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위기에 놓인 여의도 성모병원 진폐 병동… 죽음으로 내몰리는 환자들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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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10월7일 서울 여의도 가톨릭의대부속 성모병원 7층. 719호 병실은 병상마다 내걸린 산소호흡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듯 쉴 새 없이 작동되고 있었다. 이 병실에 누워 있는 입원 환자는 8명. 숨이 턱까지 차오른 중증 진폐환자들로, 산소호흡기만 떼면 금방이라도 세상을 뜰 것 같다.
전국에 6만명 산재환자
“숨쉬기조차 어려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어….” 장해등급 2급인 염규천(70)씨는 지난 1987년까지 20년 동안 탄광 노동자로 일했던 진폐 재해자다. 탄광을 떠난 뒤 늙어가면서 각혈이 심해졌지만 단순히 결핵인 줄 알고 결핵약만 타먹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2000년에야 진폐증으로 판명돼 그때부터 산재요양을 받고 있다. 성모병원에는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는데, 호흡곤란이 심해지면 입원하고 치료받아 조금 나아지면 집으로 돌아가 약만 타먹고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입원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누우면 가슴 통증이 심해지는 탓에 베개를 안고 우두커니 병상에 앉아 뜬눈으로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다. “옆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을 여러 번 봤지. 이 병원이 없어지면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지….” 투병으로 얼룩진 노년을 살고 있는 그가 눈물을 글썽였다.
옆 병상에 누워 있는 방창국(67)씨 역시 코 밑에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진폐환자다. 호흡기와 영양제 주사에 의탁하고 있는 그도 탄광이 줄줄이 문 닫던 지난 80년대 후반까지 23년간 광부로 일한 늙은 탄광 노동자였다. “안산 중앙병원이나 지방의 다른 산재병원에도 있어 봤지. 하지만 여기에 비하면 다른 곳은 단순히 요양하는 정도뿐이야. 거기서는 진폐환자들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그래….” 방씨가 연방 기침을 내뱉으며 힘겹게 말했다. “여기가 문 닫고 진폐환자를 내보내면 나는 단박에 죽을 거야.” 방씨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염씨와 방씨가 불안에 떨고 있듯 최근 성모병원 진폐환자들 사이에는 진폐 병동이 곧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진폐 병동 운영에 따른 경영적자가 계속 늘어나자 병원쪽이 결국 진폐 병동을 폐쇄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7층 진폐 병동은 병실 두개 가운데 최근 옆 병실(718호)이 문을 닫고 이제 719호 하나만 달랑 남았다. 성모병원에서 입·퇴원 치료를 받거나 한달에 한두번씩 외래 진단을 받고 약을 타먹고 있는 중증 진폐환자는 400여명에 이른다. 불치병이라는 진폐에 걸린 뒤 짧게는 몇달째, 길게는 수십년째 성모병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진폐는 주로 탄가루와 돌가루 등 광물성 분진이 몸속에 오랫동안 겹겹이 쌓여 폐에 구멍이 뚫리는 산업재해로, 심한 호흡곤란·기침·가슴통증에 시달리고 피가 섞인 가래가 끓는 증상을 보인다. 지난 85년 진폐법이 제정된 이후 최근까지 8천여명의 환자가 죽었으며 전국 29개 진폐요양기관에 입원 요양 중인 진폐환자는 약 3천명에 이른다. 진폐재해자협회에 따르면, 입원치료 중인 환자와 8가지 합병증(활동성폐결핵, 흉막염, 기관지염, 폐기종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산재요양조차 못 받고 집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재가(在家) 진폐 재해자를 합쳐 전국에 6만여명의 진폐환자가 있다.
29개 진폐요양기관 중 하나인 성모병원 진폐 병동이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진폐환자들은 진폐 병동을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급히 구성했다.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중증 진폐환자 이응석(57)씨는 “진폐요양기관 중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여기 성모병원뿐”이라며 “성모병원 진폐 병동이 왜 필요한지는 내가 산증인이다. 여기에는 ‘종결’(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란 말이 없다. 내가 이만큼 숨쉬고 살고 있지 않은가? 성모병원은 진폐 재해자들의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가슴을 움켜쥔 채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었다. 이씨는 10여년간 압력솥 알루미늄 코팅 일을 하다가 청년 시절에 일찍 진폐가 발병해 무려 19년 동안 성모병원에서 기나긴 투병을 하고 있다.
