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은 여전히 녹화와 임업에 집중하고 있다. 산숲 녹화가 끝났는데도 기존 인력·조직을 유지하려고 불필요한 새 사업을 발굴해왔다. 탄소를 줄인다면서 거대한 숲을 베고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모순적인 이 사업이 대표적이다.
도시 속 나무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도시를 급하게 만드느라 크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를 심었다. 이런 나무가 너무 커졌다고 강한 가지치기를 하면 잘린 곳부터 부패가 일어나 속이 썩고 쓰러지게 된다.
이번 사태는 나무와 숲과 관련해 우리가 앞으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백만년 동안 나무와 숲으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아온 사람이 이제 나무와 숲을 위해 작은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_편집자주
“한국에선 좋은 나무를 오래 키워서 좋은 목재나 좋은 숲을 만드는 게 어렵나요?”(기자)
“왜 어렵겠어요. 근데 우리는 사유림이 많고 산림청이 정한 벌기령(베는 나이)에 따라 (나무를) 베고 새로 심는 게 산주에게 유리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죠.”(한 산림조합 관계자)
5월18일 경기도 파주의 한 산숲을 찾아갔다. 큰 언덕 하나에 있던 나무가 모두 베어졌고 10~20㎝ 어린나무(묘목)들이 심겨 있었다. 산소유자(산주)와 산림조합에 문의하니 이곳은 7헥타르(㏊·2만1천 평) 정도의 경제림인데, 2만2천여 그루를 새로 심었다고 했다.
베기 전엔 1980년대에 심은 낙엽송이 30%, 자연나무인 참나무 등이 70% 정도 됐다. 벤 나무들의 나이는 30~36년 정도였다. 이번에 그 나무들을 모두 베고 낙엽송 1만3천 그루, 백합나무 7천 그루, 밤나무 1600그루, 잣나무 1천 그루를 새로 심었다. 이 사업은 2020년 7월 ‘착공’돼 2021년 5월 ‘준공’됐다.
이 사업으로 30~40년 된 숲 2만 평이 일시에 사라졌다. 산주에게 왜 나무를 벴는지 물었다. “숲을 그냥 두면 손해다. 오래전에 심은 나무들이 자꾸 죽는다. 더 둔다고 나무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기존 나무를 베고 과실수인 밤나무, 잣나무 등을 새로 심었다.” 산주의 말이다.
기존 나무를 베고 새 나무를 심으면 산주에게 이익일까? 산주는 “기존 나무를 벤 비용은 벤 나무를 판 값으로 90% 이상 충당했다. 새 나무를 심는 비용은 정부가 90% 대줬다”고 했다. 산림청이 60%, 도가 9%, 시가 21%, 산주가 10%를 나눠 내는 방식이다. 이번 모두 베고 심기(벌채 뒤 조림)로 산주는 약간 손해를 봤다. 그러나 산주는 “앞으로 밤나무와 잣나무에서 이익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숲 2만 평이 사라진 것은 산주의 손익계산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30~40년 된 이 숲을 지킬 방법은 없었는지 산림조합 관계자에게 물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사유림이라는 점이었다. “국내 산숲의 67%가 사유지인데, 그냥 있는 산주는 이익을 볼 수 없다. 정부가 숲을 유지하는 산주는 지원하지 않고, 나무를 베고 새로 심는 산주만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숲을 지키려면 임업인에게도 직불금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솎아베기(간벌) 위주의 숲가꾸기는 정부가 100% 지원하고, 모두베기+새로 심기는 정부가 새로 심는 비용의 90%를 지원한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산주들이 벌기령이 지난 산숲을 베는 건 정부가 새로 나무를 심는 비용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숲을 가지려면 산숲을 베는 산주가 아니라, 산숲을 자연 상태로 그냥 두는 산주를 지원해야 한다. 기업에서 걷은 탄소세를 숲을 지키는 산주에게 탄소배당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 이미라 산림산업정책국장은 “모든 산숲을 다 보존할 수는 없고, 나무를 베어서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탄소흡수나 생물다양성을 위해 보존이 필요한 산숲에는 보조금이나 직불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운동가들이 문재인 정부 그린뉴딜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한 30억 그루 나무심기’ 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앞서 2021년 1월 산림청은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30살 이상 된 나무를 베고 탄소흡수 능력이 왕성한 어린나무 27억 그루를 심어 탄소흡수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나머지 3억 그루는 북한에 심을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사업이 예산을 들여 탄소배출을 늘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번에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대목은 산림청이 30살 이상 된 나무를 베고 새로 어린나무를 심는다는 계획이었다. 애초 산림청은 어린나무의 탄소흡수량이 30살 이상 나무보다 많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즉각 반박했다. 이에 대해 5월16일 산림청도 자료를 내어 나무의 탄소흡수량은 30살 미만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최장 70살 나무에서 정점에 이른다는 점을 인정했다. 잣나무와 낙엽송은 45살, 강원소나무는 45~50살,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는 70살에 정점에 이른다. 다만 중부소나무는 25살, 편백나무는 30살로 낮은 편이었다. 더욱이 나무의 탄소흡수량은 완만하게 커졌다가 완만하게 작아지므로 정점을 지났다고 바로 베어낼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산림청은 ‘㏊당 탄소흡수량’이란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나무 한 그루의 탄소흡수량은 나이 든 나무가 많지만, 숲 단위의 탄소흡수량은 어린나무가 더 많다는 주장이다. 