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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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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이 노래하네, 한남동 타령

등록 2005-03-22 00:00 수정 2020-05-03 04:24

농심-삼성 조망권 다툼에 관심 쏠리는 한남동·이태원동… 예로부터 왕가별장·사신 접대처 등 빼어난 터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뒤로는 남산에 의지하고 앞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한강이 보이는 곳. 터널 하나 지나면 강북 시내와 바로 통하면서 앞으로는 강남 고층 빌딩들을 굽어볼 수 있는 곳. ‘재벌 집성촌’이라 불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과 한남동. 이곳에 새집을 짓고 있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이웃인 농심 신춘호 회장 일가가 소송을 내면서 한남동 일대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금호·동부 등… 북풍막고 풍경좋아

차도 하나를 경계로 갈라지는 이태원동과 한남동 일대는 신춘호 농심 회장 외에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과 박삼구 금호회장,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 등이 모여살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하얏트호텔 뒤쪽으로는 삼성 영빈관인 승지원과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씨,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살고 있다. 지난해 개관한 삼성미술관 ‘리움’도 이곳에 들어서 이른바 ‘삼성타운’이라 할 만하다.

이건희 회장이 새집을 짓고 있는 이태원동 135번지 일대는 위로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동익 농심메가마트 부회장이 살고 있으며 도로 건너편엔 신춘호 회장의 자택이 마주하고 있다. 신춘호 회장은 92년에 이곳으로 이사와 살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엔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이 함께 살기 시작했고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97년 건너편에 집을 지어 옮겨왔다. 이건희 회장은 이후 신동익 부회장 집 앞에 있던 주택 네채를 사들여 헐고 건평 1100여평 규모에 지하 3층 지상 2층짜리 주택 공사를 시작했다. 본래 이 회장은 ‘리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두 집안의 신경전도 점차 달아올랐다. 농심쪽이 낸 ‘이태원동 건축소송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에 따르면 “공사 초기엔 소음 때문에 낮에는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으며 2002년 여름부터는 지하실 방내 천장에 누수가 시작돼 벽에는 곰팡이가 끼고 마룻바닥은 썩을 정도로 집 골조에 문제가 시작돼 구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개선된 것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택교 농심메가마트 이사는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차장에 금이 가고 보도블록이 파손돼 항의하면 삼성쪽에서 직접 보수를 해줬으나 변상은 없었으며 요즘도 기계실 소음 때문에 밤에 가족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감정다툼은 법정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신 회장 일가는 지난 1월 공사에 따른 소음과 진동이 심하고 조망권이 침해된다며 법원에 공사진행중지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3월3일엔 용산구청장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건축허가무효소송과 정보공개거부 취소소송을 냈다. 건축허가무효소송은 “이 회장의 새집이 경관지구 내 건물높이 제한을 위반했으므로 건축허가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고, 정보공개거부취소소송은 신축 건물의 도면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이를 거부처분한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쪽은 “공사때문에 발생한 진동·소음 모두 법적기준치 이내였으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삼성쪽은 가벽을 높게 쳐올린 채 공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농심쪽은 대문을 굳게 잠그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시가 펴낸 <동명연혁고>라는 책에 따르면, 본래 이태원동 135번지 일대는 ‘신선뒤’라 부르는 터가 있었고 그곳에는 ‘신선뒤 우물’이라는 맛 좋은 샘터가 있었다고 한다. 남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맛 좋은 샘이 있었으니 사람이 살기 좋은 곳임에 분명했을 터다. 또 지도를 펴놓고 남산에서 직선을 그으면 정남향에 해당하는 이곳은 동쪽으로는 응봉에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한강과 경계를 이뤄 예로부터 빼어난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한남동에서 보광동으로 가는 고갯마루 한남동 537번지 일대엔 옛 왕가의 별장이 있어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제천정(월파정)이 자리잡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관악산을 견줬다. 한남동 459번지에도 황희의 손자사위 김광국이 지었던 정자 천일정이 있었다. 풍경을 즐기는 것은 정자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흥취가 더하면 강변으로 나가 한남동에서 양화진으로 거슬러오르는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해방 이후 각국 대사관과 외국인 주거지가 주변에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한 걸음 건너 기슭엔 해방촌·쪽방촌

하지만 남산과 한강 사이에 깃들여 있다고 해서 모두 부촌이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한남동·이태원동에서 서쪽 산 능선을 넘어가면 바로 용산동 해방촌이 나온다. 일제시대 남산은 일본인들에게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한양을 겨누며 주둔했던 곳으로 청일전쟁 때도 일본군은 남산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다. 일제 강점 이후 조선총독부는 남산에 신사·신궁을 짓고 일본인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으며 일본인들도 주변에 모여 살았다. 해방촌은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쫓겨가고 난 뒤 분단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월남한 사람들과 피난민이 무단으로 점거하며 판자촌을 이뤘던 곳으로 아직까지도 도시 서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남산의 북사면에 자리잡은 회현동·동자동·양동 지역도 하루 노동으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쪽방 집성지에 해당한다. 서울의 부촌과 빈촌이 모두 남북을 경계로 남산에 깃들여 있는 셈이다. 해는 다 같이 비치는데 그 땅이 쬐는 햇볕 한줌 차이는 엄청나다.



진짜 부자동네는 성북동?

공놀이를 해도 좋을 널찍한 잔디밭, 수영장이 딸린 정원, 고개가 아플 만큼 높은 담. TV드라마에 나오는 대저택들은 어디에 있을까. 2002년 한 주식정보업체가 보유주식 평가액 50억원 이상인 부호 700명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분석해 10대 부자동네를 선정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최고 부촌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이었다. 700명 가운데 52명(7%)이 모여사는 이곳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이 살고 있으며 LG그룹 영빈관도 이곳에 있다. 성북동 재벌 52명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시가총액(주식 수×주가)은 9119억원에 달했다(2001년 기준). 부촌 2위 동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35명(5%)의 부호가 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가 동네인 만큼 보유주식 총액으로는 1등이었다(2조3993억원). 1·2위를 성북동과 한남동의 강북 동네가 차지한 데 이어 그 뒤로는 강남 동네가 줄을 잇고 있다. 한남동과 강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압구정동이 3위를 차지했다. 북쪽으로는 아파트촌, 남쪽으로는 고급 주택가가 형성돼 있는 이곳은 보유주식 시가총액이 4011억원이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방배동, 강남구 청담동·논현동, 서초구 반포동이 4~8위를 기록했다. 9위와 10위는 다시 강북이 차지했다. 한남동과 맞닿아 있는 용산구 이태원동이 9위, 종로구 평창동이 10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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