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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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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섬주섬해적단, 빼앗긴 미래를 훔쳐올래요!

무단점거, 쓰레기 수거, 귀신 쫓기 그리고 ‘우실 꿈꾸기’… 신안 안좌도 ‘청년마을’ 핵심 5인방이 들려주는 모험담
등록 2021-12-13 11:27 수정 2021-12-14 02:31
앵무새에게 인기 많은 이찬슬 ‘주섬주섬 마을’ 대표. 2021년 11월23일 전남 신안군 팔금면 안좌중학교 팔금분교(우실동물숲) 2층 복도에서 찍었다.

앵무새에게 인기 많은 이찬슬 ‘주섬주섬 마을’ 대표. 2021년 11월23일 전남 신안군 팔금면 안좌중학교 팔금분교(우실동물숲) 2층 복도에서 찍었다.

도시 청년들이 외딴섬으로 들어갔다. 획일화된 인구이동과 경쟁에 반기를 들었다. 청년들은 아직도 극한의 오지에서 생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역균형발전과 청년 담론이 유행이지만 이들은 구호와 수사를 믿지 않는다. 차라리 제 몸으로 버텨 어떤 상징을 만들어보려 한다. 소멸할지도 모르는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려고 소멸 위기의 땅을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그들의 분투에서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보았다. 2021년 11월22~24일 전남 신안군 안좌도와 팔금도에서 ‘청년마을 만들기’를 이끌고 있는 20대 청년 5명과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_편집자

전남 신안 안좌도에 ‘청년 해적단’이 나타났다. 안좌도는 전남 목포에서 다리 4개를 건너 들어간다. 압해도, 암태도, 팔금도를 지난다. 차로 목포에서만 1시간 넘게 걸린다. 2019년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7.22㎞)가 개통하기 전엔 배를 타야 했다. 바다 한가운데 섬마을에 살던 청년들은 점점 육지로 빠져나갔다. 거기 청년 해적단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1년 5월부터 현재까지 밀물과 썰물처럼 해적단도 들고 나기를 반복했다. 5명이 남았다. 이찬슬(25), 송승호(27), 박현정(23), 이수지(25), 윤재천(22).

2021년 11월22일 신안 팔금도 안좌중학교 팔금분교에서 해적단 단장 이찬슬을 만났다. 해적단은 신안 안좌도에서 행정안전부 지원사업 ‘청년마을 만들기’를 이끈 청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이찬슬은 “해군은 연금을 받지만 해적은 모험담을 판다”며 그간의 일을 쉼 없이 늘어놨다.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집을 무작정 청소해주고 창고를 무상임대 받은 일, ‘귀신 나온다’는 소문이 온데만데 자자한 3층짜리 신안군청 관사를 월 8만원에 임대받은 일, 오래 방치된 폐교를 무단 점거한 일 등. 그러다가 슬쩍 포부도 내비쳤다. “도시에서 갈증을 느끼며 현실의 룰을 거부하는 더 많은 청년을 모으고 있다.”

사람은 싫지만 말은 하고 싶었던 ‘앵무새 소년’

지금이야 뭐든 두려울 것 없어 보이지만 이찬슬은 암흑 같은 유년기를 보냈다. 목포에서 엄마랑 둘이 살았는데 집안 형편도, 학교생활도 어려웠다. 10살 때부터 소아우울증에 시달렸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엄마에게 말했다. “저 학교 그만두고 싶어요.” 학교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결국 14살에 중학교를 자퇴했다. 그 무렵 다른 동네로 이사해 자연스레 외톨이가 됐다. 장발에 학교 안 다니는 14살을 보는 시선은 늘 그랬다. ‘불량 청소년이네.’ 보다 못한 엄마가 물었다. “동물이라도 기르는 게 어떠니?” “엄마, 저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람은 싫어요.”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동물, 앵무새를 입양했다. 전세계 300여 종 앵무새 중 하필이면 언어능력이 안 좋은 코뉴어종 앵무새였다. 다만 행동학습 능력은 우수한 종이었다. 온종일 앵무새만 바라봤다. 앵무새의 행동을 읽고 싶었다. 동물행동학 공부에 몰두했다. 외국 논문과 책을 뒤졌다. 매일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앵무새에 관한 글과 영상을 올렸다. 점점 ‘앵무새 소년’으로 알려졌다.