진폐 치료 노하우를 가진 유일한 병동
성모병원은 이미 지난 2002년부터 “진폐센터 유지에 따른 막대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며 “정부의 재정·인력 지원이 없는 한 진폐 병동을 축소 또는 폐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성모병원쪽은 “진폐센터 존폐와 관련해 병원의 공식 방침이 정해진 건 아니다”며 “그러나 지금 상태로 가면 한해 9억원에 이르는 진폐 병동 적자를 감당할 수 없고, 따라서 더 이상 진폐 입원환자를 늘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진폐 병동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계속 적자를 내는 이유는 병실 회전율이 낮기 때문이다. 진폐환자들이 대부분 장기 입원환자인데다 수술 등 별다른 치료 없이 주로 약만 타먹기 때문에 ‘돈이 안 되는’ 환자들이라는 것인데, 적용되는 산재의료수가도 MRI·초음파·식대의 경우 건강보험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된다.
진폐환자들은 성모병원 진폐 병동을 왜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것일까? 성모병원 진폐센터는 29개 진폐요양기관 가운데 단 하나뿐인 3차 대학병원으로 국내에서 중증 진폐환자들을 치료·연구할 시설과 인력을 갖춘 유일한 의료기관으로 꼽힌다. 성모병원은 1965년 국내 최초로 윤임중 교수(현 경북 문경제일병원장)가 직업병 클리닉을 개설해 진폐증 진단·치료에 관한 업무를 시작했고, 98년부터는 임영 교수(현 산업의학과장)가 진폐 진료 업무를 보고 있다. 임영 교수는 윤 원장과 함께 국내 최고의 진폐 전문가로 꼽힌다. 성모병원 진폐 병동은 과거에 진폐 병실이 35개(병상 200여개)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병실을 점차 줄여 이제는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수십년간 축적된 진폐 진단·치료 노하우를 갖고 있는 병원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진폐증 판정에 대한 소견을 임영 교수한테 물을 정도로 진폐 진단·치료에 관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런저런 병원을 다 돌아다니다 지친 진폐환자들이 코에 산소호흡기를 낀 채 앰뷸런스 타고 마지막 희망을 갖고 찾아오는 곳이 성모병원 진폐 병동이기도 하다. “다 죽어가는 진폐환자도 성모병원으로 가면 살아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성모병원쪽은 “다른 대형 병원들이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외면하고 있지만 성모병원만이 수십년간 진폐 치료·연구를 계속 해왔다”며 “이만큼 해온 것으로도 충분히 가톨릭병원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노동부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진폐 병동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는데 아무런 답변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예산 지원해줄 법적 근거 없다”
이에 대해 노동부 임인주 산재보험과장은 “성모병원이 진폐환자 치료 때문에 적자를 보고 있지만 특정 ‘민간 병원’에 예산을 지원해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연구비 또는 용역 과제를 주는 형태로 성모병원 진폐 병동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고려해봤지만 지원 액수가 미미해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산재의료원인 안산 중앙병원에 진폐 병동 신축공사를 하고 있는데, 성모병원 진폐 병동이 폐쇄되면 환자들이 그쪽이나 서울 근교의 다른 병동으로 옮기도록 조처해주겠다”며 “진폐에 관한 임영 교수의 권위와 성모병원의 전통은 인정하지만 산업의학과 교수뿐만 아니라 호흡기·방사선·내과 전문의 등도 진폐환자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폐환자들은 “수백억원을 들여 안산 중앙병원을 증축하더라도 진폐 전문 의료진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며 정부가 안산 중앙병원만을 내세운 채 성모병원 진폐 병동 폐쇄 위기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성모병원 말고 다른 진폐요양기관은 병동에 환자를 수백명씩 집어넣고 별다른 치료도 없이 소리 없이 죽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응석씨는 “노동부는 성모병원 진폐환자들이 떠들다 지칠 것이라거나 저러다 문 닫으면 알아서 다른 진폐요양기관으로 뿔뿔이 흘어질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폐환자들이 빨리 죽어야 진폐증이 끝난다. 죽으면 보상해주면 된다”는 식으로 정부가 진폐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진폐 병동 존폐와 관련해 임영 교수는 “나로서는 지금 할 얘기가 없다.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진폐환자들은 숨쉬기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길거리로 나서기로 했다. 이응석씨는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집회를 열어 진폐 병동 유지를 위한 정부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는 “진폐환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당장 내일 죽어도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고 죽은 것이다. 우리는 이 병원에서 치료받다 죽고 싶다”고 말했다. 시커먼 탄가루로 뒤범벅된 염씨의 뚫린 가슴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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