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쓰레기를 태우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태우고 나면 그뿐인 소각장의 쓰레기 끌어당기는 ‘진공청소기 효과’
쓰레기 발생 줄이기, 플라스틱 연료화하는 ‘전처리시설’ 등 대안 고민해야
등록 2023-02-04 19:12 수정 2023-02-09 09:20
2023년 1월26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전처리시설에서 선별된 폐비닐. 재활용이 가능하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3년 1월26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전처리시설에서 선별된 폐비닐. 재활용이 가능하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반드시 필요한 소각장이 건설돼야 하는 건 옳은 일 아닙니까? 저희 공무원들이 하는, 기피시설을 만드는 것도 상위 개념으로 보면 너무 옳은 부분입니다.”

한 주민이 “(인근 주민이) 지금까지 750t(하루 소각처리 양)으로 고생해왔으면 (소각장이) 없는 곳에 짓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묻자, 정규환 서울시자원회수시설 건립1팀 장이 이렇게 답했다. 2023년 2월1일 경기도 고양시 한국항공대에서 열린 서울시의 새 광역 자원회수시설 주민 설명회 자리에서였다. 쓰레기를 파묻지 않고 태워버리는 소각장을 새로 짓는 게 과연 ‘너무 옳은’ 선택일까.

‘소각장이 재활용을 억제’한다

이소라 한국환경연구원 연구 위원은 “서울시 등에서 소각장 확충을 너무 당연하게 이야기하면서 2030년 직매립 금지를 대비하는 비수도권 지자체들도 (쓰레기 총량을 줄이려는 다양한 노력을 하기보다) 소각장 설치로만 대응하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유럽·일본 등에서는 소각장을 무분별하게 확충한 것이 재활용을 억제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럽에선 소각장 용량이 너무 충분하게 되면 수십 년간 소각시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어렵게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폐기물 소각이 활용 가능한 부분을 선별하지 않게 되는, 소각장이 쓰레기를 끌어당기는 이른바 ‘진공청소기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지역 간 불평등이라는 문제도 있다. 2018년 기준 수도권에서 만들어진 쓰레기의 12.4%인 833만t이 수도권 밖에서, 이 가운데 61.7%(514만t)가 충청권에서 처리됐다.(한국환경연구원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자원순환 성능 및 처리기반 적정성 평가 연구’ 보고서, 2018년 기준) 이소라 연구위원은 “쓰레기 처리의 주체는 지자체장인데 지역에 처리 시설을 만들면 정치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 돈을 주고 외부로 보내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흐름도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엄청난 폐기물이 배출지(해당 지역) 밖에서 흘러다니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폐기물은 그 지역이 부담하는 ‘배출자 처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내 쓰레기는 내 구에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상암동 소각장 문제를 ‘마포구민 대 나머지 서울시민’의 싸움으로 몰아가지 말고, 서울시 쓰레기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규모 소각장이 있는 서울 은평구(하루 48t) 등 5곳을 제외한 나머지 서울 20개 구청은 자신이 발생시킨 쓰레기에 대해 어떤 희생을 치를지 이야기해야 한다. 종량제봉투 속 재활용품을 한 번 더 걸러내는 전처리시설을 구축하거나 종량제봉투 가격을 현실화하는 등 고통 분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 지역 종량제봉투 가격은 20ℓ 기준 490원이다. 이는 쓰레기 처리 원가(수집· 운반·처리비)의 48%에 불과하다.

현행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면 상당량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국내 민간소각장 하루 처리능력은 8589t이지만 이용률은 86%로 ‘쓰레기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환경공학과)는 “비닐류 등 가연성에 대한 분리배출을 강화하면 열량이 떨어져 기존 소각장 처리량이 늘어난다. 아더(OTHER)류 플라스틱 등 재활용이 안 되는 복합소재 플라스틱류를 시멘트공장 등에 보내 연료화하는 비율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업장폐기물 가운데 일부 종량제봉투에 담겨 처리되는 폐기물을 엄격하게 단속해 민간소각장에서 원칙대로만 처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민간소각장은 쓰레기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종합적인 접근을 하면 소각장 하나 안 지어도 될 정도로 상당량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1천만이 100g 줄이면 1천t

더 근본적으로는 쓰레기를 많이 발생시키는 생산·소비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정임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폐기물을 잘 순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레기 발생의) 핵심인 기업이 생산할 때 폐기물이 적게 나오도록 산업구조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 단번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기업이 지속가능한 생산을 하는 지 모니터링하고, 시민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가정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전체 쓰레기(1억9546t)의 8.9%(1730t)만 차지하고 나머지는 공장과 건설 현장 등에서 발생한다. 2015~2020년 생활폐기물은 20.5% 늘었지만 사업장 폐기물은 42.7% 증가했다. 박정음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도 “서울시가 소각장을 새로 지어 처리하려는 ‘쓰레기 하루 1천t’은 1천만 시민이 100g씩 만 줄이면 해결되는 양이다. 기존의 소비·생산을 지속가능한 대안 소비와 대안 생산으로 바꾸지 않고 쓰레기 문제를 소각장 하나 짓는 것만으로 해결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런 대안 마련에 지방자치단체 등 쓰레기 처리 주체는 소극적이다. 대신 쓰레기 처리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낡은 방식’에는 적극적이다. 서울시도 마포구에 선물 보따리 공세를 펼칠 예정이다. 새 광역 소각장을 짓는 대가로 수영장·실내체육시설 등 1천억원 규모의 주민편익시설 설치를 약속했다. 또 서울 대관람차(서울아이)의 입지 후보로 상암동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2023년 1월26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전처리시설에서 선별된 폐비닐. 재활용이 가능하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3년 1월26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전처리시설에서 선별된 폐비닐. 재활용이 가능하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05년 “전 자치구에 소각장 지을 것”이라던 공무원

“서울시를 믿을 수 없어요. ‘750t 소각장’을 2035년에 폐쇄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모이면 ‘시장 바뀌고 공무원 자리 이동하면 언제 약속했냐고 나올 거’라고들 해요. 2005년 기존 소각장 지을 때 서울시 공무원들이 ‘마포를 시작으로 전 자치구에 소각장 지을 것’이라고 했지만 마포가 마지막이었고, 오히려 여기에 하나를 더 짓겠다는 겁니다. 지금 안 막으면 또 아예 서울시 전체 쓰레기를 몽땅 태우자 할 거라고 걱정하는 분도 많습니다. 우리는 대관람차 그런 거 원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공원 산책하면서 편안하게 살고 싶은 거예요. 서울시는 지원 이런 거 말고 ‘너희만 희생하면 모든 사람이 편하다’는 식으로 우리를 님비로 몰고 나쁜 사람 만드는 일만 좀 그만했으면 합니다.”(상암동 주민 윤정희씨)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