어린나무 숲에 나무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살 강원소나무 한 그루의 1년 탄소흡수량은 5㎏인데, ㏊당 평균 2030그루가 살아 전체 흡수량은 10.1t이 된다. 반면 50살 강원소나무 한 그루의 1년 탄소흡수량은 9.2㎏인데, ㏊당 평균 732그루가 살아 전체 흡수량은 6.7t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자의적인 계산법이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50살 강원소나무 숲은 교목(큰키나무)인 강원소나무만 있는 게 아니라 그보다 작은 아교목(중간키나무), 관목(작은키나무), 풀과 함께 이뤄져 있다. 이런 다양한 식물들의 탄소흡수량이 강원소나무보다 더 크다. 반면 20살 강원소나무가 빽빽한 숲에는 작은 나무가 비교적 적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는 “강원소나무 아래에 다양한 생태 지위를 가진 나무와 풀이 많고, 자연숲에선 표층 흙의 탄소흡수량도 엄청나게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림청에 제시한 2013년 보우먼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자연숲의 탄소흡수량이 인공숲보다 최소 22배 더 크다고 분석했다. 200년 동안 자연 상태로 둔 숲과 50년마다 모두 베고 심기를 반복한 숲의 탄소흡수량을 비교한 것이다. 나무가 50년 동안 탄소 1을 흡수한다고 할 때 200년 동안 그대로 둔 숲은 모두 6.8의 탄소를 흡수했고, 50년마다 계속 베고 심은 숲은 단지 0.3의 탄소를 흡수했다. 나무를 베면 그동안 나무가 저장했던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자연숲의 탄소 흡수량이 홍 교수의 분석보다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9년 4월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사이먼 루이스 교수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탄소 저장을 위해 자연 숲을 되살린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 내용을 보면, 자연숲의 탄소 저장량은 평균적으로 인공숲(조림지)의 42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문제가 되는 모두 베고 새로 심기나 숲가꾸기 사업의 솎아베기 과정에서 교목 외에 아교목이나 관목이 훼손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탄소흡수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환경단체 ‘가로수를 아끼는 사람들’의 최진우 대표(조경학 박사)는 “산림청이나 산림조합에선 자신들이 심고 관리한 교목을 제외한 다른 나무들은 아예 나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베기나 솎아베기 과정에서 탄소흡수에 필요한 작은 나무들을 쉽게 베어버린다”고 지적했다.
표층 흙의 훼손도 논란거리다. 표층 흙은 탄소 흡수·저장 능력이 나무보다 뛰어나고 습기가 많아 다양한 생물을 품는다. 산림청도 모두베기를 할 때 대상 토양의 48%가 훼손된다고 밝혔다. 홍석환 교수는 “표층 흙의 훼손은 숲에서 습기를 제거해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다양한 가치를 품는 숲을 탄소흡수량만으로 평가하는 게 지나치게 협소한 관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진우 대표는 “숲은 다양한 생명의 터전이다. 물을 잡아 홍수와 가뭄을, 흙을 잡아 산사태를 줄인다. 또한 폭염과 지구온난화를 완화한다”고 밝혔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교수(조경학)는 “건강한 숲에서 마시는 좋은 산소는 상쾌한 기분을 일으켜 사람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높인다. 돈으로 사고파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림청도 2018년 한국 산숲의 가치가 221조원으로 한 사람당 428만원의 혜택을 누린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경제림에서 벌어지는 모두베기는 목재 공급을 위해 필요하다는 게 산림청의 견해다. 현재 국내 산림은 국토의 63%인 630만㏊이며, 이 가운데 경제림은 234만㏊로 37.1%를 차지한다. 산림청 이미라 국장은 “목재 수요의 84%를 우리나라는 수입에 의존한다. 목재 수확 비율도 2.6%인 독일의 5분의 1 수준인 0.5%에 그친다. 경제림에선 적절한 목재 수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목재 수확을 위해 모두베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정명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모두베기가 아니라 솎아베기나 돌려베기(순환벌채) 같은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목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미 확보한 목재나 펄프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도 나무베기를 줄일 수 있다. 그래야 탄소배출도 감소한다”고 했다.
나무베기를 지원해 산숲을 해치는 산림청의 정책 관행을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봉호 교수는 “나무심기 사업이 끝나자 산림청이 길을 잃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산림토건 사업을 벌인다. 산림청의 규모를 대폭 줄이고 기능을 바꿔야 한다. 산림을 보호·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명희 생태보전국장도 “산림청은 나무를 심고 베는 사업이 아니라, 생물다양성과 탄소흡수를 늘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의 산림청 사업들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인력과 조직을 조정해야 한다. 산림청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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