또래들이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이찬슬은 앵무새 사업을 했다. 2014년 앵무새 트레이닝 센터를 열었다. 앵무새 교육기구, 사료 판매에서 분양사업으로까지 넓혔다. 아기 새를 훈련해 마술사한테 팔면 수백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날따라 분양 보낼 앵무새가 옷자락을 잡고 안 놔줬다. 앵무새가 케이지(우리)를 빠져나와 차창 밖을 계속 쳐다봤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구나.” 분양사업을 중단했다.

단지 또래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대학에 갔다. 2015년 목포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 미술학과로 전과했다. 멸종위기 동물, 소멸위기 제주 방언 등을 주제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전시회를 열었다. 그런 활동이 알려지면서 2015~2016년 대한민국 인재상과 동물보호대상을 받았다. 2016년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소멸, 멸종하는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자’를 사회적 임무로 내건 문화콘텐츠 업체였다. 이름은 ‘스픽스’라고 지었다. 근래 야생에서 멸종한 앵무새(스픽스유리금강앵무)에서 이름을 땄다.

대학 친구의 고향이 신안 안좌도였다. 2019년부터 압해도, 안좌도, 자은도에서 ‘앵프터스쿨’을 열었다. 섬마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물 교감 수업이었다. 2020년 말 친구가 울면서 전화했다. 안좌도에 사는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중환자실로 실려갔다고 했다. 목포에서 생활한 친구는 섬에 사는 어머니의 열악한 상황을 잘 몰랐다는 걸 자책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청년들이 살기 좋은 섬마을을 만들어보자.”

2021년 2월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응모했다. ‘지방 소멸’ 방지를 목표로 전국 12개 지역 청년마을에 사업비 5억원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찬슬은 바다 한가운데 안좌도에 청년마을을 만들겠다고 지원했다. “제로의 땅에 들어가 점 하나를 찍자, 극한의 오지에 가서 생존하자”고 마음먹었다. 2021년 5월 안좌도·팔금도 ‘주섬주섬 마을’ 만들기가 시작됐다. 활동 기간은 단 7개월뿐이었다.

복합문화공간 ‘우실동물숲’(안좌중 팔금분교)에 책방을 만든 박현정씨.

복합문화공간 ‘우실동물숲’(안좌중 팔금분교)에 책방을 만든 박현정씨.

전술1. 할머니의 집을 청소하라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찬슬은 애초에 그럴싸한 건물에 목맬 생각이 없었다. 외지 청년들이 지역에서 부동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를 여럿 봤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안좌도 북쪽 해안 와우마을에 당도했다. 경로당 바로 옆 혼자 사는 할머니 집을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결혼 뒤 21살부터 그 자리에 살아온 정경단(86)씨 집이다. 무작정 찾아가 청소를 시작했다. 정화조가 고장 나 썩은 내가 진동했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었다. 정화조 공사도 하고 창고 청소까지 했다. 팀원들 불만이 고조됐다. 그때마다 이찬슬은 독려했다. “조그만 거 바라보지 말고 과정에서 감동을 주자. 이건 버려진 공간을 수거해가는 일이다.”

공짜 청소엔 보상이 뒤따랐다. 할머니가 “집 안 공간을 마음껏 써도 좋다”고 했다. 창고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갤러리로 꾸몄다. 신안 풍경과 할머니를 촬영해 사진전을 열었다. 마당엔 자갈을 깔고 캠핑장을 만들었다. 동네 어르신을 초청해 막걸리 잔치를 열었다. 그제야 마을 주민들이 청년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24일 창고 갤러리에서 만난 정경단씨는 “처음엔 뭐 하러 이렇게 청소하냐고 그랬는데 나중엔 마냥 좋았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웅성웅성하는 게 좋더라”라고 말했다.

