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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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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BTS의 버터비치를 녹이나

BTS 앨범 《버터》 표지사진 찍은 삼척 맹방해변의 에너지 수난사…
원전 막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 세계 흐름과 ‘거꾸로’ 윤석열 정부 때 원전 신설될라
등록 2022-07-25 16:43 수정 2022-08-04 13:39
맹방해변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앨범 《버터》의 표지사진을 찍은 곳이어서 ‘버터비치’라고도 불린다. 마리아나 파시롤리(오른쪽 셋째)를 비롯해 버터비치를 찾은 기후 관련 청년단체 회원들이 ‘버터비치 녹이는 삼척석탄 멈춰!’ 등의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앨범 《버터》의 표지사진을 패러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맹방해변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앨범 《버터》의 표지사진을 찍은 곳이어서 ‘버터비치’라고도 불린다. 마리아나 파시롤리(오른쪽 셋째)를 비롯해 버터비치를 찾은 기후 관련 청년단체 회원들이 ‘버터비치 녹이는 삼척석탄 멈춰!’ 등의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앨범 《버터》의 표지사진을 패러디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는 복잡하지만 더 지속 가능한 길이 있을 겁니다. 단기적으론 석탄이 경제적이어도 장기적으로 사회가 감당 가능하고 적절한 에너지 생산 방법이 있습니다. 사회에 더 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2022년 7월18일 강원도 삼척시 맹방해변. 브라질에서 한국까지 1만7천㎞를 날아온 마리아나 파시롤리가 ‘버터비치 녹이는 삼척석탄 멈춰!’라고 우리말로 쓰인 손팻말을 들고 말했다. 맹방해변은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앨범 《버터》의 표지사진을 찍은 곳이어서 ‘버터비치’라고도 불린다. 4조9천억원을 들여 근처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새로 지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브라질 변호사인 파시롤리는 BTS 팬클럽 브라질 아미(ARMY)의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인 ‘아미 헬프 더 플래닛’(Army Help The Planet)의 책임자다. 이 프로젝트는 2019년 아마존 열대우림 4만1천㎢가 불탄 4만 건의 화재를 계기로 시작됐다. 브라질 아미들은 트위터로 열대우림이 불탄 문제를 알리고 모금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코로나19 진료를 맡은 병원에 의료물자를 지원하거나 청소년 유권자의 유권자 등록 장려 캠페인도 벌였다(브라질은 18살 이상은 투표가 의무지만 16~17살은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석탄발전소 지으면서 탄소중립?”

‘아미’들은 환경문제에도 유난히 관심이 많다. 파시롤리는 ‘아미 헬프 더 플래닛’의 동료인 엘리오자 부에누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BTS 관련 국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국에 온 김에 일부러 짬을 내어 맹방해변까지 달려왔다. 기후변화청년단체GEYK, 청년기후긴급행동,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에너지전환포럼, 기후솔루션 등 한국의 기후 관련 청년단체 회원들도 함께했다.

맹방해변 바로 북쪽으로 포스코의 자회사인 삼척블루파워가 2019년부터 짓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공사 현장이 있다. 발전소 자체는 내륙 쪽으로 들어가 있고, 해변에 석탄을 들여올 항만이 지어진다. 이 공사로 맹방해변의 모래가 쓸려나가는 침식 문제가 제기돼왔다.

