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사망한 1883년,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경제학자가 태어났다. 한 사람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고, 다른 한 사람은 (한길사 펴냄)로 유명한 조지프 알로이스 슘페터.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인 슘페터는 재무부 장관, 민간은행장을 거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로 일했다. ‘빈에서 가장 위대한 연인,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승마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가 나의 목표’라고 그는 말했다. 1919년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으로 입각될 때, 한 신문은 승마복을 입고 말을 끄는 그의 우스꽝스런 캐리커처로 그의 목표에 화답했다.
자본주의가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성취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자본주의를 혁신해나간 ‘기업가 정신’ 덕택에 가능했다고 슘페터는 주장했다. 기존 기술이나 생산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것을 지속적으로 창조해가는 기업가 정신이 자본주의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서 그는 기존과 사뭇 다른 주장을 펼친다.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는 큰 성취를 거두었지만, 인간 정신을 지속적으로 합리화해 자본주의 자신과 양립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만들어냈다. 또한 경제 발전에 발맞춰 평등 욕구가 점증하고 독점기업의 융성으로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며 동시에 중소 자본가 등이 몰락해 분노가 폭발하는 등 더 이상 유지가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대체되는 건 그에게 당연했다. 그는 깨알같이 자신의 전망의 근거를 대고 있다.
오해는 말자. 슘페터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밝히고 있다. 다만 자본주의가 그 한계로 인해 사회주의로 이동하는 것은 물리법칙과 같이 자연스런 과정이며, 이러한 사회주의 이전이 가능한 곳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고 사회가 합리적으로 조직된 성숙한 사회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숙한 사회에서는 사회주의가 대다수 국민의 동의 속에 헌법 개정 등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고, 합리적으로 운영된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의 사회주의혁명은 미성숙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여러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물론 그의 전망과 달리 사회주의는 전세계적으로 후퇴했고, 또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자본 간 경쟁은 치열하며, 독점기업들 사이에서도 그가 창조적 파괴라고 부르는 게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스마트폰 경쟁을 보면 더욱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지적은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곱씹어볼 만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금융경제학자의 한 사람인 라구람 라잔이 몇 년 전에 쓴 책의 제목은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였다. 아직도 자본가에게 더 많은 권한, 규제 철폐, 감세 등의 혜택을 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슘페터의 우울한(?) 전망에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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