실크스크린 공방을 연 이수지씨.

실크스크린 공방을 연 이수지씨.

전술2. 귀신을 쫓아내라

청년은 갤러리만으로 살 수 없다. 주거공간이 필요했다. 동네 주민의 한마디가 이찬슬의 귀에 꽂혔다. “쩌기 뭐 관사 하나 몇 년째 방치돼 있던디….” 그곳은 3층 건물에 거실을 포함해 방 6개가 있는 군청 관사였다. 뒤로는 작은 산이, 앞으로는 저수지가 있는 배산임수 지형이었다. 수년간 방치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귀신이 사는 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여자 귀신이 나온다더라.’ ‘뒷산에 이름 없는 무당이 많이 묻혀 있다.’ 청년들은 또다시 청소부터 시작했다. 임대계약이 당장은 어렵다던 군청도 청소 현장을 방문하곤 계약해줬다. 월 임대료 8만원. 계약서 쓰는 자리에서 공무원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낮도깨비 나올지 모르니까 조심해.”

이찬슬의 걱정은 딴 데 가 있었다. “청년 참가자들이 여기 머물 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면 큰일이다.” 고심 끝에 팀원인 송승호에게 제안했다. “형, 우리가 테스트 한번 해보자.” 실험 삼아 방마다 하룻밤씩 자보자는 거였다. 두 사람은 벽에 번진 곰팡이만 대강 긁어내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귀신도 귀신인데 지네가 너무 많았다.”(이찬슬) “귀신보다 지네가 더 무서웠다. 검지만 한 애도 봤다. 밤에 뒷산에서 고라니가 깩깩 우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송승호)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찬슬은 생각했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모험담이 팔린다.” 화나고 짜증 날 때 송승호는 반려동물인 거북이들을 한참 바라봤다. “거북이를 보면 마음이 누그러든다. 보고 있으면 두 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아, 평화롭다.”

송승호는 ‘거북이 덕후’다. 2019년 처음 거북이를 길렀다. 지금 네 마리를 기른다. 아프리카 동남부 지역에 서식하는 레오파드육지거북이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거북이들은 퇴사 뒤 백수 생활에 큰 위로가 됐다. 그는 목포대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방위산업체를 다녔다. 그는 작곡 취미를 살려 음악을 하려고 퇴사했다. 목포로 귀향해 원룸에서 거북이들에게 집을 만들어줬다. 가로 2.5m, 세로 1.5m 크기 사육장이었다. 침대보다 넓었다. 거북이들에게 말했다. “나중에 반드시 더 큰 집을 얻어줄게.” 무직과 아르바이트 생활을 오가던 때 대학 후배 이찬슬이 제안했다. “같이 일하자.” 2021년 3월 스픽스에 입사해 청년마을을 같이 만들기로 했다.

관사는 한 달 만에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했다. 귀신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찬슬은 “청년들의 기운으로 퇴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교된 중학교 1학년1반 교실에 ‘거북이 운동장’을 만든 송승호씨.

폐교된 중학교 1학년1반 교실에 ‘거북이 운동장’을 만든 송승호씨.

전술3. 폐교를 무단 점거하라

귀신을 쫓아낸 게스트하우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청년마을 참가자들은 거기서 일했다. 식탁에서 웹툰을 그렸고, 테이블에서 노래를 녹음했다. 거점이자 작업공간이 필요했다. 마땅한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괜찮은 곳이 있으면 월세가 너무 비쌌다. 2021년 8월 이찬슬은 안좌도 옆 팔금도에 방치된 폐교를 발견했다. 2017년 문 닫은 안좌중학교 팔금분교다. 교육청에 임대를 문의했다. 행정절차에만 최소 석 달이 걸린다고 했다. 건물에 부착된 경고장이 눈에 밟혔다. ‘무단 사용하거나 무단 출입하면 손해배상과 형사고발 조치됨을 알려드린다.’

