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교육은 예금 행위처럼 된다. 학생은 예금 보관소, 교사는 예탁자다. 양측이 서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성명을 발표하고 예탁금을 만들면, 학생은 참을성 있게 그것을 받아 적고, 암기하고, 반복한다. 이것이 바로 ‘은행 저금식’ 교육이다.”
브라질의 교육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파울루 프레이리는 그의 저작 (원제 Pedagogy of the oppressed, 억압된 자들의 교육학)에서 오늘날 지배자들이 실시하는 교육을 ‘은행 저금’에 비유하며 이러한 교육이 억압과 피억압의 구조를 온존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난한 유년기를 거친 뒤, 교육자와 사회운동가로서 변혁에 투신했으나 196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수감돼 7년을 복역했고, 석방된 뒤에도 1979년까지 국내에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는 해방교육의 철학이 온전히 드러난 그의 대표작이다.
프레이리는 단순히 학생만이 아니라 일반 민중 역시, 자기 자신을 잔고 없는 은행 계좌로 여기고 여기에 예금(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억압자의 교육을 강요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교육을 받음으로써 민중은 스스로를 한계지우며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자신 때문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은행 저금식 교육, 억압적 교육에 맞서 프레이리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대화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이다. 특히 그 방법으로 그는 문자 해독을 강조했다. 그저 단순한 문자 읽기와 쓰기가 아니라 민중의 현실에 기반한 문자 해독으로서 실제 그의 교육을 받은 농민들은 30시간만 지나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현실에서 유리된 추상적 글이 아니라, 농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그들의 처지와 정치적 본질이 드러나는 글을 읽고, 쓰고, 해석하다보니 그런 놀랄 만한 성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교육책이 아니다. 비참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변혁할 혁명에 관한 교육 이론서다. 실제로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혁명일 정도로 프레이리는 급진적 변혁을 강조한다. 1960년대의 브라질, 가난한 가족이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잘려진 사람의 가슴 살덩이’를 일요일 점심으로 먹는 현실을 목도한 그에게 어쩌면 혁명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 과정에서 지도부는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상호지향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혁명가와 민중이 함께 변화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함께 만드는 혁명이 아니면 억압자의 얼굴만 바뀔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그에게 영향을 받은 브라질 진보정당의 당원이나 주민활동가들은 일방적인 선동이 아니라 민중 속에서 동고동락하며 튼튼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 교육에도 대화식 교육, 문제제기식 교육이 유행이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말년에 자신의 대화식 교육에서 해방의 요소를 제거하고 방법론으로만 그것을 이용하는 신자유주의식 교육을 비판했다고 한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라는 본질적 목적은 사라지고 서열 매기기의 방법만 정교해진 오늘날의 우리 교육을 프레이리가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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