소음 모두 법적기준치 이내였으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쪽은 가벽을 높게 쳐올린 채 공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농심쪽은 대문을 굳게 잠그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시가 펴낸 <동명연혁고>라는 책에 따르면, 본래 이태원동 135번지 일대는 ‘신선뒤’라 부르는 터가 있었고 그곳에는 ‘신선뒤 우물’이라는 맛 좋은 샘터가 있었다고 한다. 남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맛 좋은 샘이 있었으니 사람이 살기 좋은 곳임에 분명했을 터다. 또 지도를 펴놓고 남산에서 직선을 그으면 정남향에 해당하는 이곳은 동쪽으로는 응봉에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한강과 경계를 이뤄 예로부터 빼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한남동에서 보광동으로 가는 고갯마루 한남동 537번지 일대엔 옛 왕가의 별장이 있어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제천정(월파정)이 자리잡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관악산을 견줬다. 한남동 459번지에도 황희의 손자사위 김광국이 지었던 정자 천일정이 있었다. 풍경을 즐기는 것은 정자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흥취가 더하면 강변으로 나가 한남동에서 양화진으로 거슬러오르는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해방 이후 각국 대사관과 외국인 주거지가 주변에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 걸음 건너 기슭엔 해방촌·쪽방촌
하지만 남산과 한강 사이에 깃들여 있다고 해서 모두 부촌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한남동·이태원동에서 서쪽 산 능선을 넘어가면 바로 용산동 해방촌이 나온다. 일제시대 남산은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한양을 겨누며 주둔했던 곳으로 청일전쟁 때도 일본군은 남산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다. 일제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는 남산에 신사·신궁을 짓고 일본인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으며 일본인들도 주변에 모여 살았다. 해방촌은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쫓겨가고 난 뒤 분단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월남한 사람들과 피난민이 무단으로 점거하며 판자촌을 이뤘던 곳으로 아직까지도 도시 서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남산의 북사면에 자리잡은 회현동·동자동·양동 지역도 하루 노동으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쪽방 집성지에 해당한다. 서울의 부촌과 빈촌이 모두 남북을 경계로 남산에 깃들여 있는 셈이다. 해는 다 같이 비치는데 그 땅이 쬐는 햇볕 한줌 차이는 엄청나다.
|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식사도 못 하신다”…인생의 친구 송대관 잃은 태진아
박현수 경찰국장 서울청장 임명 임박…윤석열 ‘옥중 인사권’ 논란
“인도가 초청”…검찰, 김정숙 여사 ‘타지마할 외유’ 의혹 무혐의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대왕고래 아닌 대왕구라였다”… 국정 브리핑 1호의 몰락
[영상] 1분15초 만에 들통난 윤석열 ‘거짓말 영상’, 실소 터진 민주당
전두환 867억 추징 못하나…연희동 자택 소유권 이전 소송 각하
‘총구 외부로’ 압박에도…‘비명’ 김경수·김부겸 “민주당 포용성 촉구”
윤석열 “조기 대선은 하늘이 결정…모래알 돼선 안 돼”
[단독] 여인형 메모 속 “ㅈㅌㅅㅂ 4인 각오”는 지작·특전·수방·방첩 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