“일단 들어가서 청소부터 하자.”(이찬슬) “법에 걸리든 사업기간 지나 사업비를 물어주든 죽는 건 마찬가지. 팀원들에게 쳐들어가자고 했다.”(송승호)

또 다른 팀원 박현정은 주저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 불법이라 걱정했다. 이 넓은 공간을 다 치우고 고칠 수 있을까도 막막했다.” 오래 방치된 폐교 교정과 운동장은 잡초가 나무처럼 크게 자라 숲을 이뤘다. 차가 진입할 수도 없었다. 군청 도움을 받아 수풀을 제거하고 나뭇가지를 정리한 뒤에야 학교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랑과 초록색으로 칠한 외벽은 귀여웠고, 야자수 10여 그루를 심은 교정은 이국적이었다. 외벽의 벗겨진 페인트와 검은 때, 부러진 축구 골대를 보고서야 폐교인 걸 실감했다.

실내는 온갖 건축 쓰레기로 가득했다. “천장에서 철골이 삐져나와 있어 이마를 여러 번 다칠 뻔했다. 새와 벌, 쥐 사체가 나왔다. 새벽까지 청소하고 아침에 출근했다.” 최소한의 단장을 마치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근데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10㎾ 산업용 발전기 5대를 돌렸다. “굉음에 귀가 멀 것 같았다.”

마침내 신안군청과 행안부, 교육청 협조로 2021년 9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임대계약이 성사됐다. 폐교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2학년1반 교실은 이찬슬이 ‘앵무새 놀이터’로 만들었다. 앵무새들을 데려와 작은 동물원을 만들었다. 1학년1반 교실은 송승호가 ‘거북이 운동장’으로 꾸몄다. 가로 6m, 세로 5.9m 집을 만들어줬다. 여기서 사람은 좁은 통로로 다니고 거북이는 운동장을 걸어다닌다. 그가 키우는 레오파드육지거북 4마리와 업체에서 데려온 레드풋육지거북 3마리를 놓았다. 토끼 2마리도 함께 있다. 아이들에게 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상상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토끼는 아마 거북이를 움직이는 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행정실은 목공방, 방송실은 영상·녹음방, 어학실은 미술관, 보건실은 ‘드래곤 도서관’(도마뱀 동물원) 등으로 꾸몄다.

“내면에 자연의 거대함을 들이려고 노력한다”는 윤재천씨.

“내면에 자연의 거대함을 들이려고 노력한다”는 윤재천씨.

작품 안에 자연의 거대함을 담기 위해

박현정은 폐교를 ‘우실’(우슬)로 만들고 싶었다. 우실은 해풍과 모래를 막고 마을과 농경지, 염전을 보호하려고 섬사람들이 조림한 방풍림을 뜻하는 전남 방언이다. “우실은 과거 결혼식, 잔치, 제사 같은 마을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예전엔 해풍이 마을을 위협했다면 지금은 인구 소멸이 위협한다. 이곳을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새로운 우실로 만들고 싶었다.” 청년들은 팔금분교 건물을 ‘우실동물숲’이라고 불렀다. 박현정은 폐교 1층에 책방 ‘우실문고’를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에 홍보해 전국에서 책을 기증받았다. 동네 주민들이 책을 볼 수 있게 하고, 청년마을 참가자 활동 기록을 전시했다.

박현정은 목포대 2학년 때부터 문화기획자로서 삶을 꿈꿨다. 이찬슬과 2018년 10월 목포 원도심 핼러윈 파티를 기획했다. 목포시 원도심이 공동화돼 귀신밖에 안 나온다는 말이 나올 때였다. 귀신 분장하고 ‘피’주스 만들어 팔고 페이스 페인팅을 했다. 이찬슬이 사비를 털었다. 참가자는 2천 명. 흥행했다. 그는 지역의 가치와 추억을 지키는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다. 2021년 3월 스픽스에 입사해 청년마을을 만들면서 신안 섬마을에 정이 들었다.

그사이 청년마을 스태프 8명, 프로젝트 참가자 35명, 단기 체류자 200명이 왔다. 2021년 11월엔 주말마다 목포, 무안, 광주 등에서 300명가량이 방문했다.