파시롤리 일행에 앞서도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등에 참여하는, 환경문제에 관심 많은 BTS 팬들이 그간 맹방해변을 꾸준히 찾았다. 이날 맹방해변에서 청년들과 만난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 성원기 공동대표(강원대 명예교수)는 “해변을 지키려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막아야 하고 이는 기후위기를 막는 아주 큰 일과 닿아 있다. 한국이 석탄발전소를 계속 지으면서 탄소중립을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성 대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기 전인 2019년까지 삼척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을 했다. 삼척에선 1982년 근덕면 덕산리 일대가, 또 2012년 근덕면 부남·동남리 일대가 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가 각각 1998년, 2019년 지정 고시가 해제됐다. 마을 이장들의 집단사표와 총궐기, 주민들의 찬반투표 등 반대 투쟁으로 원전은 겨우 막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는 막지 못했다. 삼표시멘트의 옛 석회석 광산 자리에 들어서는 석탄화력발전소는 2023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원전 건설의 불씨도 아직 남아 있다. 친원전 행보를 보여온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더 필요하다면 집권 후 추가 검토를 통해 에너지 기본계획을 바꿔야 한다”며 원전 신설 가능성을 열어뒀다.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2022년 3월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경북 영덕군과 강원도 삼척시에 이미 백지화된 천지·대진 원전 건설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승인돼(2013년) 문재인 정부가 방치한 석탄발전소가 지어지고 나면, 삼척시민 6만여 명은 다시 윤석열 정부의 친원전 정책으로 들썩이게 될지 모른다.

4조9천억원을 들여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삼척시 맹방해변 모습. 발전소 자체는 내륙 쪽으로 들어가 있고 해변에 석탄을 들여올 항만이 지어진다.

4조9천억원을 들여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삼척시 맹방해변 모습. 발전소 자체는 내륙 쪽으로 들어가 있고 해변에 석탄을 들여올 항만이 지어진다.

말하지 않는 ‘택소노미’의 전제 조건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한마디로 ‘원전산업 부흥’에 방점이 찍혀 있다. 2022년 7월5일 발표한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보면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30%(2021년 기준 27.4%)로 확대하는 것이 뼈대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조만간 운영 허가가 만료되는 10기의 원전을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7월12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업무보고 뒤 “원전 생태계를 조속히 복원하고 일감을 조기에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애초 2025년으로 알려졌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시점도 2024년으로 1년 앞당겼다. 한국식 녹색분류체계인 이른바 ‘케이(K)택소노미(Taxonomy)’에도 원전을 포함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말 만든 녹색분류체계에 천연가스가 포함됐지만 원전은 빠졌기 때문이다.

녹색분류체계는 어떤 기술이나 사업이 온실가스 감축 등의 환경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기술 기준을 말한다. 민간과 공공의 자금이 관련 기술이나 사업으로 유입되게 하면서 ‘그린워싱’으로 불리는 녹색 위장행위 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는 유럽연합과 한국만 이런 체계를 갖췄다.

국내 원전산업계의 주된 관심은 유럽연합이 원전을 이 분류체계에 넣느냐였다. 2022년 7월6일(현지시각) 유럽의회가 천연가스와 원전을 분류체계에 포함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하자 원전산업계에 친화적인 국내 보수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우리나라 택소노미에도 원전 포함이 확실시된다. 원전을 포함할 당위성이 더 커지게 됐다.’(<조선일보> 7월7일치)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을 이용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다.’(<중앙일보> 7월7일치) 유럽연합이 원전을 녹색기술로 분류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들 기사에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유럽연합이 원전을 분류체계에 포함하면서 전제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이 전제 조건은 △사고저항성 연료를 써야 하고 △최신 기술 기준을 적용해야 하며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모두 당분간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 유럽연합이 2022년 1월 이런 조건을 전제한 초안을 발표했을 때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강력하게 철회를 요구했다.

조건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원자력산업협회의 반응이 이해된다. 원전 사고가 발생해도 오랜 시간 녹아내리지 않는 사고저항성 연료의 경우 미국 에너지부(DOE)가 2025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실험 단계다. 참여 중인 사업자들이 목표 달성에 난색을 표하는 등 현재로선 상용화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재생에너지가 싸지면 원전은 자연도태된다

