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가 담뱃값 인상 철회 시위 벌인 내막…“국민건강증진기금의 일부를 문인에게”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11월19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는 이색적인 시위가 펼쳐졌다. “담뱃값 대폭 인상, 밀수를 부추겨 국가경제 좀먹는다!” “3만 담배 재배 농가, 17만 담배 판매인의 생계 교란, 서민경제 붕괴한다!” “1200만 담배 소비자는 절규한다. 담뱃값 인상을 철회하라!” “기금 확대 위한 담뱃값 인상, 흡연자들 주머니 터는 소매치기 정책!”
원고료가 담뱃값도 안되는 현실…
담배 생산 농가에서 서울로 시위를 왔는가 싶지만 정작 구호를 목소리 높여 외쳐댄 이들은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원들. 이들은 “경기 침체로 생업인 원고 집필이 점점 어려워지는데, 창작의 유일한 벗인 담뱃값을 올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정부는 담뱃값 인상 계획을 당장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위해 거리에 나서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소설가나 시인들은 작품을 발표하거나 평단에서 발언하는 등 고유한 직업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소신을 표현하는 것 외에도 성명을 내거나 시위를 벌여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이전에 한국문인협회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대해서 비난 성명을 낸 바 있다. 상황이 급박할 때에는 작가들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기도 하는데, 가령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이라크로 소설가 오수연씨를 파견했던 것도 그 사례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며 ‘애연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문인이라니? 이들의 시위는 말 그대로 담뱃값 인상 저지를 목표로 한 것인가? 아니면 담뱃값을 기화로 ‘다른 무언가’를 겨눈 퍼포먼스인가?
문인협회 소설분과 백시종 회장은 “문인들도 글쓰기뿐 아니라 현재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우리들이 짚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라고 운을 뗐다.
문인협회가 주장하는 정부의 오류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정쟁에 골몰하느라 그렇잖아도 어려운 서민들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도록 경제난을 가중했다는 것과 △담뱃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발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경제난에 대한 비판을 들어보자. “문인들이 겉보기엔 지적인 활동을 하고 품위 있게 사는 듯하지만 몇몇 유명 작가를 제외하고는 서민일 뿐이다. 작가들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다 보니 작가들이 직접 제작비를 부담하면서 책을 내야 할 지경이다. 경제가 좋아지고 책이 좀 팔려야 작가들도 원고료로 먹고살지 않겠나.”
백 회장은 계간 창간호를 맞아 소설분과 회원 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 조사에서 1년에 원고료로 1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이들은 10%밖에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문인협회가 담뱃값 인상을 비난한 첫 번째 이유는 “원고료가 담뱃값도 안 되는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다.
또 문인협회는 담뱃값을 올려 금연을 유도하는 정책의 부당함을 비난하고 있다. “담뱃값을 올리면 일시적으로 흡연자가 줄어들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요요현상에 불과하다. 만약 담배가 그처럼 해로운 것이라면 왜 술과 도박, 사고율이 높은 교통수단에 대해서도 똑같은 부담금을 매기지 않는가.”
“결국 책이 안 팔릴 것이다”
정부는 10월1일 당정협의를 통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 법률안에서 담배부담금 1천원 인상안(올해 500원, 내년 500원 인상)을 정기국회에서 통합 처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담뱃값 추가 인상분은 건강보험과 공공보건 의료 인프라 구축에 쓴다는 계획이다. 백 회장은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자가 줄어들 거라고 하면서 추가로 거둔 돈을 국민 건강을 위해 쓴다는 계획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며 “흡연자들이 낸 돈은 폐암환자 등 담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지 왜 국민 전체의 건강을 위해 써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문인협회는 왜 유달리 담뱃값 인상에 발끈하는 것일까, 담뱃값은 문인들과 어떤 이해관계가 있기에?
백 회장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이랬다. “담뱃값 부담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생계비 중 가장 탄력이 큰 문화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결국 책이 그만큼 안 팔릴 것이다.” 이와 함께 백 회장은 “담뱃값 인상이 문화비 지출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제시해 혹 담뱃값이 오른다면 생계가 더욱 어려워질 문인들을 위해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일부를 쓰도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문인들을 위한 지원책으로는 2004년을 기준해 개인창작 지원금·행사 지원·문예단체 기관지 지원 등 18억원의 문예진흥기금과 문화부의 문예지 구입비 등 20억원의 예산이 있다. 내년부터는 로또기금에서 우수작품지원사업(49억원)이 추가로 지원된다. 그래도 과연 문인들은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백 회장은 “결국엔 유명 작가들만 계속 지원을 받게 된다”며 “문단에 등단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기본급’을 받을 수 있도록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의 담배값 인상안 규탄 시위는 생계난을 토로하는 ‘생활인’의 퍼포먼스로 보인다. 이왕 이들이 자신을 ‘서민’이자 ‘생활인’으로 규정한다면, 이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를 잠시 접고 어려운 경제를 이해하는 보편적 시각으로 서민들의 아우성을 경청할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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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들이 담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습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음악이 없으면 글을 못 쓰는 것처럼, 글쓸 때 늘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담배 없이는 창작이 안 되도록 굳어진 것이다.”(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대학원 교수)
게다가 대부분의 소설가·시인들은 금연이 일상화돼 있는 사무실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애써 금연 습관을 들일 필요가 없다. 사회의 전반적인 금연 분위기 속에서도 문인들이 상대적으로 흡연 비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한국문인협회에 따르면 소설분과 회원 중 25%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인협회가 담뱃값 인상 반대 성명을 통해 담배를 사실상 옹호하는 발언을 하자 한국금연운동협의회도 질세라 ‘맞불’ 성명을 냈다. ‘소설가들을 위한 권고문’. ‘담배는 창작의 유일한 벗’이라는 소설가들의 주장에 반해, 담배가 창작에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을 조목조목 짚은 것이다. △글쓰는 사람은 눈을 많이 쓰는데 담배는 녹내장이나 노인성황반변성을 일으켜 시력을 현저하게 저하시키고 △글쓰는 사람은 장시간 앉아 있어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원활치 않은데 담배까지 피운다면 동맥경화증을 악화시키고 순환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아지고 △글쓰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담배는 스트레스를 더욱 심하게 하고 △글쓰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하는데 흡연자는 40대 이후부터 기억력 소실 속도가 현저히 빨라지고 △글쓰는 사람은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데 담배 속에 들어 있는 일산화탄소 때문에 정신집중이 잘 안 되고 △담배를 피우는 작가가 쓴 글은 담배를 미화하거나 흡연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는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기보다 본인과 가족 건강을 위해 금연운동에 동참하길 권고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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