이수지는 2021년 7월 주섬주섬 마을 석 달 살기에 참여했다. 폐교를 같이 정비하고, 건물 1층에 디자인 작업장인 ‘실크스크린 공방’을 꾸몄다. 석 달 살기 기간이 끝난 뒤에도, 한국에서 키우는 삽살개 깜시와 브라질 상파울루에 살 때 키우던 하바네즈 끼끼가 신안 안좌도에서 만나 퍼플섬에 놀러간 모습을 형상화한 가방 등 디자인 소품을 만든다.

이수지는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2018년 8월 귀국했다. 고향 목포에 정착해 디자인 관련 일을 했다. 가족은 “빨리 서울로 가라”고 했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윤재천은 목포대 미대 재학생이다. 2021년 10월 교수님과 폐교에 견학 온 뒤 여기 눌러앉았다. 폐교 공간 조성 작업을 함께 했다. 건물 1층에 화실을 만들고 매일 그림을 그렸다. 2021년 11월 ‘소멸 위기의 섬마을에서 예술로 가라앉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그림엔 해, 하늘, 바다가 등장한다. “내 안에 자연의 거대함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내 작품으로 사람들 마음속에도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는 미래의 거대한 세계를 꿈꾼다. 11월7일 인스타그램에 썼다. “청년들이 미래를 담보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 청년이 가진 미래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 잣대에 넘겨 팔아버린 것입니다. 청년마을 주섬주섬은 이런 부당한 미래가치 담보를 거부합니다. 팔금도 팔금분교에 불법침입해 국가의 미래를 훔쳐와 주섬주섬 가꾸어가는 주섬주섬 해적단이 그 주인공입니다.”

신안 안좌도 와우마을에 사는 정경단씨. 청년들이 찾아와 그의 집 창고를 갤러리로 만들었다(맨 왼쪽).

신안 안좌도 와우마을에 사는 정경단씨. 청년들이 찾아와 그의 집 창고를 갤러리로 만들었다(맨 왼쪽).

폐교된 안좌중 팔금분교 2학년1반 교실은 ‘앵무새 놀이터’로 단장했다.

폐교된 안좌중 팔금분교 2학년1반 교실은 ‘앵무새 놀이터’로 단장했다.

하늘에서 본 안좌중 팔금분교.

하늘에서 본 안좌중 팔금분교.

해적단은 보물섬을 만든다

행안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 사업은 2021년 11월30일 끝났다. 팔금분교 임대는 12월 말까지다. 해적단의 미래는 열려 있다. 팔금분교는 2022년 초 신안군청에 소유권이 넘어올 예정이다. 신안군과 전라남도교육청은 2021년 9월 신안교육지원청 청사 이전 예정부지와 안좌중 팔금분교를 교환하는 내용으로 업무협약을 맺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청년들이 꾸민 폐교에 가보고 그 열의에 깜짝 놀랐다”며 “내가 있는 동안은 팔금분교를 이 청년들이 계속 쓰도록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팔금분교가 모교인 안좌도 주민 이선주(34)씨는 “새로 단장한 폐교에 가보고 감동받아 눈물이 났다”며 “주말에 초등학생 아이들과 갈 만한 장소가 생겨 좋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 5년 전 귀향한 팔금도 주민 장현미(50)씨는 “폐교가 밤에도 불빛을 환하게 밝혀줘서 마음까지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이찬슬은 최소한 3년간은 지역에서 돈벌이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도시 청년이 와서 지역주민과 경쟁자가 돼선 안 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환대받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지난 7개월간 남은 건 “확신이 생긴 청년들의 생존 의지”였다. “우리에게 이제 공간은 문제가 아니다. 여기 남아 어느 공간에서든 또 다른 새로운 걸 만들어낼 계획이다.”

청년 해적단은 보물섬을 찾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보물섬을 만든다. 그들은 폐교에 이어 암태도와 안좌도에 있는 빈 창고 5개를 접수하려는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또 하나의 우실을 만들 작정이다.

신안=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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