최신 기술 기준은 미국 9·11 테러 이후 전세계 원전에 항공기 충돌에 대비한 새 안전 규제가 적용된 것처럼 갈수록 늘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규제가 한층 강화됐다. 최근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점령 과정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군사공격에 대비한 규제가 새로 도입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는 만성적인 원전 건설 공기 지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에너지전환포럼이 정리한 유럽원자력기구 자료를 보면,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 프랑스 플라망빌 3호기 등 최근 준공됐거나 건설 중인 유럽 원전들은 건설 공기가 애초 5년에서 9~16년으로 늘고, 비용도 애초 계획보다 최대 4배까지 늘었다.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조건 역시 전세계적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을 마련해 운영 중인 사례가 아직 없다. 핀란드가 40년이 걸려 부지를 확보해 방폐장을 건설 중이고, 스웨덴이 50년 만에 겨우 부지를 확보했을 뿐이다. 유럽연합의 지속가능 분류체계에서 녹색기술로 인정받으려면 국내 원전이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지만,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

분류체계 포함 여부와 관계없이 원전은 자연도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간이 갈수록 원전으로 만든 전기는 안전 규제 등의 영향으로 비싸지지만,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기는 규모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 따라 크게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서로 다른 발전원의 발전단가를 비교하기 위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보면, 태양광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비용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자원경제학회 분석을 보면, 2030년 태양광의 균등화발전비용은 ㎾h당 56.03원(3㎾ 기준)이지만, 원전(한국 주력인 APR1400)은 74.07원, 석탄화력은 134.69원이었다. 불과 8년 뒤면, 태양광 전기가 원전과 석탄보다 더 싸진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대놓고 무시

저렴하고 안전하면서 온실가스가 없는 발전 방식이 있는데 왜 굳이 원전 같은 위험한 방법을 택하겠는가. 세계적인 흐름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굳어져가는 분위기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자료를 보면, 세계적으로 투자되는 신규 발전 설비의 대부분(2021년 81%)이 재생에너지이며, 재생에너지 설비 가운데 88%가 태양광과 풍력이다. 원전을 보유했거나 새로 추진하는 국가들조차 재생에너지 확대에 노력한다. 재생에너지가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영국 40%, 프랑스 26%, 일본 22%, 미국 21% 등이다. 원전 보유국 가운데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이 10%에도 못 미치는 나라는 한국(2021년 기준 6.7%)이 유일하다. 유럽은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가 무려 69%에 이른다(리파워 EU).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나 홀로’ 친원전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환경부는 2022년 7월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이 부여한 안전기준을 토대로 국내 실정에 맞게 적용할 방침”이라고 환경부는 설명하지만, 이대로면 유럽연합의 까다로운 조건을 삭제하거나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현재 국내의 대표적 신규원전인 에이피아르(APR)1400은 유럽의 관련 규정이 제시하는 항공기 충돌 대책(안전 기준)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유럽 수준의 조건이 없는 한국의 분류체계는 국제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국내 홍보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은 원전을 중심으로만 돌아간다. 전체 에너지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확대하지만, 석탄·가스 등 화석연료는 줄이지 않고 재생에너지도 늘리지 않는다.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한다는 기존 재생에너지 계획은 “목표의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생에너지원별로 적정 비중을 도출하겠다”고 밝혔는데, 사실상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금지하고 노후 석탄발전소는 폐지·전환하겠다는 이전 정부 시절 계획도 “합리적 감축 유도”로 바뀌었다.

삼척에 새로 지어지는 석탄화력발전소는 계획대로 2023년 말 완공되면, 수명 연한인 향후 30년 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된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대놓고 무시하는 셈이다.

7월18일로 160일째 매일 석탄화력발전소를 반대하는 삼척 시내 순례를 하는 성원기 공동대표는 “핵발전소 2개 용량인 삼척 석탄발전소가 지어지면 하루에 1만7천t의 석탄을 태우게 된다(연간 1282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2021년 국가 전체 배출량의 1.9%). 정부가 말하는 탄소중립이 허구라는 게 여기 삼척에선 한눈에 확인된다”고 말했다.

삼척=글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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