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일 것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이 ‘우리 과에도 정치경제학 교수가 필요하다’며 데모를 한 끝에 1989년부터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2007년 2학기 강의를 끝으로 정년퇴임을 한 그를 기념해 강남훈·강신준·김윤자·신정완·정성진 등 일군의 후학 10여 명이 500쪽에 가까운 책, (서울대학교 출판부 펴냄·2007)를 펴냈다.
이 책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는 중요한 주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회주의의 이론과 역사 및 실제, 서유럽 사민주의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사회주의 이론, 소련·중국·북한 경제체제의 이해, 유고 자주관리의 실패, 스웨덴 사민주의의 교훈, 그리고 대안사회 이행의 쟁점 등 다채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책 속의 필자들이 모두 같은 견해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수행 교수 스스로 표현했듯 이 책은 ‘대안사회를 향한 완성된 교본’이 아니라 ‘앞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를 담았기 때문이다.
사실 각각의 주제나 필자들의 면모를 볼 때 주제별로 책 한 권씩을 써도 무방했을 것 같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30쪽 정도로 짧은 글이 되레 좋았다. 짧은 시간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민주의의 역사와 이론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논문집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대중서를 발간하자”는 김수행 교수의 기획 의도가 발현된 결과인 듯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국가사회주의나 자주관리사회주의의 실패에 관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이 나오고 얼마 뒤 마련된 김수행 교수 정년퇴임식에 나도 동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김 교수의 후임으로 누구를 채용할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3명 중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퇴임하다보니 그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었던 것이다. 축사를 한 변형윤 선생이나 안병직 선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들이 김 교수의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뉴라이트의 상징적 인사로 불리는 안병직 선생마저 “내가 비록 진보파에서 시작해 보수파로 가버렸지만 서울대 경제학과가 사상의 다양성만큼은 존중할 여유가 있다고 본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위기와 불안에 대한 대안 모색이 여전히 진행형인 현실에서, 이 책은 그런 대안을 찾는 사람, 특히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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